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의 허구 그리고 진실은?

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11편 - 모스크바 성 바실리 성당과 렌닌 묘

by 류광민

왜 아름다울까? - 성 바실리 성당

2018년 9월 25일. 왜, 나는 지금 이 붉은 광장에 와 있는가?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비가 내리고 심지어 바람까지 불고 있다. 우비도 입었고 두툼한 옷을 입었는데도 속으로 찬기운이 한가득 들어온다. 꼭 어떤 건물을 봐야 한다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일종의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러시아를 대표하는 건축물 그리고 러시아의 심장 붉은 광장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축물. 그것은 바로 성 바실리 성당이다. 붉은 광장의 한쪽 저 멀리 보이는 바실리 성당은 명성만큼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다양하고 화려한 색들로 한껏 치장한 보석 같은 돔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치 만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환상적인 모습이다.

꽤 비싼 입장료(1인당 700 루블, 한화로 약 만 오천 원 정도)이지만 비를 맞으며 많은 사람들이 줄 서 있다. 우리 부부는 하루 평균 오만 원으로 여행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저하지 않고 그 대열에 합류했다.


'사진에서 보았던 그 아름다운 색색의 이색적인 건축물이 내 눈앞에 서 있지 않은가? 다른 비용을 절약해서라도 당연히 들어가 봐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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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날씨임에도 광장의 모든 시선을 받고 있는 성 바실리 성당

동양에는 흰색의 보석 같은 아름다운 건축물 인도의 타지마할이 있다면 유럽에서는 모스크바의 성 바실리 성당이 그러한 곳이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내부로 들어가 본다. 내부는 생각보다 좁은 길들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다. 실내는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지만 전시되어 있는 유물들이나 미술품들이 크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도 하다. 들어갈수록 조금씩 답답함을 더 느끼고 있었다.

성당은 협소한 공간들로 연결되어 있어서 내부 구조 전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작은 예배실들이 많이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몇 명이나 예배를 보았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내부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곳에서 예배를 자유롭게 보기 힘들었을 것 같다. 성 바실리 성당은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하나님과 만나기 위해서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라는 뜻으로 이해가 된다.


'소수의 사람만이 안내를 받으며 들어와 예배를 보도록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아니면 내부보다는 외부의 아름다움을 더 강조하기 위함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대중이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만들어진 성당이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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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성화로 치장된 천정과 유물들, 복잡한 실내 공간을 알려주는 안내도

성 바실리아 성당을 꼭 방문해야겠다는 전투 의지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좁은 복도를 지나간다. 비싼 입장료를 내었기 때문에 가능하면 찬찬히 돌아보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에 많은 인파와 함께 출구로 나와 있었다. 무언지 모르게 허무하다. 그냥 치루어야 할 의례를 형식적으로 마친 느낌이 확 들어온다.


아직도 크렘린 광장에는 차가운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신성한 성당으로 지어졌을 곳이지만 나는 성 바실리 성당에서 하나님의 신성한 소리를 느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종교와 권력이 자신의 권위를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나타내고자 했던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인도의 타지마할도 그럴까? 언젠가 인도의 타지마할에도 가 봐야겠다. 성 바실리 성당의 아름다움이 성스럽게 느껴지지 않아서 인지 내 몸이 추위를 타고 있었다. 차가운 모스크바의 비와 바람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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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를 부르는 팀들이 있었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 때문에 음악을 즐길 수 없었다. 화려하게 장식된 실내 벽면과 좁은 통로들

레닌은 동네 아저씨?

레닌이 살아 있을 때 만났다면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러시아 혁명을 이끌었던 영웅으로서 엄숙한 지도자였을까?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의 지도자 레닌은 여전히 도시마다 동상으로 살아있다. 하바롭스크 레닌 광장에서 처음으로 만난 레닌은 작고 친근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도시마다 레닌의 이미지는 달랐다. 울란바토르에는 레닌 두상이 엄숙한 모습으로 설치되어 있다. 이 두상을 대상으로 관광객들이 착시 효과를 활용하여 레닌과 입맞춤하는 사진을 찍기도 한다. 과거에 접근하기도 힘들었던 매우 엄숙한 대상인 레닌 동상이, 아직도 러시아 많은 도시에서는 엄숙한 대상이지만, 관광객의 사진 찍기 놀이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레닌 동상이 엄숙한 모습으로 정치적 상징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곳은 노보시비르스크가 아닌가 한다. 노보시비르스크가 자랑하는 국립 오페라 발레극장 앞 넓은 대로변 광장에 거대한 레닌 전신 동상이 가운데 있고 그 옆으로 총칼을 들고 서 있는 노동자, 군인 들의 동상이 함께 서 있다. 사회주의 이념을 레닌 지도자를 중심으로 힘차게 구현해 나가자는 '돌격 앞으로!'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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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마다 여전히 중요한 위치에 당당하게 서 있는 다양한 모습의 레닌 동상들. 대부분 엄숙하고 근엄하다.

성 바실리 성당에서 허무한 느낌으로 나온 우리는 소련 사회주의 혁명을 이끌었고 지금도 러시아의 정신적 지도자인 레닌의 묘로 향했다. 레닌 묘 주변은 매우 엄숙한 분위기이다. 묘 안으로 들어갈수록 그 분위기는 더해진다. 밖에서 떠들어 대던 관광객들도 묘지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모두 엄숙한 조용 모드.


레닌 묘 안에서 나와 아내는 동상에서 보았던 레닌과 전혀 다른 느낌의 레닌을 만났다. 키는 동상에서 느끼는 것보다 훨씬 작았고 마치 동네 아저씨와 같은 친근한 얼굴이다. 사회주의 혁명을 이끌었던 지도자로서의 근엄하고 엄숙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잠에서 깨어나 옆집 아저씨처럼 우리에게 말을 걸어올 것 같은 친근한 얼굴로 누워있다.


'아니 이게 뭐지? 무엇이 진짜 레닌의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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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닌 묘 앞에서 기념 촬영하는 관광객들과 꺼지지 않은 불꽃


모스크바를 대표하는 두 개의 건축물은 '우리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허구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얼마나 사실 그대로를 보면서 살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주었다. 한 달이 넘어가고 있는 러시아 여행에서 우리는 이미지가 주는 많은 선입관 속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을 자주 경험하였지만 레닌의 묘와 성 바실리 성당에서 또 한 번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이제 이미지에 의존하는 관광 소비를 줄여야 여행을 통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겠구나 라는 반성도 함께 해 본다. 그리고 여행은 세상을 보다 실제에 가깝게 보게 하는 기회를 가지게 하는 것이구나 라는 것 또한 확인하게 해 준다.

이미지를 벗고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야 세상이 조금 더 제대로 보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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