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서 만나는 감동

캠핑카 세계여행 에세이 1편

by 류광민

새로운 인연의 시작

어떤 여행이든 항상 출발할 때가 가장 설레고 기쁜 시간이다. 한국을 떠나 러시아에 들어왔을 때 아침 동해에 떠오르는 붉은 태양이 우리 캠핑카 세계 여행을 축복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통상 하루 정도면 통관이 끝나는데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하루 더 연기되었다. 그 덕분(?)에 조 선생님 일행과 통관이 끝나기를 함께 기다리면서 차도 마시고 점심도 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었다.


부부가 함께 떠나는 세계 여행의 첫 번째 식사를 따로 하는 것은 너무 그렇지 않은가?

이 분들과의 깊은 인연은 동해항에서 해외 차량 반출 수속을 같이 마칠 때 서로 인사를 나눈 이후에 우연히 블라디보스토크 가는 배 안에서 맺어졌다. 우리는 여러 명이 함께 방을 쓰는 2등식 침실 칸을 예약했는데 선사에서 자동차 여행하는 분들에게 업그레이드를 해주어서 2인실을 사용하게 되었다. 더블침대가 아니라는 점이 조금 아쉬웠지만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신혼여행을 떠나 것 같은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짐도 정리하고 잠깐의 여유로운 휴식을 취하고 나서 한껏 들뜬 마음으로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이동 했다. 출발 전에 인사를 나누었던 조 선생님 혼자 식사 대기줄에 서 있으셨다. 그래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함께 식사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분들도 당연히 2인실로 업그레이드됐겠지 했는데 예약한 대로 다인실로 배정되어 있단다. 사진기나 여러 가지 귀중품을 다인실에 두고 식사하러 나오기가 불안해서 사모님이 짐을 지키고 조 선생님께서 먼저 식사하러 왔다고. 그래서 귀중품을 우리 방에 두시고 같이 식사하러 가자고 제안하였고 4명이 함께 즐거운 저녁식사 시간을 가지면서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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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그레이드 된 2인실방과 조 선생님 가족과 함께 한 선상 저녁

부부싸움 속에서 특별한 인연을 맺다

배에서는 몰랐는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분들 약간 부부싸움 분위기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상당히 심각한 분위기였다. 여기서 자세한 내용을 다룰 필요는 없지만 본의 아니게 우리가 두 분 간의 험악한 분위기를 중재(?) 아니 서로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는 방식의 독특한 부부싸움의 대화 상대가 되어 드렸다. 우리는 두 분의 이야기를 정말로 열심히 들어드렸고 두 분은 남들에게 하기 힘들 말씀까지도 해주셨다. 두 분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의도치 않은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인연이 생겼고 시베리아 횡단부터 스위스까지 상당한 시간을 같이 여행하게 되었다. 두분도 일 년간의 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오셨다.

조 선생님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통관 지체로 생긴 여유시간 중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차에 대하여 생초보인 우리 차에 경보장치를 다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하셨다. 조 선생님은 뉴질랜드에 이민을 가셔서 현재 그곳에 살고 계신 분이다. 미술을 전공하셨던 분이 뉴질랜드에 이민 가셔서 차와 관련된 일을 많이 하신 전문가이셨다. 나도 경보장치를 달아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냥 넘겨온 사항이었다. 부품만 사면 달아주시겠다고 한다. 정말로 감사한 일인 동시에 든든한 여행 동반자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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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톡 풍경들

슬픈 역사의 광장에서 첫날밤

차 통관이 끝나고 자동차 여행을 시작하는 세 가족이 3개월짜리 보험을 들고 나서 지프 스타일의 차를 가져온 젊은 제주 새댁은 먼저 출발하였다. 그러나 우리와 조 선생님 캠핑카가 출발하기 위해서는 먼저 슈퍼에 들러 먹을 것과 연료 등을 챙겨야 하고 조 선생님이 달아주시겠다는 경보기도 사야 했다. 그래서 먼저 슈퍼에 들려 물건들을 사고 나니 어느덧 저녁이 되었다. 대형 슈퍼 주차장에서 정박하려고 하였으나 관계자가 와서 안 된다고 하여 우리는 정박 장소를 옮겨야만 했다. 바로 블라디보스토크 역 옆에 위치하고 있는 극동 소비에트 정권 전사 광장.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넓은 주차장이 있고 항상 경찰이 주변에 있어서 치안이 가장 안전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늦은 밤에 도착하니 넓은 광장은 비어있었다. 그렇게 러시아에서 첫 차 정박이 이루어졌다.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의 현장

우리가 첫날밤 정박지로 정한 전사광장은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하셨던 연해주 지역의 우리 동포들이 러시아 공산혁명에 기여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정당한 보상받기는커녕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이주를 위해 집결 명령을 받은 장소였다. 시베리아를 통과하는 겨울에 그 추운 기차를 타기 위해서 말이다. 그 당시 그분들이 겪었던 불안감과 고통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여행 출발하면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우수리스크에 있는 고려 문화원(고려 이주 100주년 기념관)이었다. 그 역사의 현장 가운데에서 우리 조상들이 느꼈을 아픔을 생각하면서 첫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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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 전사광장에서 불안함 마음에 형제처럼 두 대의 차가 나란히 밤을 세웠다.

불안한 상상력과 현실

그러나 동시에 누가 밤에 차에 와서 해코지는 하지는 않을지, 경찰이 와서 다른 곳으로 가라고는 하는 것은 아닌지 여러 가지 불안한 상상력이 동원되는 첫날 밤이었다. 이러한 걱정이 들었던 것은 러시아 자동차 여행을 하셨던 분들이 올려놓은 많은 글들에서 러시아 경찰에 대한 악명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45일간의 러시아 여행 과정에서 경찰 때문에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다. 가끔 경찰들을 만나기는 했고 그때마다 항상 무뚝뚝한 표정이다. 우리가 만난 경찰은 모두 영어가 안 되었다. 차를 세우면 항상 우리는 항상 밝은 미소를 지어보이고 나서 "Can you speak English?"라고 먼저 말한다. 그러면 이분들 순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씩 웃는다. 그리고 우리는 여권, 국제 운전면허증과 선박회사에서 챙겨준 서류만 보여주면 잠시 후, 출발해도 된다는 손짓을 보내준다. 떠날때도 항상 "바이 바이!" 이전에 자동차 여행을 하셨던 분들의 악명 높은 경찰에 대한 경험이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은 행운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러시아 경찰이 달라진 것인지 모르지만 우리와 만났던 러시아 경찰들은 생각보다는 우호적으로 대해 주었다.


동반되는 위기들

자동차 경보기 부품을 구할 수 있는 가계를 찾기 위해 구글 지도를 검색해 본다. 자동차 관련 부품을 팔만한 가계를 찾아 가까운 곳부터 찾아가 보니 그곳은 승용차 부품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보트에 관련된 부품을 판매하는 곳이다. 그 가계의 예쁜(?) 영어가 되는 아가씨가 인터넷을 검색하여 우리가 원하는 부품을 팔만한 가계를 알려준다. 자기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 핸드폰 구글 지도에 지점을 찍어주는 친절까지.

여행을 떠나기 전 러시아 사람 하면 무뚝뚝한 인상의 불친절할 것 같은 분위기를 생각했다. 분명한 것은 러시아 사람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생글생글하는 웃는 얼굴로 대면하지는 않지만(이 때문에 러시아 사람들은 불친절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닌지.) 외국인이 도움을 요청하면 매우 열심히 도와주려고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심각한 검은 매연

문제는 그다음부터. 찾아가는 가계가 언덕 위에 있어서 급경사가 심한 길을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경사 길에서 아톰 속도가 심하게 느려진다. 조 선생님이 뒤에 따라오시다가 내 차에 매연이 너무 심하게 난다고 알려주신다. 일단 힘들게 경보기 설치 업체에 도착해서 원하는 부품 중 모터를 제외하고 현장에서 구입하였다. 모터를 주문하면 2일 정도 걸린다고. 조 선생님이 모터가 없어도 경보기는 달 수 있으니 그렇게 하자고 하신다. 이 모터도 나중에 하바롭스크 정비공장의 러시아 친구가 무료로 주어서 달았지만.


에어컨이 떨어지다

나는 차의 매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대자동차 판매점으로 출발하고 조 선생님도 가스 충전을 위해서 다시 출발하려고 하는데 조 선생님 차 밑에 달아놓은 에어컨이 떨어진 게 아닌가? 내 차도 중고차지만 조 선생님 차(카운티)는 더 오래된 차였고 그 차를 손수 캠핑카로 제작하셨다. 내 입장에서 보면 정말로 대단한 분들이시다. 에어컨을 달아 놓은 지지대가 떨어져 있는데도 간단하게 고칠 수 있으시단다. 차 밑에 달아놓은 에어컨 지지대 볼트가 빠져서 발생한 사고였다. 그런데 조 선생님은 나보고 먼저 현대자동차에 가보라고 하신다. 혼자 해결할 수 있으니 도와줄 게 없다고.

내 차 상태가 사실 더 심각하기 때문에 같이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빨리 현대자동차 판매점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블라디보스토크 외곽에 있는 현대자동차 판매점(큰 도시에는 대부분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 대리점이 있다)에 도착하여 도움을 요청하였다. 직영 서비스센터는 없고 우리 자동차를 고쳐줄 수 있는 업체를 수소문하느라 시간이 조금 걸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매우 감사한 일이다.


공기필터를 교체하다(?)

다시 시내 쪽에 있는 정비 공장으로 출발. 미리 연락해 놓았는지 말이 안 통하는 출입구에서도 무사히 통과하여 차를 정비공장에 입고시켰다. 커다란 응접실에서 사장까지 나와 우리를 맞이해주는 과잉(?) 친절을 받고 나서 2시간 정도를 기다렸다. 담당 직원이 와서 우리에게 말한다. 공기필터를 교체하였다고. 매연 원인이 공기필터 때문이라고 한다. 차에 대하여 진짜 모르는 나지만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에어필터를 교체하고 달린 주행거리가 천 킬로미터 정도밖에 안 되었기 때문이다. 상태를 점검해 보니 조금 나아진 것은 같지만 여전히 많은 매연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분들 말은 차 안에 남아 있던 찌꺼기라는 것이다. 그게 다 빠져나오려면 시간이 걸린다고. 운전하다가 계속 문제가 있으면 다시 오라고. 감사한 말이지만 우리는 출발을 해야 하는데 난감한 상황이다.

저녁에 무사히 차를 고치신 조 선생님과 재회를 하고 대책을 논의하였다. 너무 혼잡한 블라디보스토크에 오랜 기간 체류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 우리는 일단 차가 움직일 수 있으니 출발하기로 하였다. 저녁 6시쯤이 되어서 우리는 혼잡한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를 빠져나와 시원하게 뻥 뚫린 길을 달릴 수 있었다. 첫 번째로 만난 도로 카페에서 함께 저녁을 먹고 시베리아 횡단 여행의 첫 차 정박을 하였다.


절체절명의 위기와 은인

나의 필수 방문 목적지인 우수리스크까지는 큰 문제없이 아톰이 달려주었다. 비가 내리는 날씨였지만 우수리스크 고려 문화원에서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를 알아보고 그분들의 희생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보는 시간을 가졌다. 조 선생님 가족도 함께 한 시간이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들뜬 분위기도 잠시

다시 다음 목적지인 하바롭스크로 출발. 눈앞에 한국과는 전혀 다른 풍광이 펼쳐진다. 광활한 시베리아로 들어가는 길. 넓은 길과 진한 푸르름이 넓게 펼쳐져 있는 도로들. 정말로 시베리아 벌판에 벌써 다가와 있는 것 같은 분위기가 이어진다. 이러한 들뜬 분위기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걱정의 분위기로 바뀌고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고쳤다던 매연이 더 심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쉬는 지점에서 조 선생님이 차를 뜯어서 검사를 해보셨다. 터보 등과 같은 핵심 부분에서 고장이 난 것 같다고 하신다. 자동차 정비소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신다. 1박 2일 동안 달려 하바롭스크 도착하기 전까지 차 속도는 점점 떨어져 이제 20km도 나지 않는다. 언덕을 올라갈 때는 거의 걷는 수준. 언제 차가 설지 모르는 위기 상황이 몇 시간째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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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톡을 지난 쭉쭉 뻗은 시베리아 길과 위기의 아톰

보닛을 열어보세요

하바로프스크 도착하기 전에 심한 매연을 뿜어내면서 언덕을 올라가고 있는데 언덕 위에서 어떤 차가 우리 보고 옆으로 세우라고 손짓한다. 언덕을 올라가기 전 비상 신호등을 켜고 차를 점검하고 있을 때 우리 차 앞에서 우리 일행을 쳐다보고 있었던 러시아 1톤 화물차였다. 역시나 러시아 사람답게 웃지 않는 무표정의 얼굴로 우리 차 보닛을 열어보란다. 물론 바디랭귀지로. 그러더니 차 안에 있던 펌프(나중에 알았지만 연료에 들어 있는 수분을 모아서 배출해주는 장치- 연료필터)를 힘주어 여러 번 눌러본다. 그리고 차 엑셀을 누르니 차 매연이 조금 덜해진다. 그럼에도 정상까지는 먼 상태. 하바롭스크에 가서 정비공장에 가보라는 손짓 발짓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무나 감사한 은인이 불쑥 나타난 것이다. 그분 덕분에 아톰은 언덕에서도 30km 정도로 달릴 수 있게 되었고 차는 멈추지 않고 하바롭스크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하바롭스크 도착 전에 차가 완전히 퍼졌다고 생각해보면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감사하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헤어진 것이 너무 아쉽다. 만약에 다음에 또 여행을 떠난다면 이럴때를 대비해서 조그만 선물을 가져왔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언어가 안 통하지만 세심한 친절

하바롭스크에 도착한 날이 일요일이었지만 정비공장을 찾아갔다. 구글 지도를 검색하여 가까운 지역에 있는 정비공장 중 규모가 있는 곳을 찾아갔다. 그러고 보니 구글도 우리의 은인 중 하나인 것 같다. 도착하니까 마침 퇴근 시간 전. 그러나 오늘은 일이 끝나서 정비가 안 되니 내일 아침에 오라고 한다. 정비 공장 주차장에 주차를 해도 된다고 하여 조 선생님께 연락을 해서 함께 정박을 하였다(조 선생님 일행은 다른 곳에서 차 정비를 하고 계셨다).

공장 문이 닫혀지고 모두 퇴근할 즈음에 건장한 체격의 노인분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손짓으로 따라오란다. 데려간 곳은 공장의 화장실과 세면대. 밤에 사용하라는 눈치. 캠핑카 여행에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가 바로 화장실이다. 그러한 점을 배려하여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신 경비원 분께도 감사. 이렇게 하여 의도하지 않은 하바로스프크의 4박 5일 일정이 시작되었다.

하바롭스크 도착까지의 일정은 우리에게는 위기의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마다 영어가 서로 안되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도와주려고 하고 심지어는 아무런 대가도 없이 검은 매연을 만지면서까지 이방인이 처한 어려움을 도와주려고 하였던 러시아 사람들을 만났다. 러시아 사람들이 무뚝뚝하고 무서울 것이라는 인식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었던 것인지를 새삼 실감하게 된 계기들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러시아 사람들이 베풀어준 친절은 러시아 여행 내내 우리를 감동시켰다.


잊을 수 없는 감동

정비기사들과 아톰이 대면하던 첫날. 그분들은 하루 종일 차를 점검하였다. 오후에 나온 결론은 터보 불량. 나는 자동차 부품에서 터보라는 장치가 무엇을 하는 것인지를 처음 자세히 알게 되었다. 조 선생님이 다시 말씀해주신다. 가속할 때 공기와 연료의 배합 비율을 맞추어서 힘을 제대로 낼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란다. 그러니까 내 차가 언덕길에서 액셀을 밟으면 공기는 안 들어가고 연료만 많이 들어가니 불완전 연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부품이 없단다. 지금 주문하면 수요일에나 올 수 있다고. 오늘이 월요일.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수요일까지 대기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조 선생님 가족도 차 정비도 해야 하고 하니 내일까지는 같이 있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사 온 경보기도 달아야 하고. 그래서 월요일 오후에는 남자들은 차를 고치고 경보기를 다는 동안 아내들은 두 분만 따로 시내 관광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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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로프스크의 풍경들

아내와 처음으로 각자의 시간을 가지다

캠핑카 여행을 떠나고 나서 처음이자 지금까지 마지막으로 아내가 나와 떨어져 여행을 한 시간이었다. 시내 관광을 갔다가 공장에 잘 찾아와야 하는데 걱정이 든다. 아내는 생각보다 인터넷과 친하지 못한 상태. 구글에서 현재 지점을 찾는 방법과 러시아 택시를 웹으로 부르는 방법 등을 숙지시킨 후 출발. 그 사이에 조 선생님은 우리 차에 경보기를 달아주셨다. 차 앞문을 뜯어서 달고 있는데 정비공장 기사분이 다가와 도와주신다. 혹시나 해서 조 선생님이 짧은 영어로 말한다.


“ 친구, 혹시 모터 살 수 있어?”

“ 내가 여분 하나 가지고 있어요. 잠시만요.”


공장 안에 있던 부품을 가지고 와서는 “제가 도와줄게요.” 하면서 조 선생님과 함께 달아주었다. 몇 시간의 복잡한 회로 연결을 통해 내 차는 수동으로만 열렸던 자동차에서 버튼으로 닫고 열리는 자동차로 수준이 업그레이드되었다. 그리고 내 차는 순수한 한국혈통에서 러시아 부품이 들어간 다국적 혈통의 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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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점검이 끝나고 부품을 기다리면서 조선생님이 경보기를 달아주셨다. 러시아 친구도 도와주었다.

이별 파티

터보 부품이 수요일 언제 도착할지 모르고 또 언제 고쳐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 조 선생님 가족이 함께 머무르는 것은 무리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조 선생님 가족은 수요일 아침에 출발하기로 하였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상황. 화요일 저녁에 우리는 조 선생님 가족에게 감사의 식사를 대접하였다. 그것도 레닌광장 앞에 있는 엄청 비싼(?) 식당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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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감사한 조 선생님 일행과 헤어지기 아쉬워 가졌던 이별파티(?)를 위한 식당 주변 저녁 풍경과 비싼 음식들


우리는 너를 믿는다

다음날 아침에 헤어지기 섭섭한 마음에 차 한잔 하려고 하는 순간에 정비기사가 차를 두드린다. 차를 공장 안으로 가져오란다. 터보 부품이 도착했단다. 조 선생님께서 그럼 고쳐질 때까지 같이 있어 주신다고.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차에 대하여 왕초보자인 나에게 조 선생님이 같이 있어주시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마음이 든든한지 모르겠다. 그러나 수리는 생각보다 늦게 끝났다. 기사분이 여기도 손보고 저기도 선보고 하는 것 같은 분위기. 수리하는 김에 연료필터까지 갈았다. 드디어 늦은 저녁인 7시쯤. 차가 고쳐졌다고. 테스트를 해보니 분명 좋아진 것 같은데 매연이 아직도 나온다. 서로 짧은 영어와 구글 번역기로 상황에 대한 이해를 교환하기 시작.


“아직도 매연이 있다.”

“엔진에 있던 찌꺼기 때문이에요.”

“엔진 성능이 나아진 것은 확실한가요?”

“엔진 성능은 좋아졌지만 조금 더 테스트를 해야 될 것 같아요.”


정비공장 주변을 돌아보았다. 분명 엔진 성능이 좋아졌다. 그러나 아직도 매연은 나오고 있었다. 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경험이 있어서 오케이 사인을 줄 수가 없었다.


“내일 아침에 다시 한번 테스트해보자.”


그런데 이 친구들

‘밤에 니들이 도망가면 어떻게 하니?’

하는 눈치. 비장의 카드를 내민다.


“지금 비용 지불해도 된다.”

“그럼 알았어. 우리는 너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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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터보 부품과 교체 작업 중인 아톰

하바롭스크에서의 또 하루 밤이 지났고 날이 새자마자 조 선생님은 공장에 남으시고 우리는 시험운행을 다녀왔다. 언덕길에서 힘이 느껴진다. 언덕에서 매연이 나는지를 여러 차례 확인하였다. 다행히 언덕길에서 매연이 조금 보이지만 거의 안 보이는 수준. 아침 공장 문을 열자마자 비용을 지불하고 감사한 마음의 인사를 한 후 하바롭스크를 떠났다. 조 선생님 차에서 떨어졌던 에어컨 지지대 볼트를 큰 것으로 교체하려고 부품을 살 수 있는 장소로 직접 차를 몰아 데려다주는 호의까지도 베풀어주었던 사람들. 지금도 그 당시를 생각하면 러시아 사람들의 친절은 잊을 수가 없다.


친절의 감동

러시아를 통과하던 여행 중에 차에 또 한 번의 위기가 있었다. 가장 러시아 다운 도시라고 하는 노보시비르스크.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보다 더 큰 웅장한 극장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보았던 레닌 광장 중에서 가장 사회주의 정치적 공간의 광장이 있는 도시 바로 노보시비르스크. 1박 2일의 일정으로 도시 관광을 할 계획으로 시내에 있는 작은 호텔에 숙박하였다. 목욕도 하고 옷도 빨고 시내 중심가도 구경하고 저녁 늦게 돌아와 달콤한 잠을 잤다. 아주 싼 호텔이었지만, 8일 만에 호텔에 들어왔으니 마음껏 목욕을 하는 사치를 부린 날이었다.


그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외곽 지역에 있는 식물원으로 출발하려고 하는데 조금씩 나던 삐그덕 소리가 매우 크게 난다. 차를 길가에 세우고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 대리점을 검색. 다행히 도시를 빠져나가는 지점에 기아자동차 대리점이 있었다.


‘우리 차는 현대자동차이지만 무조건 가서 부탁을 해야지. 한국 차를 판매하는 곳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영어가 되는 직원들의 총출동

우리가 기아자동차 대리점에 도착하여 영어로 부탁을 하자 영어가 되는 직원이 총출동. 다행히 한국에서 온 우리를 친절하게 맞이해 주었다. 그러나 직원들과 회화가 잘 안되어서 서로의 의사를 영문으로 직접 써서 전달. 그러고 나서 잠시 기다리란다. 20여분이 지난 후에, 한 여직원(그 직원 이름은 줄리아)이 정비공장으로 가기 위해서 자기 차를 따라 오란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에 여직원이 추위에 떨면서 자기 차 번호를 알려준다. 정말로 찾기 힘든(우리를 안내해준 직원들오 헤매었던 길) 골목길로 해서 들어간 화물차 정비공장. 나중에 들어보니 승용차를 수리할 수 있는 자기 정비센터에서는 우리 차가 커서 수리할 수 없기 때문에 수소문해놓은 공장이었다.


항상 바쁜 자동차 정비공장

대부분의 러시아 자동차 정비공장은 항상 바쁘다. 중고차들이 많이 다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니 무턱대고 자동차 정비공장에 들어가면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줄리아는 담당자에게 자동차에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를 설명해주고 필요로 하는 서류 작성을 도와주었다. 차를 정비공장에 안전하게 입고시키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줄리아는 공장 내에 있는 식당으로 우리를 데려가서는 식사를 주문시켜준다. 여기서 기다리면 된다고. 같이 먹자고 하니 자기들은 가봐야 한다고. 너무나 감사해서 어떻게 하지. 참으로 세심한 친절이다.


그리고 이심전심으로


“그럼 기념사진 한 장 찍어요.”

“그래요. 같이 찍어요. 너무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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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시비르스크의 상징인 레닌동상과 친절한 줄리아가 시켜준 음식과 기념사진

줄리아가 떠난 후, 한 시간쯤 지나니 정비공장 직원이 깨진 고무 패킹을 보여준다. 고무패킹 7개가 다 깨져서 교환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한 시간쯤 지났다. 다 고쳐졌다고. 생각보다 비용은 큰돈은 아니었다. 3천5백40 루블. 한화로는 약 7만 원 정도. 오후 4시가 넘어서 우리는 너무나 감사한 마음으로 노보시비르스크를 떠날 수 있었다.


많은 위기 속에서 러시아인들의 감동적인 친절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얼마나 잘못된 선입관 속에서 살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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