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분수 정원

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66 - 이탈리아 티볼리

by 류광민

로마 벼룩시장이 안겨준 고민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 때문에 티볼리에 예상 시간을 훨씬 넘긴 4시 30분쯤에 도착했다. 오늘은 11월 25일. 조금 지나면 어두워진다. 점심때 일찍 도착해서 티볼리 최대 명소 ‘Villa d’Este’를 보고 내일은 로마로 가려는 계획을 세웠었다. 그런데 첫날 일정부터 계획을 변경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아내와 여행 일정에 대하여 상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내일부터 비가 온다고 한다. 아내는 로마의 일요일 벼룩시장에 꼭 가보고 싶단다. 오늘은 토요일, 내일은 일요일. 아내의 희망대로 일요일에 로마 벼룩시장을 가려고 하면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 번째 문제는 내일 아톰을 데리고 로마로 가야 하는가가 고민이다. 그리고 Villa d’Este를 보기 위해서는 월요일에 다시 티볼리로 와야 한다. 로마로 갔다가 다시 티볼리로 돌아와아 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아내는 내일 비가 오면 정원 관람이 불편하니 그 시간에 로마에 가자는 것이다. 나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티볼리 ‘Villa d’Este’를 꼭 보고 싶고 아내는 세계 3대 벼룩시장이라는 로마 벼룩시장에 꼭 가보고 싶다는 주장을 놓고 한동안 논쟁을 벌였다.

이제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방법은 기차로 로마에 다녀오는 것이다. 티볼리에서 기차를 타면 30분에서 40분이면 로마 테르미니역까지 갈 수 있다. 아톰을 티볼리에 주차시키고 일요일인 내일 기차를 타고 로마에 다녀오고 월요일에는 티볼리 빌라 데스테 정원에 가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티볼리가 로마 여행의 베이스캠프가 되었다.

티볼리 베이스캠프가 된 주차장은 티볼리 역 건너 아니에네 강가에 있다. 나중에 알았지만이 주차장에는 수요일마다 장이 선다. 그 이외의 시간에는 자유롭게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다. 아톰보다 먼저 와 있는 캠핑카들도 보인다. 기차역과도 가깝다. 강가 산책로도 있고 가까운 곳에 카페도 있다. 밤에는 다니는 차들은 거의 없다. 며칠 동안 베이스캠프가 되어도 될 적당한 조건이다. 그날 저녁 기차역에 가서 다음날 아침에 로마 가는 기차표를 샀다.

티볼리 기차역 시간표와 기차역 내부 그리고 베이스캠프가 되어준 주차장 근처 산책로

비 속의 실망스러웠던 로마 여행 첫날

다음날 아침, 일기예보대로 비가 오는 날씨였지만 로마 테르미니역에서 시내 버스를 타고 포르타 포르데세 일요 벼룩시장으로 갔다. 시장은 가이드북에 실려있는 것처럼 야외 매대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그런데 로마 시민들이 사용하던 작은 물품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벼룩시장은 유입된 이민자들의 값싼 물건들이 점령해 버린 이탈리아 작은 도시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래시장 같은 분위기로 변화되어 있다.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그런데 비까지 온다. 큰 실망을 안고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로마 유적지 몇 곳을 들렸다가 기차를 타고 티볼리로 돌아왔다.

힘들게 찾아갔지만 실망스러웠던 벼룩시장. 비 속에서 로마 유적지 몇 곳을 보고 다시 테르미니 역에서 티볼리로 가는 기차를 타고 돌아왔다.

티볼리 빌라 데스테(Villa d‘Este)를 소개합니다!

내가 티볼리를 꼭 와야겠다고 한 이유는 추기경 이폴리토 데스테의 빌라 ‘Villa d’Este’를 보기 위한 것이다. 한때 귀족들의 휴양도시였던 티볼리는 로마와 주변 평야지대가 한눈에 보이는 높이 약 200미터 조금 넘는 산 자락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차로 티볼리로 올라가기 전에 있는 마을에는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 별장인 빌라 아드리아나가 있다.

이폴리토는 교황 선출에 낙선하고 티볼리 주지사로 1550년에 임명되는데 산타마리아 마조레 교회 수도원이 그의 공관이었다. 그러나 화려한 정원을 가진 공관을 원했던 그는 수도원 자리에 새로운 저택과 정원을 지었다. 지금 빌라 데스테 입구에 붙어 있는 약간 초라해 보이지만 오랜 역사가 묻어 나는 산타마리아 마조레 교회가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빌라 데스테 입구를 지키고 있는 마조레 교회. 규모는 작지만 문 입구의 조각과 바닥 타일을 보면 매우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교회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로마의 일요시장 방문을 위해 오늘로 미루었던 빌라 데스테 방문. 그런데 월요일은 오후 2시에 개장이란다. 아침에 입구를 찾았으나 문이 닫힌 것을 모르고 다른 입구를 찾아다니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남는 시간에 티볼리 아래에 있는 빌라 아드리아나를 다녀올까도 생각했는데 버스 시간이 맞지 않는다. 아톰에게로 돌아가서 점심 먹고 나서 2시에 다시 오기로 했다.

티볼리 여러 풍경들

작은 바티칸 같은 빌라

빌라 데스테는 크게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추기경 이폴리토의 저택인 빌라와 빌라 아래에 위치한 정원.

교회 옆에 있는 작고 예쁜 간판이 붙어 있는 작은 입구(이곳이 티켓 판매소이다)로 들어가면 바로 빌라이다. 빌라의 여러 개 방을 통과하면 정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 표를 구입하면 안내도를 주니까 그 안내도를 잘 보고 다니면 된다. 빌라 구조가 매우 복잡해서 그냥 다니다가는 헤맬 수도 있다. 우선 빌라부터 돌아본다.

빌라의 모든 방들이 섬세하고 수준 높은 화려한 예술품으로 가득 차 있어서 어느 블로거가 말했듯이 작은 바티칸 박물관 같다. 지금은 가구나 장식품으로 놓았을 많은 예술품들이 없지만 방 안의 벽과 천정을 모두 채운 화려한 색의 그림 자체만으로 얼마나 이 빌라가 얼마나 화려했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각종 성화로 가득 찬 빌라 내부의 그림과 빌라 데스테를 그려놓은 그림도 눈에 뜨인다.

그보다 나에게 재미있게 다가온 것은 각 방의 대부분이 성화로 가득 차 있지만 성화가 아닌 그림도 보인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사냥하는 장면이나 사냥된 동물 정물화 등이 그것이다. 그림 역사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런 그림들은 르네상스 시대 때부터 그려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 성직자의 저택에 이런 그림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 당시 최고의 예술가들을 불러다가 종교와 관련된 그림으로 벽과 천장 모두를 도배하려고 한 것은 신앙심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사냥 장면과 죽은 동물들의 정물화는 왜 걸려 있는 것일까?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내가 보고 싶었던 정원으로 나가본다.

성직자의 상징이 아닌 세속권력의 상징으로 이해될 수 있는 풍경화가 종교권력자의 방안에 걸려 있다는 사실이 이색적으로 다가온다.

빌라를 나서면 정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중세시대 성에 있는 정원들에 비해 키가 큰 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그 외에 이 정원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새롭게 보인다. 하나는 분수가 많이 보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원의 중심축이 주인이 살고 있는 빌라 중심부터 시작되지 않고 긴 선형 빌라와 평행하다는 점이다. 이런 특징이 황제의 정원들처럼 부지가 넓지 않아서 생긴 물리적 한계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만들어 낸 것인지 궁금해진다. 또다시 나의 이상한 버릇이 발동한다.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면 한눈에 들어오는 넵툰 분수가 정원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고 질서 정연한 정원으로 내려가는 경사면에는 100여 개의 각기 다른 모양의 분수가 물을 뿜어내고 있다.

빌라를 나와 정원 쪽으로 내려가면 이 정원이 왜 분수 정원으로 알려져 있는지를 알게 해주는 100여 개의 분수가 나온다. 이 분수들은 하나의 직선을 따라 질서 있게 배열되어 있다. 그리고 물을 뿜고 있는 조각상들이 조금씩 다른 모습들이다. 그 각각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긴 직선 줄을 따라 작은 분수들을 배열함으로써 시각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분수들이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이 정원 전체가 분수로 가득 찬 듯한 인상을 준다. 이 분수에서 나온 물든 다른 분수 물로 사용되기 위해 작은 수로를 따라 흐른다. 나는 이 분수 길을 따라 걸어가 본다. 그 한쪽 끝에 로마의 정원이라는 작은 공간이 나온다. 우리가 갔을 때에 막아놓아서 올라갈 수 없었지만 그곳에서 올라가면 저 멀리에 있는 로마가 잘 보일 것이다.

질서 정연한 모습의 정원과 풍요의 상징 아르테미스 여신상이 정원 끝에 서있다. 그리고 로마를 상징하는 물건들로 가득 차 있는 로마 정원에서 보면 로마가 한눈에 들어온다.

지그제그로 나 있는 경사로를 따라 내려오면 정원의 평지가 나온다. 정원 평지 부분은 르네상스 정원들처럼 직사각형을 기본 도형으로 하여 직선과 좌우대칭의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그 가운데 끝에 이 정원의 대표 분수인 넵툰 분수가 있고 그 앞으로 직 사격형의 연못이 줄지어 서 있다. 그 끝에 가면 로마의 정원처럼 저 멀리 로마와 그 일대 평야를 내다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넵툰 분수 앞에서 보면 줄지어 서 있는 직사각형 연못이 저 멀리 좁아진 시야 사이로 길게 이어져 하늘까지 닿을 것처럼 보인다. 그 하늘 끝에는 로마가 있다. 빌라 정면 끝 벽 쪽에는 다산과 풍요의 여신인 아르테미스 여신상 분수가 벽 가운데를 가득 차지하고 있다. 여신상에 달린 20여 개가량의 풍만한 가슴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다. 그리고 다른 방향의 벽 쪽에는 고대 신화 이야기를 담고 있는 크고 작은 동굴과 분수들이 배치되어 있다.

풍요의 여신인 아르테미스는 빌라를 마주하고 있고 풍요와 질서, 권력을 상징하는 넵툰 분수와 분수가 향하는 시선은 로마를 향하고 있는 이 정원. 이러한 배치를 상징의 관점에서 이 빌라의 주인 추기경 이폴리토가 되어서 내 나름대로 해석해 보자. 추기경 이폴리토가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비록 교황이 되지 못하여 로마에서 떨어져 나와 살고 있지만 나는 로마를 잊은 적이 없다네. 내 몸은 비록 여기에 있지만 나의 영혼은 하나님에게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저 로마 교황청에 가 있다네. 나는 하나님에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자격이 충분히 있으니까. 나의 집을 보게나. 나의 집은 교황청처럼 하나님의 목소리와 풍요로운 세상으로 가득 차 있다네. 그리고 에덴동산의 낙원처럼 나의 정원은 항상 풍요로운 샘물로 흘러넘치고 그 영광은 하늘까지 아니 로마까지 이어질 것이네. 그리고 이 영광된 나의 세상은 항상 풍요롭고 완전할 것이네. 아르미테스 여신과 다른 신들 조차 나의 세상을 영원히 지켜줄 것이니까. 나는 가끔 정원을 산책하며 나의 욕망을 가슴에 새겨둘 것이네. 이 욕망을 마음에 새기며 로마 정원에 올라 오늘도 로마를 바라다 보고 있네’


추기경 이폴리토는 이 정원이 완성되기 전에 죽어서 그가 그리던 정원을 완전하게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빌라 데스테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대표 정원으로 다른 정원 형성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후대에 만들어진 정원보다 더 많은 상상력과 욕망 그리고 재미가 숨어 있다. 오히려 다른 정원들이 다시 배워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정원도 사실 빌라 아드리아나를 모방해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보면 항상 어느 누구도 모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제 빌라 아드리아나를 만나러 가보기 위해 바삐 움직여야 한다. 겨울이 오면서 입장 마감시간도 빨라지고 있다. 그러나 빌라 아드리아나는 우리가 도착하자 문을 닫고 있었다. 오늘 빌라 데스테만이라도 볼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해야 할 것 같다.

빌라 아드리아 주차장에서 바라다본 티볼리에 저녁 햇살이 비치고 있다. 문이 닫힌 빌라 아드리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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