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14 - 에스토니아 탈린의 음악 여행
에스토니아는 발트해 3국 중 가장 부유한 나라이다. 그래서인지 수도 탈린의 구시가지는 매우 잘 정돈되어 있다. 그리고 중세도시 분위기를 마음껏 자랑하기 위해 투자를 많이 했다는 것이 여기저기에 보인다. 골목마다 사진에 담아야 할 풍경들이다. 참 예쁜 도시이다. 발트해 3국인 라트비아 수도 리가, 리투아니아 수도 빌니우스와 비교해 보면 단연코 가장 예쁜 도시이고 잘 정돈되어 있으며 과거 유적을 잘 보존해서 활용하고 있는 도시이다. 그 골목길 하나하나마다 색다른 볼거리가 있다. 그리고 그 골목길에 실제 거주하고 살아가는 지역주민들의 생생한 모습들을 볼 수 있는 활기찬 공간이다.
항구에 있는 정박지에서 하루 밤을 보낸 후에, 아침부터 탈린 여행을 시작했다. 첫인상은 매우 깨끗하고 구도심 건축물들이 잘 정돈되고 사용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사용하지 않았던 건물들을 활용해서 문화공간으로 만들거나 다양한 쇼핑거리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 소위 말하면 문화를 활용한 도시 재생 사업이 상당 부분 자리를 잡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두세 시간 넘게 탈린을 여행하다 보니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이럴 때 꼭 나타나는 곳, 바로 성당이다. 높고 큰 원형 천장을 가진 성당은 항상 훌륭한 소리통이다. 일부러 소음을 내는 게 아니라면 모든 소리를 성스럽게 만든다. 나는 러시아 블라디미르의 작은 성 드미트리 성당에서 흘러나온 소리가 얼마나 성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지를 경험한 적이 있다. 그 경험 이후, 나는 성당을 하나의 소리 울림통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탈린 구시가지를 구경하던 중, 우연히 성 마리 성당에 입장하였다. 크고 화려한 성당은 아니지만 차분한 느낌의 성당이다. 우리는 이번 여행 중, 성당에 들어가면 차분하게 내부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항상 휴식 겸 의자에 앉아서 성당 분위기를 느껴 보려 노력하고 있다. 조금 큰 도시의 구시가지를 걷다 보면 하루 10여 km 정도를 걷는 일이 다반사였다. 평상시에 많이 걷을 일이 없던 우리로서는 힘이 꽤 드는 일이다. 그래서 가끔 쉬어가야 한다. 성당은 우리가 쉬어가기에 최고의 장소이다.
이번 성당에서도 마찬가지로 걷느라 힘들었던 다리도 쉬고 탈린의 성당 분위기도 느껴 보려고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성당 앞 쪽에서 두 명의 여성 연주자가 이름 모를 악기로 연주를 하고 있다. 가끔 서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며 자유롭게 연주 연습을 한다. 이 음악 연주회에 깊은 관심을 가지는 관람객도 없다. 우리 부부만이 관람객이 되었다. 아까 들어올 때 입구에서 보았던 연주회 포스터가 생각났다. 그 연주회를 위한 사전 연습이었다. 두 명의 서로 다른 악기로 만들어지는 화음이 신비로운 소리로 성당을 채운다. 그 소리가 우리 부부를 사로잡고 있었다. 아마 며칠 내로 본 공연이 있을 것이고 그때 우리는 탈린에 없을 것이다. 이 시간과 이 기회를 충분히 즐기기 위해서 우리는 연주회 연습을 1시간가량이나 감상하였다. 사전 연습이기 때문에 완벽한 연주회는 아니지만 성당 공연장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소리 그 자체로 완벽하다. 그리고 두 명의 연주자가 우리를 위해 연주회를 개최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완벽한 공연은 없다.
사실 나는 클래식과 같은 서양 음악에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시간가량이나 딱딱한 의자에 앉아 연주회 연습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나에게 놀라운 일이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여행 중에 성당에서 이루어지는 음악회에 기회가 될 때마다 참가하였다.
성당을 나와 구시가지 여행을 마친 후, 아톰이 쉬고 있는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에스토니아 국립극장에 들러 프로그램을 확인해보니 오늘 저녁에 ‘백조의 호수’ 발레 공연이 있다고 한다. 모스크바에서 볼쇼이 극장에서 꼭 봐야 한다고들 하는 오페라나 발레 공연을 우리는 체류 환경이 좋지 않아서 볼 수가 없었다. 그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 탈린에서 접해보기 힘들었던 발레나, 오페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극장 매표소로 가보았다. 다행히도 제일 싼 좌석이 남아 있었다. 예산이 충분하지 않은 우리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좌석이었다.
공연 시간에 맞추어 다시 찾은 국립극장. 입구에 도착하니 직원들이 좌석에 따라 입구를 안내한다. 관객들은 대부분 나름 멋진 옷을 입고 입장한다. 우리는 소위 말하는 격식 있는 옷을 준비하지 못했다. 가져온 옷 중에서 가장 점잖아 보이는 옷으로 입고 왔지만. 소위 격식 있는 옷을 입지 않았다고 입장이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산 좌석은 가장 높은 층에 있다. 다행히도 좌석은 난간에서 가까운 곳이라 무대가 다 보이는 위치였다. 가장 비싼 좌석을 포함해서 모든 자리가 꽉 차있다. 관현악단의 악기 조율 소리가 이제 곧 발레 공연이 시작됨을 알리고 있고 잠시 후, 조명이 천천히 어두워진다. 걱정과 달리 너무나 유명한 스토리이어서 인지 아니면 관현악단의 음악과 배우들의 춤이 잘 어울려서인지 몰라도 발레 공연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한 번의 휴식을 포함해서 두 시간이 넘는 발레 공연이 끝났다. 관객들이 모두 힘찬 박수를 보내고 일부 관객은 브라보를 연신 외쳐댄다. 그 박수 소리는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젊은 시설 서울의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발레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에는 발레 공연이 대단히 지루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번 공연도 그러면 어떡하지 했는데 우려와 달리 2시간 넘는 발레 공연 내내 몰입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발레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가지게 된 시간이었다. 그것도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말이다. 이렇게 고급스러운(?) 발레 공연에 다시 가 볼 기회가 있을까?
서양 클래식을 즐겨 듣지 않았던 내가 클래식 음악에 깊게 빠져 본 날이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클래식 음악이나 발레 공연을 자주 즐기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