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 세계여행 에세이 8편 - 러시아 수즈달
우리 부부가 캠핑카로 세계 여행을 떠난 지 한 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시베리아 횡단에 많은 시간을 썼기 때문에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그래서 모스크바로 직접 들어가기보다는 골든 링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기로 하였다.
수즈달은 골든 링 지역 중 첫 번째 방문지 블라디미르에서 북쪽으로 36km 정도 떨어져 있다. 우리는 블라디미르에서 수즈달을 거쳐 코스트로마에 저녁에 도착하는 일정을 잡았다. 코스트로마에 너무 늦지 않게 도착하기 위해서 아침 일찍 수즈달로 향했다.
수즈달은 러시아에서 중세도시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도시 중 하나이다. 수즈달을 휘어 감아 흐르는 작은 강 카멘카(Kamenka)와 러시아의 독특한 목재건축물 박물관, 수즈달 크렘린(크렘린은 성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이곳에 와서 처음 알게 되었다), 중세풍 분위기의 시장들이 하나의 그림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우리는 목재건축물 박물관 앞에 있는 주차장에서 아침 식사를 즐겼다. 너무 일찍 도착해서 인지 아무도 없는 주차장. 아침 식사 후, 커피 한잔을 마시고 나니 관광객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주차장에서 강가로 나오니 저 멀리에는 크렘린 유적지가 보이고 풀밭에서 소와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그 소와 양들을 몰고 있는 사람조차도 어딘가 모르게 중세풍 분위기가 난다. 이 모든 것이 순간 하나의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그린 풍경화처럼 느껴진다.
목재건축물 박물관이 아직 문을 열지 않아서 수즈달 크렘린으로 먼저 가기 위해서 강에 놓인 나무다리를 건넌다. 수즈달 크렘린 박물관에 들어서니 샘플로 복원해 놓은 것 같은 러시아의 독특한 나무 건물이 관광객의 관심을 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박물관 내의 유물이 아니라 풍경이었다. 성 뚝 위에서 올라다 보면 카멘카 강과 주변의 푸르름이 눈을 사로잡는다. 둑 위에는 사람들이 햇빛을 여유롭게 누워서 즐길 수 있는 여러 개의 의자가 놓여 있다. 관광객들이 하나둘씩 앉아본다. 박물관을 다 둘러보고 지쳐 나온 우리도 잠깐 시간을 내어서 짧은 시간이지만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본다.
수즈달 중심가에는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와 같은 광장이 있는 상점가가 있다. 이곳부터 수즈달 크렘린까지 이어지는 길에 중세시대 복장을 한 상인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다양한 물건을 판매하고 있다. 중세시대로 돌아갈 것 같은 마차도 그렇고 대장간을 재현해놓은 곳에서 직접 작은 소품을 만들어보는 체험도 관광객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여행은 이전의 편견을 버리게 하고 그 자체로 보게 하는 힘을 가졌나 보다.
또다시 나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수즈달의 풍경이었다. 상점가 뒤편으로 가면 아까 본 수즈달 크렘린 방향의 강과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바로 지금 살고 있는 수즈달 사람들의 집들과 강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 다른 사람들처럼 나와 아내는 그 풍경을 담기 위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조용한 강에서 배를 타는 사람들, 강가에 이어져 있는 마당을 가진 집들, 나무와 풀들이 하나의 화폭에 들어와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모습을 연출한다. 그리고 간혹 보이는 작은 러시아 정교회 지붕들이 이곳이 러시아임을 말해주고 있다.
수즈달의 크렘린과 주변 풍경을 보면서 러시아의 크렘린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혹시 모스크바의 웅장한 크렘린을 러시아의 독재정치 공간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러시아는 독재정치의 나라이고 어딘가 딱딱할 것 같은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찌 보면 내가 가지고 있었던 러시아에 대한 이미지 중 하나가 있었으리라. 수즈달의 크렘린과 풍경들은 그러한 이미지를 사르르 녹게 하였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나 지식이 얼마나 오염되어 있을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