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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고래 Mar 29. 2024

월간두부 "스트릿 두부 파이터"

그래 나 길거리 출신이야, 쏘 왓?

월간두부 #5 스트릿 두부 파이터_“그래 나 길거리 출신이야, 쏘 왓?”

_2024년 3월


“어머 잘 생겼다!” 두부는 항시 잘 생겼다는 말을 듣는다. 실제 내 자식도 아니지만 (아직 사람과 동물과의 관계에서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적용하기란 어려운 초보 견주임) 왜 이리 뿌듯한지! ‘진도’와 ‘시바’와 여러 종이 섞인 ‘시고르자브종’ 믹스견인 두부는 안락사 직전에 구조해 온 후라 우리 집에 올 때만 해도 피부병과 탈모로 안쓰러운 모습이었다. 겁도 많고 표정도 어두웠다. 하지만 날마다 환골탈태. 사료와 영양제를 꾸준히 먹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사랑해 주고 쓰다듬어 주니 점점 털에 윤기도 나고 예뻐졌다.

예뻐진 두부, 오늘 여고생들이 “예쁘면 순두부, 말 안 들으면 취두부!”라며 꺄르르 웃었다


 산책만 나가면 “잘 생겼다, 착하다, 매너 좋다, 예쁘다” 등등의 말을 듣는다. 오늘도 조금 덜 생긴(?) 믹스견을 만났고, 그 견주는 두부가 참 잘생긴 편이라고 감탄을 하였다. (이놈의 외모지상주의!) 열한 살 딸들도 “너무 예뻐서 어떡해?”라며 호들갑을 떤다. 나는 예쁘다거나 잘 생겼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귀엽긴 하지만 칭찬의 말을 잘 늘어놓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대부분의 동물이 대략 귀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물에게 과연 美의 기준이 있다는 것인가?


강아지가 생기니 외식도 주말 나들이도 자유롭지 않다. 되도록 반려견이 동반되는 식당이나 카페를 찾고,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정보도 많이 알게 된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울산대공원’은 ‘뉴욕센트럴파크’보다 면적이 넓고 초록이 무성한 자연 그대로의 잘 조성된 공원이라 거의 매일 다니고 있으며 바닷가 다음으로 가장 애정하는 힐링 공간이다. 울주에 있는 ‘개들랜드’는 카페 음료도 좋고, 인스타그램 갬성도 훌륭하나 온 식구 다녀오면 커피 값만 10만 원이다. (딸들이 친구들을 우르르 데리고 와서 츄러스와 아이스티를 두 번씩 드신 후로 가지 않음.) L백화점 옥외에 있는 카페는 강아지를 맡기고 나름 자유롭게 외출도 할 수 있으며 (한 번도 맡겨본 적은 없음), 문수구장에 있는 애견운동장은 매우 저렴하고 가깝지만 인조잔디이고 가끔 가보곤 한다.

멋짐 추가 ㅋㅋㅋ 

지난주는 반려견 문센에 다녀왔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애니언파크”는 비교적 저렴하고 할인도 되며, 목욕서비스와 훈련서비스, 기타 프로그램 등을 이용할 수 있는 문화센터이다. (아, 다시 시작된 문센. 육아는 끝난 줄 알았는데…) 애니언파크 가는 길에 두부는 멀미해서 구토를 하기도 했지만 가면 끝내주게 잘 논다. 이때도 나는 두부에게 차도 많이 안 타보고 촌스러워서 멀미한다고 놀렸다. (까칠한 농담을 자주 하는 편) 근본 없는 개라서 콜백도 안 되고, 쓰레기통 뒤지고, 아무 거나 먹는다고 가끔 구박을 주기도 했다.


‘애니언파크’까지 가는 길에 미끄러운 바닥이 무서워서 기어가던 두부를 간신히 잔디 위에 놓고, 아이들은 숙제도 하고 책도 읽고 다른 개들과 놀기도 하였다. 이곳은 천연잔디로 노즈워킹하기도 좋고 매우 넓다. 12kg-13kg 인 두부는 소형견들과 놀기에는 조금 커서 대형견들이 노는 장소로 입장하였다. 나는 대형견의 세계를 처음 경험했고 무서웠고 걱정이 되었지만, 이내 적응하여 기웃거렸다. 주말이라 많은 개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골든 리트리버’가 입장하였다. “와…” 텔레비전 광고처럼 털을 살랑거리며 뛰어온다. ‘레브라도 리트리버’가 입에 공을 물고 들어왔다. “와… 잘 생겼다!” ‘시베리안 허스키’도 들어온다. “와… 인형인가?” 이중모의 윤기가 남달랐다. 마지막으로 ‘보더콜리’ 두 마리가 뛰어 들어온다. “와… 빠르다!” 스피드와 스마트함이 우수했다.

우아한 털을 뽐내던 골든 리트리버와 공놀이 무한반복하던 레브라도 리트리버


 저것이 순종의 품격이란 말인가, 근본 있는 개라는 것인가. 내가 대놓고 놀라 하니 남편이 깔깔 웃는다. 두부는 내 상한 자존심에 아랑곳하지 않고 주인도 찾지도 않고, 불러도 오지도 않고 여기저기 다 참견하며 오줌을 갈기고 해맑게 다닌다. 나는 마치 씁쓰레한 나물을 먹은 듯이 떨떠름하고 시무룩하였다. 하지만 “so what?” 근본 없는 믹스견들이 더 건강하게 잘 산다는 걸 두부는 알고 있는 듯 해맑고 천진하다. 하지만 이게 뭐라고. 잘생긴 개들 사이에서 쉽게 오징어가 되어버린 나의 반려견을 위해 나는 집에 오자마자 이름표를 주문했다. 이 녀석이 여전히 주인 없는 떠돌이 개가 아니라는 걸, 사랑받고 있는 반려견이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다. 더 가꿔주고 예뻐해 줄 테다. 스트릿 두부의 (견주의) 파이트 조만간 리매치다.

출신이 무슨 상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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