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20 - 폴란드 바르샤바 와지엔키 공원
오늘은 바르샤바를 관광하는 첫날. 어젯밤을 보낸 동물원 주차장이 도심 한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조용했고 인근에 토토 화장실(일종의 간이 화장실)까지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2일 밤을 편안하고 안전하게 보냈다.
그동안 불편했던 아내 다리가 이제 더 심해져서 아프다고 한다. 결국에 약국에서 무릎보호대까지 샀다. 오늘은 걷는 거리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외곽에서 구 도심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하루 일정 계획을 세웠다. 첫 번째 목적지는 먼저 구도심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와지엔키 공원.
공원은 관광학을 공부한 나에게 중요한 관심 대상이다. 현대 테마파크의 기원이 사실은 근대 영국에서 발달한 소위 쾌락 정원이라 불렸던 유료 정원이기 때문이다. 소수의 귀족 공간이었던 정원이 대중에게 공공시설로 개방된 것이 공원이다. 지금은 공원이지만 과거 한때 귀족들의 정원이었던 곳은 항상 그 시대의 이상 세계와 정치적 열망을 담고 있다. 따라서 정원만큼 시대나 지역에 따라서 이상 세계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훌륭한 교재도 없을 것이다.
공원으로 가는 버스는 강 쪽으로 난 큰길을 따라 한참을 달린다. 구글이 가르쳐 주는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주택가를 지나 공원 쪽 방향으로 들어가 본다. 구글에서는 공원이 가까워졌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공원에 들어가는 문이 보이지 않는다. 바르샤바에서 가장 큰 공원이니까 출입문도 쾌 크겠지 하는 마음으로 커다란 문을 찾아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해서 허름하고 아주 좁은 문으로 들어가니 공원 숲 속으로 들어와 버렸다. 물론 와지엔키 공원에도 주 출입구 역할을 하는 대로가 따로 있다. 러시아의 공원들은 입구가 커다란 문으로 되어 있거나 대로로 되어 있어서 쉽게 이곳이 출입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와지엔키 공원은 공원 입구를 크게 강조하지 않는가 보다. 사실 나중에 보니 이곳은 뒷문 정도 되는 곳이었다.
과거에 귀족들의 수렵장이었던 이 공원의 대표 명소는 물의 궁전이라고 하는 와지엔키 궁전이다. 직선으로 조성된 호수 한가운데 단아한 느낌의 흰색 궁전이 있어서 물의 궁전이라고 하는가 보다. 궁전은 현재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호수와 그 가운데 하얀색 궁전 그리고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숲이 어우러져 그 자체로 예술품이 된다. 과거에 귀족들은 궁전 안에서 그 예술품 속의 주인공이 되었을 것이다.
반듯하게 뻗은 직선으로 난 호수의 한가운데에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하얀색 건물. 하늘에는 태양이 빛나고 있다면 지상에서는 궁전이 빛나고 있다.
고대시대에는 세상의 중심이었던 신전을 가장 웅장하고 화려하게 만들기 위해 어마어마한 물자를 투자했었고 도시마다 화려한 신전을 가지기 위해 경쟁했다. 중세시대에는 교회나 성당이 얼마나 화려할 수 있는지를 경쟁했다. 그러나 세속권력의 세계인 근대사회에서는 절대왕정이 그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을 화려하게 잘 보여주기 위한 경쟁을 하였다. 그 경쟁 수단으로 활용된 것이 바로 정원이다.
프랑스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은 이탈리아 정원에 대한 모방을 토대로 하여 더 화려하면서 세상의 중심에 태양의 왕이 있음을 신하들에게 가르쳤다. 그리고 다른 도시들은 이를 모방하여 자신들의 정원을 만들었고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지금 오늘 보고 있는 이 와지엔키 궁전의 정원도 베르사유 궁전과 그 모습이 어딘가 닮아 있다. 베르사유 정원도 어딘가에서 이탈리아 정원을 모방하고 발전시켰고 와지엔키 궁전의 정원은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하여 자신의 궁전으로 발전시킨 산물이다.
와지엔키 정원은 평지에 만들어졌고 수렵장이었다는 점에서도 베르사유 궁전과 유사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두 개의 궁전은 모두 왕 또는 황제가 서 있는 건물이 시선의 중심, 세상의 중심임을 잘 보여주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세상의 중심이 황제이었다는 것을 느끼기보다는 호수가를 거닐며 궁전을 중심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풍경이 변화는 것을 보는 것이 주는 행복을 느낄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무의식에 혹시 내가 이 공원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스며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궁전과 호수가 만들어내는 풍경은 과거처럼 지금도 우리의 시선을 한 지점에 모으고 있는 것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 공간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아름답다고 느끼면서 말이다. 귀족이 관광객으로 변했을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여전히 300년 전에 만들어진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공원에는 관광객들보다는 바르샤바 지역주민들과 학생들이 많이 오는 것 같다. 구도심에서 꽤 떨어져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공원이 너무 넓어서 다 돌아보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정원 가이드북에는 중국정원, 궁전 정원, 이탈리아 정원, 19세기 정원, 현대 정원 등 11개 구역으로 구분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원을 제대로 돌아보려고 하면 하루를 다 투자해야 할 것이다. 아직도 불편한 아내의 다리도 걱정이지만 나 또한 조금씩 힘이 들기 시작한다. 욕심을 버리고 지금 보고 있는 이 호수와 호수 주변의 나무들 그리고 정원사들이 심고 가꾸고 있는 꽃들을 마음껏 즐겨보자.
호수가 주변의 벤치에서 따뜻한 햇살을 즐기려고 하는데 벤치 뒤쪽에서 아름다운 공작새 두 마리가 자유롭게 숲을 돌아다닌다. 관광객들이 공작새를 사진에 담으려고 뒤쫓아간다. 그러면 공작새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도망간다. 그런데 아내는 반대편으로 가 기다린다. 잠시 후, 공작새가 관광객을 피해 아내 쪽으로 다가온다. 그 순간 아름다운 공작새를 사진에 담는다.
'그래. 꼭 쫒아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기다릴 때를 잘 아는 것이 필요한 순간이 있는 거야. '
우리 인생도 그런 때를 잘 알아야 할 텐데.
이번 여행이 끝나면 때를 기다질 줄 아는 지혜가 생길까?
벌써 12시가 넘어가고 있다. 점심도 해야 하고 구도심으로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정류장 근처에서 때마침 저렴한 점심 세트 메뉴가 눈에 들어온다. 오래간만에 외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