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진짜 캠핑카 여행이야!

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13 - 에스토니아 Lahemaa 국립공원

by 류광민

우리나라 국립공원과 너무 달라요!

우리나라 국립공원에는 대부분 탐방 안내소나 사무소가 있다. 이 시설을 중심으로 탐방로나 휴양 편의시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그런데 에스토니아 Lahemaa 국립공원(에스토니아와 러시아와의 국경 도시 나르바에서 수도 탈린으로 가는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에 대한 정보를 아무리 찾아봐도 안내소나 관리사무실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가장 유사할 것으로 생각되는 지점을 찾아서 달린다.

차는 어느덧 중세시대 영주 건물처럼 보이는 고풍스러운 만호 건물을 지나더니 울창한 숲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차에 내려서 잠깐 작은 일도 보고 휴식을 취해본다. 숲에는 넓은 관리용 도로들이 나 있었고 주민들 몇 분이 버섯을 채취하는 모습도 보인다. 관리용 도로를 제외하고는 원시 그대로의 모습에 가깝도록 사람 손을 거치지 않은 숲이다. 그런데 숲에서 처음 맛아보는 참 좋은 향기가 난다. 바닥에 깔려 있는 이끼류에서 나는 향기 같았다. 우리는 한참이나 숲 속을 거닐며 숲의 향기를 온몸으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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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용으로 운영되고 있는 만호주택과 너무나 좋은 향기가 가득한 소나무 숲 속


뜻밖의 선물

내비게이션이 안내해 준 지점에 도착하니 어느덧 저녁 시간이 다되었다. 그런데 탐방 안내소는 없고 탐방로 안내판과 화장실, 잔디밭으로 된 주차장, 바베큐장과 벤치, 화장실 등이 설치되어 있는 캠핑장 같은 곳이 나온다. 순간 당황. 일단 주변을 탐색해 보자. 다행히 캠핑하러 온 사람들을 위한 무료 시설이었다. 그리고 바비큐를 위한 마른 장작도 마련되어 있었고 숲 속에는 성수기 때에 사용될 것 같은 관리 시설들과 수도 시설도 있었다.

저녁이 되었으니 오늘은 여기에서 자기로 하였다. 벌써 해 지는 시간이 빨라지고 있다. 가득 차 있던 변기통 폐수를 화장실에 깨끗하게 처리하고, 물도 보충 한 후, 나는 주변을 꼼꼼히 살펴본다.

작은 계곡에는 깨끗한 물이 흐르고 주변은 커다란 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이곳은 에스토니아 아니 유럽의 첫 밤을 보내기에 최고의 장소이었다. 다만, 숲에는 우리 말고 아무도 없다는 점이 약간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였지만 말이다.

20181001_153827.jpg 에스토니아 첫 정박지가 되어준 무료 야영장. 캠핑에 필요로 하는 기본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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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을 쪼개어 처음으로 해본 돼지고기 바베큐, 정박지에서 주은 사과

바비큐 시설을 가만히 보니 마른 장작은 물론 장작을 패는 장치도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누군가 사용하다가 놓고 간 것 같은 나무에 불을 쉽게 붙이는 데 사용하는 연료 큐브도 있고. 누가 우리를 위해 마련해 놓은 것처럼 모든 게 다 준비되어 있었다. 이런 기회를 그냥 보내면 안 되겠지. 나는 아내에게 말한다.


"우리 바비큐 해 먹자."


바비큐를 할 계획은 전혀 없었지만, 다행히 에스토니아 들어올 때 사온 돼지고기와 닭고기가 있었다. 바비큐는 역시 돼지고기이다. 두 달 가까이 지나온 캠핑카 여행이었지만 제대로 된 캠핑은 처음 아닌가? 돼지고기 바비큐를 할 생각을 하니 아이들이 캠핑 갔을 때처럼 기분이 들뜬다. 커다란 장작을 작게 쪼개고 불을 붙인다. 한국에서부터 차에 있었지만 한 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던 바비큐용 석쇠를 가져와서 불에 올리고 돼지고기 목살을 정성스럽게 굽는다. 아내와의 첫 번째 캠핑장 저녁 식사를 위해 그동안 한국에서 구워봤던 실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나무 향이 배어 있던 돼지고기 목살의 그 맛이 지금도 그리워진다. 이렇게 우연하게 만난 행복한 에스토니아 첫날 저녁이었다. 러시아에 사 온 맥주 한잔이 빠질 수 없다.


여기도 사과나무가!

입구에 있는 주차장이 평탄하지 않아서 더 넓은 마당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서 밤을 보냈다. 밤에는 구름도 없고 주변에 어떠한 인공조명도 없어서 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이 다 보인다. 아침은 조금 쌀쌀해진 날씨. 새벽 기온이 4도 정도로 떨어져 있었다. 최근에 밤 기온이 빠르게 내려가고 있다.

아침 산책 길에 보니 어젯밤에는 보지 못했는데 차 앞에 사과나무가 서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러시아 로스토프 성의 사과나무처럼 여기저기에 사과가 떨어져 있다. 아내 숙경의 두 번째 사과 채집이 시작되었다. 물론 나도 거들었지만. 이후로 사과 채집 여행이 두 달 넘게 계속될 것이라고는 이때 생각지도 못했다.


“여기 너---무 좋다. 하루 더 있다 가자.”


원래 계획은 1박 하고 탈린으로 가는 것이었지만 아내의 소원대로 하루 더 머물기로 하였다. 그러나 나는 Lahermaa 국립공원에서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이 국립공원에는 매우 넓은 습지에 나 있는 아름다운 산책로가 있다. 구글 지도를 찾아보니 이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 아내를 설득해서 그곳으로 이동하였다.


또 다른 선물이!

그런데 이 산책로에 가기 위해서 어디에 주차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일단 그 근처까지 가보는 것으로 하고 출발. 근처에 도착하니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가 한참 이어진다. 차가 오래되었고 여기저기 손을 보았던 적이 있어서 비포장 도로만 만나면 신경이 엄청 쓰인다. 조심조심 운전.

그러다가 내비게이션의 도착 2km 정도 전 지점에서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어디로 가야 하지. 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으로 갈까. 다니는 관광버스도 보이지 않는다. 관광버스가 있었으면 그 차를 따라갔을 텐데. 왼쪽으로 방향을 틀고 조금 들어가니 길이 매우 험악해진다.

진입을 포기하고 나서 옆을 보니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호수 가에 어제 우리가 묵었던 장소와 같은 시설들이 있는 게 아닌가? 너무나 반가워서 우리는 그곳에 차를 댔다. 넓은 호수가 있고 어제보다 더 넓은 주차장도 있으며 물론 바비큐 시설도 함께 되어 있다. 푸세식이지만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는 화장실도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다음날 저녁때까지 체류하였다. 떠날 때까지 이 캠핑장을 우리 둘만이 사용하였다. 이게 진짜 캠핑카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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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장 길을 따라 찾아 들어간 두번째 캠핑장. 차 문을 열면 넓은 호수가 펼쳐져 있다.


하늘이 그린 풍경화!

차를 세워놓고 원래 가보기로 했던 습지를 찾아서 걸어가 본다. 비포장 차도를 피하고 숲길로 들어갔다. 어제 보았던 숲보다 더 울창한 숲길이 나 있다. 차 높이가 낮은 4륜 구동 차라면 다닐 수 있어 보이지만 무겁고 높은 차는 다닐 수 없을 듯하다. 1 시간 가량 구글 지도에 의지하면서 숲 길을 따라 찾아간 습지. 간혹 버섯을 따러 나오신 어르신들만 가끔 보일 뿐 매우 조용한 숲 길이었다. 산책로 안내 표지판이 있는 입구에 도착해서 보니 주차장은 별도로 없는 듯하다. 관광버스를 타고 오면 문제가 없겠지만 외국인이 자동차를 혼자 몰고 오면 고생 좀 할 듯하다. 우리에게 지금 가장 많이 있는 것은 시간. 천천히 습지 위를 걷도록 만들어져 있는 산책로를 걸어가 본다. 멋있는 습지와 호수 풍경이 우리를 안으로 안으로 이끈다. 드디어 도착한 습지 전망대. 다행히 오락가락하던 비가 멈추고 밝은 햇살이 습지를 비춘다. 맑은 호수에 비친 구름과 나무들이 멋진 풍경화를 그려낸다. 그 덕분에 사진기에 습지의 모습을 예쁘게 담을 수 있었다.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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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 전망대와 탐방로, 맑은 호수 위로 그려진 풍경화

두 번째 바비큐 파티

습지 탐방을 마치고 돌아올 때에는 조금 큰길로 왔다. 몇 곳에 크고 작은 예쁜 호수들이 있었고 그곳마다 방문객들이 쉬면서 캠핑을 할 수 있는 시설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산악자전거를 탈 수 있는 길과 산책로가 다양하게 설치되어 있어서 자연 속에서 마음껏 쉬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아톰에게 돌아와 본격적으로 두 번째 바비큐 파티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고기만 굽는 게 아니고 오락가락 내렸던 비에 젖은 운동화도 말리고 그냥 불도 피워보고 하루 종일 불장난을 했다. 중년 부부의 이 불장난을 위해 나는 장작을 여러 번 패야 했다. 그럴 때마다 ‘땅, 땅’하는 장작 패는 소리가 숲 속으로 퍼져 나간다. 이렇게 그다음 날 저녁때까지 평화로운 호수가 숲 속에서 우리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불기의 온기 처럼 우리 부부의 사랑도 따뜻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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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만을 위한 캠핑장과 불놀이. 젓은 신발도 말리는 신 기술

위험한 야간 주행

그런데 저녁이 되자 배터리 전압이 12 볼트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차 안의 기계들은 모두 12 볼트로 작동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전압을 12 볼트 이상으로 유지시켜 주어야 한다. 그래서 충전을 위해 시동을 켜니까 아내가 그냥 탈린으로 가잔다. 기름 값이 한국에 비해 그리고 러시아에 비해 두 배로 비싼 에스토니아에서 충전만을 위해 기름을 소비하는 게 아까워서이다.

원래 아내는 이곳에 더 있고 싶었는데. 계획보다 너무 긴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내일 아침에 탈린에 들어가는 것을 조금 당기면 되는 일. 그렇게 해서 늦은 저녁에 출발했다. 그러나 비포장 도로를 빠져나오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탈린 시내에 도착하니 늦은 밤이 되었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밤 운전은 위험할 수 있다. 그리고 차들은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고 많은 비까지 내리고 있다. 신경이 매우 쓰이는 길이었지만 다행히도 무사히 탈린 선착장 인근 유료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앞으로는 야간 운전을 하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주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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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했던 야간 주행 끝에 무사히 도착한 탈린의 유료 주차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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