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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고래 May 22. 2021

머리카락의 무게

먹기 싫은 두유를 먹는 여자의 탈밍아웃

-그만 쳐다봐, 내 정수리 좀 그만 쳐다보라고.


남편은 눈치 없이 그 커다란 눈을 하고 내 비어가는 정수리를 쳐다본다. 다음 생일 선물로는 이영애가 선전하는 탈모관리 기계를 사주겠다고 한다. 무료체험도 있다며 내게 문자를 보낸다. 하, 이를 어쩐다. 이 눈치 없는 양반 같으니라고. 어디 가서 우리 와이프 탈모이니 도와주세요, 할 것만 같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말하면 더 눈길을 주게 되는. 남편은 어디서나, 나는 이렇게 지면으로 탈밍아웃을 했으니 사람들의 은밀한 눈총을 정수리로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살이 조금씩 빠지면서, 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의 머리카락은 빛의 속도로 하수구를 향해 달려갔다. 닭은 달걀 하나를 낳을 때마다 자기 몸의 칼슘 50배를 쓴다던가. 1년에 필요 이상의 산란을 해야 하는 닭은 칼슘부족으로 날개가 부러지고 힘없이 주저앉는다. 여자는 아이를 몇 명까지 낳아야 뼈에 구멍이 나거나 머리카락이 빠지는 경계까지 가지 않을까. 건장한 사내 녀석 둘, 딸 둘을 한꺼번에 낳은 나는 두려움에 뒤늦게 서야 꾸준히 칼슘과 단백질을 섭취한다. 싫어하는 두유도 매일 마신다. 하지만 골밀도감소증과 탈모는 벌써 진행 중이다.


기약 없는 두유에 기댄  방황하며 샴푸 유목민이 되었다. 정말  개도 넘는 회사제품을  써본  같다. 천연계면활성제가 들어 있는 한방샴푸, 천연샴푸, 탈모샴푸, 두피강화샴푸를 모두 써보았다. 플라스틱 용기를 줄이고자 샴푸바를 사다 쓰기도 했지만 민감한 두피는  말썽이었고, 머리카락 빠짐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스트레스가 가장 컸다. 감정적으로 감당이 안 되거나, 한꺼번에 많은 일이 밀려오면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고, 머리가 뜨거워지며 열이 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의학적으로 어떤 체질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열이 주로 위로 올라오는 듯했다. 요가매트에서 폼롤러에 누워 몸을 풀며 호흡을 천천히 하면 도움이 된다. 하지만 감당하기 쉽지 않은 일들이 파도처럼 너울대며 나를 덮치기 시작하면 숨쉬기조차 어렵게 느껴졌다. 모든 것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다.


문득, 내 머리카락이 너무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세사처럼 얇고 어깨까지 내려오는 길이가 무거우면 얼마나 무겁겠냐마는. 저울에 달면 100g은 되려나? 내게는 그 마저도 무겁게 느껴졌다. 미용실에 가서 귀밑 길이로 싹둑 쳐냈다. 1만 원만 추가하면 두피와 탈모관리를 해준다기에 신청했다. 머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중력이 약해지지 정수리가 조금 풍성해지는 느낌도 들었다.


귀 아래 5cm 길이의 머리카락도 무겁게 느껴지는 나이. 어깨 아래로 찰랑찰랑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캠퍼스를 누비던 나를 떠올리니 20년 세월이 무색하다. <멜로가 체질> ost 음악을 들으며 괜히 서글픈 마음을 달랜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 거야.” 이제 찰랑거리며 흔들릴 머리도 없지만 가슴은 눈치 없이 흔들린다. 꽃에도 흔들리고, 음악에도 흔들리고, 아이들의 티 없는 웃음에도 흔들린다. 머리카락의 무게를 못 견딜 나이지만, 다양한 것들을 견디기로 한다. 가령 타인의 시선 같은. 아리고 매운 대파 같은. 사랑하는 사람을 책임질 무게감 같은. 그런 것들은 제법 잘 견디고 있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가련하고 가볍고 볼품없는 어른을 만나면 함부로 판단하지 마시라. 잃은 만큼 견디고 단단해진 어른이니까.




*수고로움 레시피

*대충 막 하지만 이상하게 맛있는 이주부 밥상



(※참고: 기본 베이스 양념이 다 맛있어서 그런지 그럭저럭 맛이 납니다. 집된장과 국간장은 한살림 선생님들 따라가서 일손 거둔 거밖에 없지만 직접 만든 것들이라 훌륭합니다. 대부분 유기농 재료로 하려고 노력합니다. 아빠의 건강 때문에 현미밥이 대부분입니다. 정확한 계량은 하지 않는 편이어서 맛이 뒤죽박죽입니다. 빠른 시간에 후다닥 차리는 게 특징입니다. 따라 하지 마세요. ><)


<가지 볶음>

1. 가지와 감자, 양파, 고추등을 큼직하게 썬다.

2. 마늘과 파로 기름을 낸다.

3. 익히기 어려운 감자부터 익힌다.

4. 나머지 야채를 넣고 휘리릭 볶다가 가지를 마지막에 넣는다.

5. 가지가 반투명해지면 간장과 굴소스를 조금씩 넣고 간을 맞춘다.



<가지 연두부 샐러드>

1. 가지를 길게 썰어 찜기에 넣어 5분 찐다.

2. 양념간장을 만든다. (간마늘, 다진파, 매실, 식초, 간장, 들기름, 깨소금)

3. 식힌 가지와 연두부를 접시 위에 올리고 양념간장을 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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