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이라는 건축물이 보이다!

캠핑카 세계여행 에세이 7편 - 러시아 블라디미르와 코스트로마

by 류광민

천상의 소리를 듣다 – 블라디미르의 성 드미트리 성당

많은 러시아 관광가이드북에서 모스크바와 함께 소개되는 골든 링. 러시아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다는 모스크바 인근 지역의 원형 루트를 말한다. 이 지역들은 모스크바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는 카잔을 지나 모스크바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모스크바로 들어가기 전에 골든 링 지역을 방문해 보기로 하였다. 다행히도 50일 비자 제한 기간까지는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중세 분위기가 넘쳐나는 도시 블라디미르

골든 링 중 첫 번째 방문 지역이 바로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르의 주요 관광지는 클랴즈마 강 위 절벽에 위치하고 있다. 대부분의 중세도시들이 내륙에서는 효율적으로 군사적 방어가 가능한 강 언덕에 발달했었던 것처럼 블라디미르도 12세기부터 강 언덕 위에 세워졌다. 정교회의 수도 대주교 관구이기도 했던 곳이기 때문에 러시아 정교회 관련 유적들도 많이 있다. 따라서 블라디미르는 러시아에서 중세시대 분위기가 가장 많이 나는 도시 중 하나이다.

블라디미르의 대표 유적 도미션 성당과 클랴즈마 강 절벽 위의 동상


나 홀로 빛나는 존재 - 성 드미트리 성당

블라디미르에서 나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유적지는 황금색 지붕의 커다란 러시아 동방정교회 건물 블라디미르 도미션 성당도 아니요 구 도심가에 위치한 이색적인 골든게이트도 아니다. 그것은 12세기에 세워진 성 드미트리 성당이었다. 주변에 있는 큰 성당들과 달리 작은 성당이 나 홀로 위치하고 있다. 하얀색 건물. 웅장하지는 않지만 어딘가 매혹적인 면이 나를 이끌고 있었다. 나 홀로 존재해도 그 가치가 빛나는 존재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아내는 유럽 여행에서 많은 성당을 보았기 때문에 이 성당에 별 흥미가 없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한 개의 독립된 건물에 입장료가 있었음에도 혼자 입장을 하였다.


신성한 동굴로 이해된 성 드미트리 성당. 종교인이 아닌 나에게 신성한 느낌을 준 몇 안되는 성당이었다.


내 몸을 사로잡은 유일한 성당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갑자기 내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천장 위로 햇살이 실내를 비추고 있었는데 성당 돔 위쪽에서 나지막하고 저음의 목소리로 느린 속도로 성경을 읽어주는 소리가 흘러 내려왔다. 실내 공간은 그리 넓지 않았고 별다른 장식이나 성화도 없다. 나의 시선과 귀, 심지어 내 몸을 사로잡은 것은 흰색의 단일한 색을 가진 좁은 공간에서 하늘 높이에서 내려오는 신성하게 느껴지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나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나서 많은 성당을 다녀봤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곳에서만 이런 느낌을 받게 되었을까라고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 순간 이 작은 성당이 하나의 동굴처럼 보였다. 옛날 인류가 동굴에 모여서 신을 숭배하던 시절에 동굴 어딘가에서 비치는 햇빛과 신을 찬양하던 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던 공간, 그 바로 신성한 예배가 있었던, 신의 소리가 들렸던 동굴을 도시에서 재현한 것이 바로 성당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성스러운 공간이었던 동굴의 원형에 가까운 작은 성당의 건축물과 그 건축물과 어울리는 단순한 소리의 절묘한 결합이 이루어진 곳. 그곳이 바로 성 드미트리 성당이었다.


성당이 보이기 시작하다

그다음부터 나는 다른 곳에서 성당을 방문할 때마다 성 드미트리 성당과 비교하게 되었다. 러시아를 포함하여 유럽지역을 캠핑카로 10개월 넘게 여행하면서 무수히 볼 수밖에 없었던 성당들에게 일정한 흐름이 있었다. 권력의 중심에 서 있었던 성당들은 중세를 거쳐 근대로 올수록 점점 커지고 권위적인 모습으로 웅장해지고 있었다. 많은 성화와 화려한 장식, 많은 가문들의 문장들이 걸리고 세겨져 있으며 실내 규모가 서서히 커져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높은 벽면에 많은 성화가 걸려 있을수록, 성당에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커질수록 나는 블라디미르의 성 드미트리 성당에서 느꼈던 그 신비로운 소리의 감동을 느낄 수는 없었다.


큰 성당에서는 신이 나와 더 멀리에 계신 것처럼 느껴진다.
아마 신의 공간이 점점 세속 권력의 공간이 되어가기 때문은 아닐까?



러시아 정교회 미사에 참가하다-코스트로마

모스크바 골든 링에 속하는 명소 중 모스크바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코스트로마. 이 코스트로마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방문했으리라 생각되는 곳이 바로 이파티예프(Ipatiev) 수도원. 우리나라 양수리처럼 코스트로마 강과 불가 강 두 개의 강물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13세기 혹은 14세기 즈음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제 방문했던 수즈달의 풍경에 빠져 많은 시간을 보내서 예상보다 늦은 시간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벌써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원래 수도원 앞까지 가서 정박을 하려고 했으나 포기하고 시내 중심에 있는 공용 주차장에 차를 정박시켰다.


아침 햇살의 동화 속의 성

아침에 일어나 식사하기 전에 수도원으로 이동하였다. 마침 아침 해가 코스트로마 도심 뒤편으로 떠오르고 있고 그 햇살이 수도원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강가에 위치하고 있는 수도원을 둘러싼 하얀색 외벽이 햇빛을 받아 마치 공주가 살고 있을 것 같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이파티예프 수도원과 해가 떠오르는 강과 아침 새들의 모습

수도원 앞 강가 주차장에서 아내와 나는 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강가를 따라 수도원을 한 바퀴 돌아본다. 수도원은 큰 성벽 안에 있었다. 성벽을 따라 한 바퀴를 돌아 정문 쪽으로 오니 예배를 보러 오신 분들이 마침 들어간다. 오늘은 일요일. 그래서 우리도 따라서 들어갔다(이 시간에는 입장료가 없었다).


4면이 성화가 가득 찬 좁은 느낌의 내부

'러시아 정교회 미사는 어떠한 모습일까'라는 궁금증이 들어서 조용히 미사에 참가하였다. 수도원에 있는 삼위일체 성당 안은 전체 건물의 규모에 비해 공간이 좁았다.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있는 통행 공간은 4면 모두 성화로 가득 채워져 있고 천정 높이는 그리 높지 않았다. 그래서 마치 성화 속에 들어와 있어서 그림 속 주인공들과 대화를 나눌 것만 같은 분위기를 느낀다.(내부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사진이 없다.)


예배는 모두 서서

이제 예배당으로 들어가 보자. 성당은 다른 성당들과 마찬가지로 몇 개의 돔으로 구성되어 있고 예배당은 가운데 돔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성당 전체 크기에 비해 내부는 그리 면적이 넓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예배에 참가하고 있었는데 모두 서서 예배를 보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다. 예배 시간은 2시간 이상 지속된 것 같았다. 나이 드신 분들은 힘이 드시는지 가끔 벽에 붙어 있는 의자에 앉았다 다시 일어났다 하면서 예배를 이어간다. 우리는 한쪽 벽면 끝에 조용히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계속 서 있어야 만 하는 고통을 인내하면서 흥미로운 예배가 끝날 때까지 참여해보기로 했다.


남자만이 하는 아카펠라

긴 시간 동안 젊은 남자 수도사의 기도문 낭독이 끝나고 성가대가 노래를 한다. 가톨릭 성당에서 일반적으로 남녀로 구성되어 있는 성가대는 신도들보다는 조금 높은 별도의 제단 위에서 노래를 한다. 그런데 러시아 정교회 성당에서는 성가대를 위한 별도의 제단은 없고 다만 앞 쪽에서 합창을 하는데 가만히 보니 전부 남자로 구성되어 있다. 피아노와 같은 악기가 전혀 사용되지 않고 남성 목소리로만 찬송가를 부르는 소위 아카펠라라 성당을 성스러운 공간으로 가득 채운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아카펠라는 악기 없이 목소리로만 화음을 맞추어 부르는 노래이다. 위키 백과에 따르면 카펠라는 이탈리어로 교회이고 아카펠라는 교회식이라는 의미란다. 아카펠라는 중세 시대 교회에서 대개 반주 없이 합창을 한 것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러니까 중세시대에 지어진 성당에서 그 전통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기나긴 역사가 오늘 현대사회에 살아 있는 현장에 내가 서 있었던 것이다.


신에 대한 찬송은 남자만이(?)

그렇게 생각해 보니 중세 시대 교회가 남성 중심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톨릭 신부는 남자만이 될 수 있는 전통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과연 신은 찬송을 남자만이 해야 한다고 말했는가? 신이 신부는 남자만이 해야 한다고 말했는가? 이 또한 인류가 만들어놓은 허상은 아닐까? 우리 인간은 우리가 만들어 놓은 허상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예배와 연극

아름다우면서 중후한 남성 화음의 성가대 노래가 끝나고 나서 가톨릭 성당에서 많이 보던 높으신 수도승이 수행하는 예배 장면이 연출되었다. 나의 이목을 가장 끌었던 재미있는 것은 예배당 앞 쪽 벽장 속에서 갑자기 문이 열리고 지위가 높아 보이는 수도승이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향로를 들고 예배당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예배를 진행한 후, 다시 퇴장하자 문이 닫힌다. 이 장면은 예수가 하나님 말씀을 전하려고 하늘 세계에서 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에 내려왔다 다시 올라가심과 세속의 인간은 그 너머 하나님의 세상에 아직 갈 수 없는 현실을 재현하고 있다. 그리고 신도들이 서 있는 예배당 이쪽은 하나님과 만나는 전이 지대이고 성직자는 그 전이 지대를 넘나들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라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특별한 권한을 가진 성직자에게 복종하게 되는 것이리라.

푸코는 '공간은 생산한다'라는 근대성을 분석하기 위한 명제를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공간은 사회권력이 원하는 일정한 방향으로 사람을 스스로 움직이게 한다는 의미이다. 나는 두 개의 성당을 통해서 푸코의 명제가 우리 인류 역사 전체에서 통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모든 종교마다 각자의 가르침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교의 어려운 가르침을 자세히 알기보다는 성당이나 예배당과 같은 공간이 던져주는 상징을 더 쉽게 수용하는지도 모르겠다. 종교의 숭고하고 가치 있는 가르침에 집중하기보다는 성당이나 예배당과 같은 공간을 통해서 우리 세상 저 너머에 하나님의 세상이 있다는 그러한 믿음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메커니즘이 세속 권력과 결합하여 자꾸 성당은 더 커지고 웅장해지고 화려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내와 나의 일 년간의 캠핑카 세계 여행에서 만나게 된 큰 성당이나 다양한 성화로 치장된 예배당에 거부감이 드는 반면에 블라디미르에서 만난 작은 크기의 별다른 장식이 없는 성 드미트리 성당이 더 성스럽게 느껴지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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