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어떻게 권력의 후견인이 되었을까?

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9편 - 러시아 로스토프 성

by 류광민

공간은 권력을 표현한다

모스크바 골든 링 지역 중 마지막으로 방문한 로스토프의 로스토프 성은 러시아에서 중세시대 정원을 제대로 느껴보고 이해할 수 있는 곳이다. 로스토프 성은 엄청나게 큰 Nero 호수를 끼고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아마 이 호수는 이 지역의 풍요와 부를 가져다주었던 중심지였을 것이다. 호수를 중심으로 해가 뜨고 진다. 로스토프 성은 그 Nero 호수를 남쪽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성은 크게 두 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호수 쪽 방향으로 영주가 살았던 성이 있고 성 뒤편에 성당이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공간 배치는 우연의 산물일까? 아니다. 공간의 배치는 항상 권력관계를 나타낸다. 우리가 어떤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자리의 배치를 보고 누가 상위자이고 하급자인지를 직감적으로 알게 되는 이유가 바로 공간의 배치가 권력관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로스토프 성의 이러한 배치는 영주 권력인 세속권력이 전면부에 있고 종교권력이 후면부에 위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로스토프 성은 종교권력이 영주 권력보다 우세한 시대가 아닌 중세시대가 저물어가는 시대, 세속권력이 종교권력을 지배하고 이용하는 시대 상황을 잘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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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성당건물이고 오른쪽 높은 담 쪽이 영주의 통치공간. 영주의 공간 앞, 호수 방향으로 에덴을 상징하는 정원이 배치되어 있다

우리가 로스토프 성에 도착했을 때 성당은 복원 공사 중(작은 기부금을 내고 입장)이었고 커다란 종탑에는 별도의 입장료를 내고 올라가 볼 수 있었다. 종탑에 올라서면 로스토프 시내와 Nero 호수, 넓은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커다란 종들이 걸려 있는 종탑에서 내려와 궁전 정원으로 향했다. 궁전 일부 건물들은 박물관과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아직도 정원은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중세 시대 영주의 성에 있는 건물에 들어서 있는 식당에서 약간의 사치를 부리는 시간을 가졌다. 점심을 먹은 후라 간단한 간식 정도를 주문하였다. 생각보다 저렴하였던 차와 아이스크림이 고급스러운 식기에 담아져 나왔고 우리는 중세시대 성 분위기를 마음껏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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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공사 중인 성당. 상당한 실내 규모와 과거의 화려함을 추측해 볼 뿐이다. 커다란 종이 걸려 있는 종탑과 영주의 성내에 있는 식당 입구.


왜 입구마다 입장료를 받을까?

식당을 나와 어딘가 허전한 마음에 성의 한쪽 문으로 가보니 그곳은 별도의 입장료를 받는 정원이었다. 종탑에 올라갈 때 돈을 받고 영주의 성에 들어올 때도 돈을 또 받고 그리고 또다시 입장료를 내라고 하니 그 돈이 적은 돈일지라도 약간의 거부감이 든다. 이곳 말고도 러시아 다른 곳에서도 성안에 들어가면 전시 시설별로 별도 입장료를 받는 곳이 여러 곳이 있었다.

처음 입장할 때 한 번에 받지 않고 건건이 별도로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입장료를 받는 곳마다 이곳을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결정을 짧은 순간에 해야 하는 것도 작은 고통이다. 통합권을 할인해서 팔면 좋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이것도 문화의 차이일까? 그러고 보니 러시아 여행에서 통합권이나 한 지역의 여러 방문지를 연결하는 패키지 입장권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정원은 왜 만들지?

정원 입구에 세워진 안내도를 먼저 살펴본다. 구역이 직선으로 구분되어 있고 꽤 넓은 정원에 사과나무 정원과 야채 정원이 보인다. 이 성의 영주는 왜 군사 목적이 없는 정원을 성내에 만들었을까? 종교가 권력에 우위에 있던 중세시대의 성들에서 정원은 그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도 않고 그 규모도 매우 작은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영주의 세속 권력이 종교 권력을 지배하게 되면 이를 정당화시키는 공간이 요구된다. 성당이 종교권력을 정당화시키는 공간이었다면 영주 권력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공간 중 하나가 바로 정원이다.

르네상스 시대 때에 만들어진 정원에서 사과는 에덴동산을 상징하고 풍성한 야채는 에덴동산의 풍요를 상징한다. 정원을 직선으로 구분하는 것은 세계가 이성적 질서를 가지고 있음을 상징한다. 즉, 이러한 이성적 질서로 이해될 수 있는 세상에서 인간의 이성은 세계를 통치하는 수단으로 정당화된다. 그리고 그 세상은 신의 축복을 받은 에덴동산이다. 즉, 이성의 중심에 영주가 서 있고 영주가 서 있는 성에 이성적 질서를 가진 낙원의 세상, 풍요로운 세상인 정원이 있는 것이다. 그 정원에서 귀족들이나 영주들이 낙원의 공간을 지배하고 통치하고 있고 그 통치가 정당하다는 이념을 과시하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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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으로 구역이 구분되어 있으며, 사과나무 정원과 오른쪽으로 거대한 야채 등이 심어져 있는 야채 정원이 있다.

바로 그러한 점에서 이 성과 정원은 매우 정치적이다. 성 가운데 영주가 거주하는 공간이 있고 뒤쪽이라고 할 수 있는 한쪽에는 신의 공간인 성당이, 호수가 쪽으로는 신의 영광이 지상에 실현되고 있는 낙원 공간이, 그리고 그 한가운데 세속권력인 영주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 로스토프 성은 르네상스 시대 이후 세속권력과 종교 그리고 공간이 어떻게 조화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곳 중 하나이다.


호박은 식재료가 아니다!!

아내는 입장료를 또 내야 하는 것에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는지 들어가지 말자고 하였다. 그러나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 시대로 넘어오면서 만들어진 정원 중 원형이 잘 유지되고 있는 곳을 어디에서 쉽게 볼 수 있겠는가? 아내와 긴 시간 동안 주저하다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기로 결정하니 관리인 아저씨가 잘한 결정이라고 하면서 힘주어 말한다.

안내 도면대로 정원 입구부터 다양한 사과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사과나무뿐만 아니라 다양한 과일나무도 재배되고 있었고 야채가 심어져 있는 곳에는 대부분 커다란 작물들이 심어져 있었다. 호박은 너무나 커서 사람이 앉아도 될 정도의 크기였고 우리 식탁에 올려져 있을 만한 야채들도 일반 농장에 비해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땅은 거대한 야채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비옥해 보였다.

분명한 것은 이 정원에 심어져 있는 과실수와 야채들이 영주의 경제적 목적을 위해 심어지고 관리되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기에는 너무 좁은 면적이다. 즉 이 정원과 심지어 심어져 있는 호박, 당근, 야채 등은 당시 시대 세계관과 정치적 정당성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인 것이다. 즉, 정원은 풍요가 흘러넘치는 에덴동산인 것이다. 책에서나 보았던 정원을 내 눈에서 직접 보니 신기하기조차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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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앉아도 될 정도로 큰 호박, 먹음직 스럽고 탐스러운 다양한 야채들과 당근. 모두 이 곳이 풍요로운 땅임을 상징하고 있다.


사과를 훔친 아담과 이브

이러한 생각에 천천히 정원을 돌다 보니 어느덧 폐장시간이 다되었다. 관람객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고 우리를 포함해서 몇 명만이 남아있었다. 아까부터 아내는 ‘저 사과 하나 따면 안 될까?’ 하는 욕심을 내고 있었다. 나는 주저주저. 사과는 대부분 아내 키 보다 높은 곳에 달려 있기 때문에 따야 한다면 내가 따야 하는데. 아! 이게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땅에 떨어져 있는 사과가 정원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고 심지어 입구 쪽에 있던 수도에는 떨어져 있던 사과를 담아 놓은 바구니도 있었다. 그 사과 바구니에서 사과 몇 개를 주어서 수도 물에 씻어서 먹어보니 나름 맛이 있다. 그러나 먹어보라고 바구니에 담아놓은 것과 관람객이 사과를 따서 먹는 것은 다르지 않은가? 그 사이에 마침 아내가 사과나무 아래에 떨어져 있던 먹음직한 사과 하나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때 입구에서 표를 받던 아저씨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순간 아내가 당황한다. 혹시 국제적 망신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지금까지 만났던 러시아 사람들처럼 그 아저씨가 다짜고짜 무어라고 말한다. 그리고 사과나무에 걸쳐 놓은 긴 막대기를 집어 들더니 맛있는 사과가 달린 나무를 쳐서 사과를 떨어뜨린다. 우리 보고 사과를 주어가라는 손짓을 하고는 손을 입술에 대면서 “쉬---”. 그 순간 아저씨는 아담이 되고 우리는 이브가 되었다. 신에게 들키면 안 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얼굴 한가득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순간, 나와 아내의 얼굴도 마음도 활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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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기만 홀로 남은 사과나무 밑에서 사과를 몰래 따는 아담과 이브가 되어 본다. 정원에서 가져온 맛있는 사과들

우리는 두꺼워진 겨울 옷 주머니마다 가득히 사과를 담아서 행복한 걸음으로 사과가 풍성한 에덴 정원을 나왔다. 이때부터 사과와 종교 간의 긴 인연을 따라서 우리의 사과 채집 여행은 두 달가량 이어졌다. 동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흔하디 흔한 사과가 단지 먹거리가 아니라 문화의 산물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해 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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