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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고래 Apr 23. 2021

나는 정말로 밥하기를 싫어하는 것일까?

40년 만의 깨달음과 진지한 칭얼거림

결혼하고 13년.

평균 하루에 두 끼를 만들었다고 생각해보자.

일주일 5일 했다고 가정하면 2끼*5일*52주*13년=6,760번 정도 밥을 차렸다.


결혼 3년 차부터는 4인분을 만들었고, 결혼 5년 차부터는 6인분을 만들었다. 마침 먹성이 좋은 아이들이라 일부러 3인분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마음에 드는 반찬이 있으면 오빠들이 동생들 접시를 넘보며 “오빠가 먹어도 돼?”라고 묻기도 한다. 딸은 가끔 과자를 왼손에 keep 하고 오른손으로 먹는 스킬도 발휘한다. 대한민국 쌀 소비량이 줄고 있다는데 우리는 3주에 한 번씩 10킬로 쌀을 산다. 인구 감소, 쌀 소비 감소. 별로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뉴스들.

채소와 과일 값이 비싼 겨울은 보릿고개 못지않게 힘든 시기다. 직접 길러 먹으려고 텃밭을 대여해서 4년 동안 가꿨다. 닭도 기르고 싶었지만, 기른 닭을 잡아 백숙을 끓일 용기는 없었다. 재료를 구하고 먹을 것을 만들어 내는 창조적인 행위는 즐겁기보다는 이제 생존을 위한 투쟁이 되었다. 이렇다 보니 점점 힘겨워졌다. 모아놓은 사진들을 보면 의아하다. 식탁 위 음식 사진이 2/3 분량이다. sns에도 자주 올렸다. 나의 열심과 노력을 전리품으로 남기듯 그렇게 주부만의 의식을 치렀다.


“나는 왜 이토록 열심히 밥을 하는 것일까?”

나의 열망을 밥에 쏟으면서도 허무한 이 느낌. 댓글들에는 멋진 엄마다, 대단하다, 라는 찬사가 쏟아지지만 부담스러웠다. 어떤 일이든 두 가지 이상의 감정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쁘면서도 슬프고, 즐거우면서도 힘들고, 괴로우면서도 평온한 어떤 그런 유(類)의.


아이들과 남편은 뭐든 잘 먹는다. 잘 먹으니 멈출 수가 없다. 창조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냉장고 파먹기’도 언제나 성공적이다. 작년에는 ‘장 담그기’에도 참여하여 국간장과 집된장을 만들기도 하였다. 건강한 먹거리에 대해 공부하고 성실함은 더욱 레벨 업된다. 그런데도 끝없이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 역설적인 주부의 삶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정말로 밥하기를 싫어하는 것일까?”

아니다! 사실 나는 요리를 좋아한다. 손재주가 어디 내놓을 수준은 아니지만, 손으로 하는 창조적 행위를 좋아한다. 직관력과 행동력도 있어서 빠른 시간에 후다닥 몇 가지 메뉴를 만들 수 있다. 시어머니도 칭찬하는 포인트다. “넌 언제 이렇게 다 만드니?”


게다가 먹는 것도 좋아한다. 워킹맘이었던 친정엄마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중산층 엄마들처럼 카스텔라나 피자를 집에서 구워주지 않아, 학창 시절에는 직접 요리를 시도해 보기도 했었다. 먹기와 만들기 모두 좋아하는 나라는 인간은 이제 깨달은 것이다. 나는 요리가 아닌 밥하기의 전후 과정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매우 쓸데없는 깨달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불현듯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죄책감이 줄어들었다고 해야 할까.


밥하기 전 메뉴를 고민하고,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재료 도구를 씻고, 싱크대를 정리하고, 밥 먹은 후 그릇을 닦고, 가스레인지를 닦고(제일 싫어함), 음식물쓰레기를 모으고, 남은 재료를 정리하여 통에 담고, 식탁 아래 밥풀을 줍고, 행주를 빨고, 다시 간신히 의자에 앉아 다음 메뉴를 고민하는 일. 이 일들이 끝없이, 가없이 하루 세 번 반복되는 일. (망할 코로나.) 이 과정을 싫어했던 것이다.


다다닥 도마질을 하고, 프라이팬 몇 번 뒤집고, 소금 후추 멋지게 뿌리고, 접시에 데코레이션을 하고, 제비 새끼 마냥 잘 받아먹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일만 하는 것! 그것은 너도 나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며느리가 없는 친정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다. 딸만 있는 우리 엄마는 한 번도 사위가 해준 밥을 먹어본 적이 없으며, 남편이 온전히 만들어준 밥도 먹어본 적이 없고, 여전히 부엌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우주 최강 부지런쟁이요, 사업과 살림을 놓지 않던 분이지만 어쩌면 슈퍼 파월 여성 신드롬에 갇혀 여성에게 던져진 질문을 외면하며 관절이 닳도록 40년 동안 밥을 했던 것이 아닐까.


디자이너 엄마든, 미용사 엄마든, 교사 엄마든, 사회복지사 엄마든, 보험왕 엄마든, 살아가는 모습은 다 비슷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학교 안 다니고 등록금으로 세계여행이나 다니며 세계 각국 음식들이나 맛보는 건데. 괜히 대학 가서 공부했다는 생각이 든다. 좀 극단적인 생각을 이렇게 몇 번 하고 앓고 잊고 또 끙끙 앓는다.


충분히 가치 있고, 의미 있고, 사랑스러운 일이며 인생을 배워나가는 한 부분이라는 것을 누가 왜 모르겠는가. 그럼에도 이렇게 구구절절 칭얼대며 쓴 것은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타인의 기쁨에 기뻐하고, 타인의 슬픔에 슬퍼하는” 풍요로운 삶을 위한 아주 작은 몸부림이기 때문이다. 40년이 지나 이제야 나는 엄마의 기쁨과 슬픔을 이해한다. 그리고 나의 이 슬픔과 기쁨을 흠뻑 먹고 자란 아이들은 스스로의 성장과 날마다의 일상을 아주 잘 누리고 있다. 칙칙 밥이 익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수고로움 레시피
대충 막 하지만 이상하게 맛있는 이주부 밥상

(※참고: 기본 베이스 양념이 다 맛있어서 그런지 그럭저럭 맛이 납니다. 집된장과 국간장은 한살림 선생님들 따라가서 일손 거둔 거밖에 없지만 직접 만든 것들이라 훌륭합니다. 대부분 유기농 재료로 하려고 노력합니다. 아빠의 건강 때문에 현미밥이 대부분입니다. 정확한 계량은 하지 않는 편이어서 맛이 뒤죽박죽입니다. 빠른 시간에 후다닥 차리는 게 특징입니다. 따라 하지 마세요. ><)


<시장에서   . 봄맞이 건강밥상>

1. 조기보다 초큼 비싼 민어조기를 사서 녹말가루, 소금 간하고 기름에 구웠다. (2만원)

2. 돈나물은  돈나물일까. 사실 돌나물이라고 불리는 맹맹한 이것들을 초고추장에 미리  버무렸다. (2천원)

3. 엄나무 순을 데쳤다. 염증 해소에 좋단다. (1만원)

4. 친정 엄마가 직접 말린 감말랭이와 , 사과, 딸기에 마요네즈 조금 넣고 옛날 사라다를 만들었다.(냉장고에서 오랫동안 쉬던 아이들)

5. 현미밥과 미역국. 그리고 막내딸이 직접 데려온 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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