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10편 - 모스크바 크렘린 광장과 고리키 공원
러시아 대륙 횡단 여행 중 가장 기대되는 곳 중 하나가 바로 모스크바 아닐까 한다. 모스크바는 사회주의 혁명의 심장이었고 러시아 문화의 중심지이며 새로운 세계 강국으로 성장하고 있는 러시아의 수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스크바는 너무나 바쁘고 복잡한 도시였다.
시내 중심부에 예약했던 호텔에 높이가 높은 캠핑카가 들어갈 수 없어서 조금 외곽 지역으로 호텔을 다시 잡았다. 그 호텔에서는 그 이전 호텔에 묵었던 증명서가 있어야 투숙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서류를 찾지 못해서 우리는 정식으로 투숙할 수 없단다. 러시아에서 호텔에 투숙하면 이상한 종이 한 장을 준다. 이 증명서를 다음 호텔에 묵을 때 보여주어야 한단다. 참 이상한 제도이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는 여행 중에 러시아 사람들의 친절을 많이 경험하였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짧은 영어로 우리의 상황을 데스크 직원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영어로 대화를 하고 있는데 이 분이 갑자기 한국말로 무어라고 말한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한국인에요?"라고 물으니 그분이 자신은 한국계 러시아인이라고 한다. 그 직원은 모스크바 시내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 호텔 주차장에 무료로 캠핑카를 정박하고 지낼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었다. 물론 호텔의 공용 화장실과 샤워실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었고 캠핑카에 물도 공급할 수 있었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우리는 모스크바를 떠날 때, 그 직원에게 감사한 조그마한 선물을 드리고 나왔다.
우리는 러시아 여행을 하면서 러시아 사람들로부터 참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 같다. 러시아는 겉으로 보면 무거운 느낌의 나라이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사람들과 직접 만나면 항상 따뜻한 나라였다.
어렵게 캠핑카 정박지를 정한 후, 다음날 아침에 모스크바 시내로 출발했다. 아내는 택시보다는 모스크바의 지하철을 이용하자고 한다. 아내가 지하철을 이용하자고 하는 이유는 모스크바 지하철에 많은 예술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갤러리 같은 곳이 있기 때문이었다. 호텔에서 어렵게 찾아간 지하철은 이 나라가 지금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매우 빠르게 움직이는 공간이었다. 사람들 움직이는 속도도 빠르고 지하철 운행속도는 물론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속도까지 빠르다. 한국의 지하철도 빠른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은 너무 빠르다. 심지어 지하철 간 간격이 매우 짧아서 2분 이내에 다음 기차가 도착한다. 금방 다음 열차가 들어오고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들어가고 또 출발하고. 한마디로 정신이 없다. 지하철이 사람들을 바쁘게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분명 지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서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말이다.
지하철을 이용해서 무사히 도착한 크렘린 광장. 사진에서 많이 보았듯이 붉은색 건물들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넓은 광장을 자랑한다. 붉은 광장 주변에 러시아를 대표하는 성 바실리 성당이 있고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크렘린, 웅장한 건축물 분위기의 궁과 같은 고급 쇼핑상가들이 주변을 감싸고 있다. 유럽의 화려한 도시들에서 볼 수 있는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은 보이지 않고 단지 웅장함을 드러내려고 하는 건축물들로 채워져 있다. 사실 크렘린 궁전도 마찬가지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알게 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서 소개한다. 지금과 같은 웅장한 분위기가 나는 크렘린 광장이 만들어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란다. 러시아는 1935년에 모스크바에 사회주의적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해서 건물들의 높이를 맞추고 스타일을 통일시켜 거리를 곧고 더 넓게 바꾸는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출처 : Russia Beyond, 2017.6.30. 엘레나 김. 건물을 통째로 ‘들었다 놨다’,,, 소련의 건물 이동 기술). 이 과정을 통해서 넓고 직선형이면서 웅장한 분위기로 통일된 높이의 건물이 에워싸인 붉은 광장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 필요로 하는 건물은 통째로 들어서 옮겼다고 한다. 옮기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그대로 하였다고 하니 신기한 일이다. 이 작업은 1985년까지 진행되었다고 한다.
웅장하고 엄숙함으로 통일된 이 분위기. 나는 이 분위기가 왜 거슬릴까? 어렵게 이야기하면 나는 현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크렘린 광장은 근대주의가 등장한 이래 서구사회에서 주도한 이성을 중심으로 하나의 권력에 세상을 집중시키려고 하는 세계관과 똑같은 상징을 담고 있다. 단지 그 주체가 공산당이라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
독재국가 시절의 여의도 광장, 중국의 천안문 광장, 평양의 김일성 광장 등이 모두 그러한 정치적 의도가 담겨있는 곳이다. 어찌 보면 사회주의 심장이었던 당시 소련이 생각한 사회주의 정치이념을 드러내고자 하였던 크렘린 광장은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로 통일된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이 상상은 유럽 근대문명이 만들어낸 것과 닮아 있다. 그러나 70년대 이후 지금 유럽의 많은 도시들이 이러한 상상력에서 벗어나고 있고 다양성이 살아 숨 쉬는 광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는 여의도 광장도 독재 시절의 역사적 사명을 다하고 전혀 다른 공간으로 변모되었다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나와 우리는 다양성이 확대되는 세계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이다. 하나의 권력이 아닌 다양한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 하나의 시선이 아니라 다양한 시선과 견해가 공존하는 세상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대사회이다. 크렘린 광장을 웅장함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어색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그 증거가 아닐까? 아니면 나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 다양성이 높은 공간이 나에게는 더 편하게 느껴진다. 왜냐면 나는 현대인이기 때문이다.
모스크바를 대표하는 공원을 뽑으라면 단연 고리끼 공원 이리라. 고리끼 공원은 크렘린 광장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기 때문에 모스크바를 떠나면서 방문하였다. 정말로 어렵게 주차를 하고 찾아간 공원. 입구에 세워져 있는 박물관 건물이 공원 입구 역할을 같이 담당하고 있다. 테마파크 입구에 있는 건물 분위기도 나지만 그보다는 조금 웅장한 모습이다.
아침 일찍 도착해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정원 청소와 관리에 바쁜 모습들이다. 나무에서 떨어져 있는 나뭇잎 하나까지도 쓸어 담으려 한다. 낙엽 하나까지 청소해서 너무나 깨끗해진 정원. 모스크바 강가에 위치하고 있어서 강변으로 나 있는 산책로를 따라 달리기를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여유로운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우리도 이 길을 따라 강가로 나가본다. 강에는 많은 배들이 다니고 있고 저 멀리 유람선도 보인다.
이 공원은 정형식 정원이다. 프랑스에서 발달한 정형식 정원은 직선과 좌우대칭과 같은 균형을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가로수들이 긴 산책로를 둘러싸서 다른 방향으로의 시선을 차단하고 하나의 방향으로 집중시킨다. 반면에 영국에서 발전한 풍경식 정원은 직선보다는 곡선을 통해서 다양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정형식 정원이 하나의 시선에 집중하게 하면서 비슷한 풍경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반면에 풍경식 정원은 곡선을 따라가면서 숨겨져 있는 각각 독특한 풍경을 드러내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프랑스식 정형식 정원은 근대시대 권력자들이 권력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좋아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 고리끼 공원은 절대 권력자를 위한 공간으로서의 정원과 매우 닮았다. 사회주의 심장이었던 러시아의 상상력이 근대 절대 권력자들과 차별화된 공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받아들였다는 측면에서 보면 사회주의가 왜 독재국가가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의 시간은 지금도 흐르고 있다. 이곳에서도 하나의 시선에 집중하는 질서 대신에 약간의 무질서가 들어오고 있었다. 너무나 관리가 잘되어서 지정된 곳이 아니면 함부로 앉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의 공원 잔디밭에 “이제 앉아도 돼.”라고 선언이라도 하듯이 넓은 패드가 최근에 설치되어 있다.
'이제 이 공원의 주인공은 바로 나야.'
우리는 마음껏 모스크바의 뜨거운 태양 빛을 한참 동안 즐겼다. 그래 공원의 주인공은 바로 내가 되어야 하니까. 지금 이 시대의 주인공은 절대 권력자가 아니라 바로 나, 우리가 주인공이다.
모스크바를 대표하는 붉은 광장과 고리끼 공원을 방문하고 나서 “공간의 생산”으로 유명한 프랑스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가 프랑스 공산당을 탈당하면서 말한 것이 생각난다.
"사회주의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공간을 만들어낼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
사람은 공간 속에서 살고 공간을 통해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과 이념을 담는다. 그리고 그 공간은 인간을 다시 지배하고 사회를 강화시킨다. 붉은 광장은 자본주의 근대 이념과 닮아 있다. 자본주의를 극복하고자 한 사회주의가 자본주의 이념을 담은 같은 공간을 만들어 냈다는 것에서 그 한계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새로운 사회는 항상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내야 성공할 수 있다.
아내와 나는 일 년간의 일정으로 사회적 지위와 돈으로부터 자유롭게 떠났다 . 이 캠핑카 여행이 과거와 다른 새로운 삶의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는 과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번 여행을 마치고 나서 나와 아내는 어떠한 새로운 삶의 공간을 만들어 낼 힘과 지혜를 얻게 될까? 정말로 기대되고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