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18편 - 리투아니아 케르나베 유적지구
라트비아 수도 리가를 떠난 아톰의 다음 목적지는 3백여 킬로 떨어진 리투아니아 수도 빌리우스. 아톰으로는 쉬지 않고 가야 4시간 이상이 걸린다. 오전에 리가를 떠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리가로 오기 전에 방문했던 시굴다에서 전조등과 후면 등이 오작동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시굴다 정비소에서 릴레이라는 부품을 교체해야 하는데 부품이 없어서 고쳐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리가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었던 현대 자동차 대리점에 관련 부품을 주문했었다. 오늘 그 부품을 찾으러 가야 한다.
그 부품을 찾아 원래 자리에 꼽으면 정상 작동이 될 것이다. 이제 릴레이라는 부품도 직접 꽂아 볼 수 있다. 아내는 나를 말린다. 전문가에게 맡기자는 것을 거부하고 꼽아본다.
"캠핑카 세계 여행자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
그러나 전조등 쪽은 정상적으로 들어오는데 뒤쪽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뽑았다 끼었다를 여러 번 시도해보았다. 결국 같은 증상. 하는 수 없이 현대자동차 대리점 직원에게 구조의 손길을 요청했다. 다행히 기꺼이 도와주겠단다. 간단하게 어떤 스위치를 누르니까 완벽하게 정상 작동. 정말로 감사할 뿐이다.
그런데 이 덩치 큰 친구가 우리 차를 보더니 정말로 한국에서 왔냐고. 한국에서 직접 몰고 온 차를 처음 본다고 한다. 매우 흥미롭단다. 그 친구는 우리 차를 연신 카메라에 담는다. 서로 기쁜 마음으로 기념사진 촬영. 안녕. 고마웠어요!
어느덧 시간이 지나서 오늘 빌리우스까지 직접 가는 것은 무리였다. 큰 도시에 저녁 늦게 들어가는 것은 피하도록 운행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저녁 늦게 도착해서 적절한 정박지를 찾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작은 도시에서는 주변에 무료 주차하고 하루 밤을 보낼 만한 곳을 발견하기가 용이하다. 그래서 중간에 거쳐갈 지점으로 빌리우스와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케르나베를 정했다.
사과가 잔디밭을 붉게 물들이는 곳
빌리우스에 가까워 오니까 내비게이션이 작은 포장도로로 들어가라는 안내를 한다. 케르나베는 작은 마을이어서 작은 길들을 이리저리 돌고 돌아 도착하였다. 집집마다 반드시 심어져 있는 사과나무들이 집 정원은 물론 정원 밖 길거리까지 사과를 뿌리고 있다. 발트해 3국은 모두 사과가 정원수인가 보다. 멀쩡한 사과가 땅에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는다. 그러한 점에서도 세 나라는 유사한 점이 많이 있는 나라이다.
역사지구가 풍경 지구가 되다
빌리우스에 가기 전에 쉬어가는 곳으로 설정하였던 이곳 케르나베는 2004년에 세계문화유산지구로 지정된 고대 역사 유적이 있는 역사지구다. 역사지구 앞에는 Neris 강이 흐르고 이 강을 따라 세워졌던 고대 성곽과 도시 터, 주거지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푸른 풀밭으로 덮혀져 있는 언덕처럼 보이는 옛날 성곽 터들이다. 자연적인 언덕이 아니라 군사적 목적으로 쌓아 올린 것처럼 보인다. 무서운 무기를 든 군인들이 없고 성곽으로 사용했을지 모를 나무 장벽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 이곳은 강을 통해 드나드는 교통과 물자를 통제하던 권력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교통 수단의 변화는 이 역사의 공간을 한동안 쓸모 없는 땅으로 만들어버렸다.
이제 이곳은 강과 어우러진 하나의 풍경으로만 보인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과거 역사지구이기 보다는 아름다운 풍경 지구로 즐기려는 듯하다. 늦가을이 시작되어서 커다란 활엽수 잎이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침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낙엽에 뿌려지는 햇살이 노란 잎을 황금 빛으로 만들어 눈이 부신다. 아이가 낙엽을 가득 주어서 하늘에 뿌리고 부모는 그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우리는 그 모습을 또 사진에 담는다.
아내 다리가 아파요!
계속된 강행군으로 아내의 다리가 아직도 아프다. 오늘은 많이 걸으면 안 될 것 같다. 강아래 유적지구를 다 돌아보면 좋겠지만 전망 지점을 중심으로 가벼운 산책 정도로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벌써 해가 지기 시작한다. 관광객들이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간다. 가끔 지나가던 자동차 소리마저 없어지고 주차장 앞 카페도 문을 닫았다. 오늘 밤도 아톰과 우리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너무나 조용한 밤이다.
내일에는 아내 다리가 조금 나아지겠지. 오늘 아내의 아픈 다리 때문에 불안하지만 이 또한 지금까지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었듯이 좋아질 것이리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