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화요문장

글은 내 영혼의 구원 <불안의 서>

화요일에 읽는 오늘의 문장

by 꽃고래

화요일에 읽는 오늘의 문장 (1).

[2021.11.02.화요일]


“부조리하고 앙상한 내 방 책상 앞에서, 이름 없고 하찮은 사무원인 나는 쓴다. 글은 내 영혼의 구원이다. 나는 멀리 솟아난 높은 산 위로 가라앉는 불가능한 노을의 색채를 묘사하며 나 자신을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내 석상으로, 삶의 희열을 대신해주는 보상으로, 그리고 내 사도의 손가락을 장식하는 체념의 반지로, 무아지경의 경멸이라는 변치 않는 보석으로 나에게 황금의 옷을 입힌다.”

_(30p)│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배수아 옮김│《불안의 서》│봄날의 책


오늘 문학공모전 주최 측에서 연락을 받았다. 해당 출판사는 내 원고 중 동시 2편이 모자라서 원고를 파기한다는 뜻을 무미건조하게 전했다. 형평성의 원칙 때문이란다. 나는 50편 중 48편을 보냈다. 그동안 써온 동시는 48편뿐이었다. 나의 불찰이었지만 자식 같은 원고를 파기한다는 말에 손이 떨려왔다. 사람 참 팍팍하게 군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 그들의 전화하는 수고에 무척 고마웠다. 나는 이렇게 거절의 메시지를 받고, 또 조만간 내게 투고하신 분께 거절의 메시지도 보내야 한다. 어떻게 거절할까 많이 고민했는데, 원칙을 세우고 간단하게 말하는 것이 가장 깔끔할 것 같다. 어떤 과정이든 쉽지 않다. 오늘도 변함없이 지루하고 특별할 것 없는 날, 앙상한 내 책상위에서 나의 희열을 채우는 글쓰기로 다시 몰입한다. 다만, 누군가에게도 희열이 된다면 그보다 더 큰 보상은 없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아가는 것이라곤. <동사의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