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17편 - 라트비아 리가
발트해 3국은 세계 대전을 통해 많은 사람이 죽은 비운의 땅이다. 그중에서 라트비아는 인구 3분의 1이 죽을 정도로 상처가 가장 깊은 나라이다. 라트비아 수도 리가를 다니다 보면 많은 국기들이 걸려있는 것을 보게 된다. 아마 더 이상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지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국민의 열망이 국기에 담겨 있는 듯하다. 라트비아 수도 리가는 약간 회색 분위기의 도시이지만 일 년 내내 연극과 오페라가 공연되고 있는 문화 도시이기도 하다.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훌륭한 발레 공연과 성당에서 좋은 음악을 우연히 경험 한 감동을 가지고 우리는 리가에서도 공연을 보기로 하였다. 리가 시내에 있는 라트비아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는 일 년 내내 다양한 오페라가 상연되고 있었다. 연극만을 전문적으로 공연하는 연극 극장에서도 일 년 동안의 공연 프로그램이 안내되고 있었다.
체류 기간이 길지 않았기 때문에 연극 관람은 포기하고 오페라를 보기로 하였다. 다행히도 우리가 머물기로 한 기간에 유명한 오페라 '투란도트'가 공연되고 있었다. 우리가 원하던 대로 8유로짜리에 괜찮은 좌석이 배정되어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우리 좌석은 무대를 바라보고 왼쪽의 뒤쪽 가운데쯤이었다. 영어 자막을 편히 내려다볼 수 있어서 피곤하지 않고, 극에 몰입하기가 쉬웠다.
훌륭한 음악과 연기에 감동한 투란도트를 보고 나서 주인공이 투란도트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인지가 궁금해졌다. 이에 관하여 아내와 몇 가지 의견을 나누었다. 아래 글은 이와 관련하여 나눈 이야기를 아내의 일기에서 가져온 내용이다.
투란도트를 보면서 또 하나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푸치니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에 관한 것이었다. 이 작품은 비록 그가 끝내 완성하진 못했지만 죽기 전까지 혼신의 힘으로 만든 작품이다. 그가 죽음 앞에서 절실하게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오페라가 끝나고 광민 씨가 이 극의 주인공은 '류'인 것 같다고 한다.
나는 오페라를 보는 동안 극 속에서 더 큰 상징을 찾고 있었다. 투란도트가 그의 선조 할머니가 외국의 왕자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 한을 품고 수수께끼를 내어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이국의 왕자마다 죽인다는 것에, 그리고 침략을 당하여 자신의 나라에서 쫓겨난 왕자를 통해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것에 혹시 메시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공주의 남성 혐오는 침략전쟁에 대한 혐오를 말하며 예술가가 죽기 전 인류에게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푸치니가 이 작품에서 만들었던 마지막 부분이 왕자 칼라프를 짝사랑한 '류'의 죽음의 순간 까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가 죽음을 앞두고 혼신의 힘을 다해 말하고 싶은 것은 류의 죽음이 뜻하는 비극적이지만 완전한 사랑이 었을지도 모른다. 푸치니는 배우들이 등장에 따라 악기를 다르게 사용했는데 왕자인 칼라프는 현 , 투란도트는 목관과 현 , 그리고 칼라프를 짝사랑한 비운의 여인 류는 목관과 현에 솔까지 사용했다고 한다. 단순하고 선명한 칼리프에 비해 훨씬 더 복잡하고 심오한 류의 심리를 표현하려 한 의도로 가정해 본다면 이극의 주인공은 류가 맞는 것 같다. 그렇다면 푸치니는 사랑의 승리를 말하기보다 사랑의 승리를 이루기 위해 제물처럼 바쳐지는 보다 더 숭고한 절대 사랑에 대하여 말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광민씨 말대로 '류'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좋은 음악과 훌륭한 극장에서 너무나 좋았던 투란도트. 류의 사랑을 중심으로 볼 수도 있고 투란도트를 중심으로 해석해도 되었던 오페라. 진실은 자신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일지 모르겠다. 그 감동을 간직하며 우리는 구도심을 관광하고 있었다.
그 때 리가 구시가지에서 또 다른 음악회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다. 작은 성당에서 점심시간에 30분간 개최되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회 포스터가 우리 눈을 끌었다. 에스토니아 탈린에서의 성당 연주 감상 경험이 너무 좋았던 우리는 기꺼이 참가하기로 하였다.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성당 안에 설치된 악기 중 가장 최고인 악기가 파이프 오르간이 아닐까 한다. 그 파이프 오르간 음악을 성당 안에서 직접 들을 기회가 생긴 것이다.
안내 포스터에는 공연 시간과 장소에 대한 정보는 있었지만 입장료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구시가지 다른 곳에 들렀다가 시간에 맞추어 성당 입구에 도착했다. 일단 줄을 서서 성당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 줄 끝에 있는 매표소에 작은 글씨로 표 가격이 10유로라 쓰여 있다. 약간 부담이 되는 금액이다. 시간도 30분 공연이고 정식 유료 공연장도 아닌 성당에서의 공연이므로 1인당 10 유로이면 꽤 큰 금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신 분들 대부분이 나이가 지긋하신 관광객들이었다.
우리 조금 앞에 있던 어떤 노인 신사분이 우리처럼 10 유로 요금이 부담되나보다.
관광객 : ‘혹시 노인 할인요금제도는 없어요.’
담당 직원 : ‘요금은 오직 하나 10 유로입니다.’
라고 짧게 말한다. 그분이 화가 났는지 ‘참 당신 불친절하군요.’ 하시면서 10 유로를 내신다.
다른 분들과 함께 오셨을 텐데 요금이 비싸다고 돌아갈 수도 없지 않은가. 요금에 대한 안내가 성당 밖에 쓰여 있었으면 이러한 불편한 일을 줄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 성당이 꽤 있지만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직접 들어볼 기회가 흔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공연을 보러 오셨을 것이다. 그렇지만 30분 공연에 10유로는 유럽의 노인 관광객들에게도 작은 돈은 아닐 것이다. 조금 친절한 안내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파이프 오르간 연주회는 나름 괜찮은 연주였다. 하지만 성스럽게 느껴져야 할 음악이 성당의 돈벌이가 아닌지 하는 불편한 마음을 완전히 씻어내지는 못했다. 항상 좋은 감정만 있을 수는 없는게 세상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