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16편 - 라트비아 시굴다
에스토니아 휴양 도시 파르누를 떠난 우리는 라트비아 수도 리가로 들어가기 전에 Gauja 국립공원에 있는 체시스와 시굴다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파르누를 떠난 차는 리가만을 따라 남쪽으로 난 직선도로를 한참이나 신나게 달린다. 두 시간도 안되어서 차 안의 또 다른 여자 친구 시직(무료 내비게이션) 얼굴에서 국경 표시가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 더 가면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국경이 나오는가 보다.
처음 가보는 셍겐 협정 국가 간의 국경. 과연 셍겐 협정 국가들의 국경은 어떤 모습일까?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 든다는 셍겐협정 국가의 국경을 처음으로 넘는구나 하는 마음에 설레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마음도 잠시. 네비는 국경을 넘었다고 표시하고 있는데 차는 도로 위에 아무런 장애물이 없는 직선도로를 그대로 달리고 있었다. 창 밖으로 멀어져 가는 과거 국경 검문소로 사용했던 건물들이 아니었으면 에스토니아 국경을 넘어 라트비아에 입국하였다 사실을 알 수 없을 뻔하였다.
분명 셍겐 협정을 통해 국경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을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잠시이긴 하지만 설레고 긴장되었을까? 그것은 아마 우리가 분단국가라는 세계에서 유일한 특수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비행기로만 국경을 넘어 다니고 육로로는 국경을 넘어가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어 다닐 수 있다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아닐까? 이 작은 질문을 내 가슴에 품고 또다시 다음 여행을 시작해 본다.
체시스에서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Gauja 국립공원 주차장에 정박하기로 한 계획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10월 초가 되어서 하루 해가 빨리 지고 있다. 체시스를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 주변에 어둠이 내리고 있다. 야간 주행은 항상 부담이 된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가능한 한 빨리 적당한 정박지를 찾아야 한다.
중간에 몇 군데 찾아보았지만 실패. 오히려 시간만 낭비했다. 밤늦게 국립공원 주차장에 도착하면 어떤 문제가 있을지 모른다. 혹시 문은 닫혀 있을지, 또는 정박이 불가능한 상황은 아닐지? 등등. 그래도 하는 수 없다. 사전에 찾아본 정박 후보지까지 가야 한다.
그런데 목적지를 몇 km 남겨 놓은 지점에 넓은 공용 주차장이 나타났다. 다행히다. 넓은 주차장에 몇 대의 차들만 있고 주변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정도면 아톰과 함께 하루 밤을 보내기에 충분하다. 국립공원 주자장 환경이 정박에 적합한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무리할 필요는 없다. 오랜만의 단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우리는 시굴다 도심 한가운데에 있었다.
Gauja 국립공원으로 둘러싸여 있는 시굴다는 전체가 공원과 같은 도시이다. 높은 빌딩은 보이지 않는다. 아침 일찍 산책하다 만난 루터교회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았지만 교회 관계자 분이 교회 뒤 잔디밭에서 커다란 솥을 걸어 놓고 많은 양의 스푸를 끓이고 있다. 저 많은 양의 스푸는 누구와 나누어 먹는 것일까? 넓은 잔디밭과 나무들이 주변을 감싸고 있어서 교회가 도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깊은 숲 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도 이러한 여유가 있는 곳에서 살 수는 없을까?
아침 식사 후에 향한 곳은 시굴다 성이다. 아직 복원 공사가 마무리된 곳이 적어서 볼거리가 많은 성은 아니지만 시굴다 성은 유적 이외에 또 다른 선물을 주는 곳이다. 시굴다 성에 있는 첨탑 안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본다. 탑 아래에 Gauja 강이 흐르고 눈 앞에는 노란 잎, 붉은색 잎으로 물든 나무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강 반대편에는 이름 모를 고풍스러운 건물이 보인다.
시베리아 대평원에서는 자작나무 숲이 은백색으로 신비로운 풍경화를 선사해주었고 에스토니아에서는 침엽수의 푸르름이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을 주었다면 시굴다에서는 활엽수들이 노란색과 형형색색으로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9월에 지나온 시베리아는 지금은 꽁꽁 얼어붙은 동토의 계절이 되었겠지만 시굴다는 아직 늦가을을 즐길 시간적 여유를 주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게 되면 빨리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곤 한다. 지금 시굴다에서 또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차를 몰아 국립공원 주차장 쪽으로 이동하였다. 국립공원 안내소와 함께 있는 주차장은 가우자 강가에 있고 잘 가꾸어져 있는 공원 산책로와 연결되어 있다. 국립공원의 대표 명소인 구트 마니 동굴, 젊음의 샘물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안내직원이 차가 크다고 한참이나 쳐다본다. 그러더니 일반 승용차 주차 공간 옆으로 길게 나 있는 여유 공간에 차를 대란다. 하마터면 우리는 아톰을 주차시키지 못해서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만 할 뻔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감사한 일이다.
차를 주차시키고 나서 성 첨탑에서 내려다보았던 풍경화 속으로 들어가 본다. 주차장 너머에는 관광객의 호주머니를 유혹하는 연주자들의 음악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넓은 잔디밭, 작은 호수와 숲들이 어우러져 있는 사이로 잘 정돈된 산책로가 나타난다. 산책로를 따라 저 멀리 숲 아래에 커피 등을 팔고 있는 이쁜 휴게소가 보인다.
“저기에서 차 한잔 마시고 가면 안될까? ”
아내는 휴게소에서 낭만을 즐기며 차를 마실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사실 두 사람이 커피를 마시려면 최소한 10유로 가까운 돈을 내야 할 텐데 효용가치라는 측면에서 보면 아내 입장이 이해가 된다. 우리는 여행할 때, 커피나 차와 같은 음료를 대부분 보온병에 들고 다녔다. 그리고 분위기가 좋은 벤치에서 나누어 마시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즐거웠다.
‘그래. 내가 포기해야지.’
그러나 왠지 아쉽다.
아름다운 남녀 간의 전설로 유명한 구트마니 동굴. 그러나 명성에 비해 작은 규모에 약간 실망감이 든다. 구트 마니 동굴 뒤 쪽 산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본다. 성 반대편 쪽에서 보는 공원 풍경은 어떠한 모습일까? 산 등성이에 나 있는 트레킹 코스를 따라가 본다. 울창한 숲 속의 커다란 나무들 때문에 성 쪽의 풍경은 잘 보이지 않는다. 가끔 씩 성이 보일뿐이다.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와 시굴다 반대편에 있는 크라물다 케이블카 주차장 쪽으로 아톰을 데리고 이동한다.
케이블카는 가우자 강을 건너 시굴다와 연결하고 있어서 가우자 국립공원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에는 마감 시간이 다 되었다. 케이블카를 타는 대신에 옆에 있는 고택, 크리 물다 만호 쪽으로 산책을 나섰다. 옛날 부자들의 휴양 저택이었을 것 같은 분위기이다. 만호에는 관광객이 다닐 수 있도록 문이 열려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젊은 친구가 와인을 팔고 있었다. 작은 병에 10유로인데 이 만호에서 생산하는 것이란다. 작은 컵으로 한 잔 시음. 달달하다.
"하나 살까? "
"그래."
이 작은 달달한 와인 1병으로 우리는 만호 저택의 주인공이 되어보는 사치를 누려보았다. 이 만호의 반원 모양의 여름 휴양을 위한 간이 숙박시설이 내 눈길을 끈다. 방문이 잠겨져 있었지만 안을 들여다볼 수는 있다. 지금도 여름에는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반원으로 되어 있어서 여름 햇살이 모든 방에 잘 들어갈 수 있다. 여름이 상대적으로 짧은 이 나라에서 여름 휴양지로 꽤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만호를 지나 밖으로 나오니 작은 마을이 나온다. 관광객을 위한 카페도 하나 보인다. 대부분 집들은 주민들이 살고 있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저 쪽에서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사과를 비닐 주머니에 가득 담아 들고 즐거운 표정으로 오고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이게 뭐지? 여기에도 사과가!
아내 : “ 저 사람들 사과 주어 오고 있는 거지?”
나 : “ 글쎄. 사 가지고 오는 것 아닐까?”
아내 : “아니야. 저 사람들 사과 주어 가지고 오는 게 분명해.”
마을 집집마다 정원에 사과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그리고 넓은 공터에는 여러 그루의 다양한 사과나무들이 사과를 주렁주렁 달고 서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바닥에는 역시나 많은 사과들이 떨어져 있었다.
‘그래. 아까 그 사람들이 저 사과를 주어 가지고 온 것이 맞아.’
그러나 벌써 날씨는 어두워지고 있었고 사과를 주워 가지고 올 수 있는 아무런 준비도 없었던 터라 일단 아톰에게로 돌아왔다. 그날 밤 우리는 내일 아침 산책길에 그 사과를 주어 오기로 하였다.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는 차들마저 떠나고 나니 주차장에는 아톰과 우리만이 남았다. 주변이 모두 숲으로 둘러싸여 어두운 가운데 조명이 들어온 우뚝 솟아 있는 케이블카 탑은 홀로 빛나고 있다. 그리고 주차장에 가로등이 켜진다. 마치 우리와 아톰을 위한 무대 조명이 켜져 있는 듯한 분위기. 오늘도 숲 속에서 조용하고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안개가 끼여 있다. 안개 낀 공원을 지나고 마을을 지나는 산책길에 나섰다. 어제 봐 두었던 사과나무에서 빨간 사과와 하얀 사과를 비닐봉지 가득히 담아왔다. 이번에도 키가 큰 아담이 사과를 땄다. 이브는 사과를 줍고.
언제까지 떨어진 사과를 주울 수 있을까?
러시아에서 시작된 사과 채집은 에스토니아로 이어지고 지금 라트비아에서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