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 세계여행 에세이 5편 - 러시아 횡단 여행 중
캠핑카 여행의 별미 중 하나는 풍경이 좋은 곳에 차를 세워두고 낭만의 밤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시베리아 횡단 여행에는 그러한 낭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생각보다 적었다. 그 이유는 도로 상태 때문이다. 포장된 주도로를 조금만 벗어나면 대부분 비포장도로이고 너무 심하게 울퉁불퉁해서 무거운 캠핑카를 운행하기 어렵다. 그래서 비포장도로로 풍경이 좋은 곳을 찾아갈 엄두를 내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그러한 낭만의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치타 가는 길에는 깊은 산속에 휴게소는 없지만 주차장만 설치되어 있는 곳들이 나타나는데 조 선생님 일행과 시간을 맞추느라고 아쉽게도 통과했었다. 이러한 곳들도 캠핑카의 낭만을 즐길 수 있는 곳 중 하나이다.
우리에게 첫 낭만의 시간은 치타를 지나 우랄산맥으로 들어가기 전에 있었다. 하루의 대부분을 달리기만 하는 일정에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을 때 우랄산맥 지역이라는 간판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시베리아를 통과할 때, 구글 지도에서 쉬어 갈 수 있는 장소 중에 풍경이 좋은 곳에 대한 정보를 찾기 쉽지 않다. 그러다 우연히 식당들이 많이 밀집해 있는 도로변 지점에 차를 세우게 되었다. 아내는 이 근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잔다. 무거운 캠핑카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시베리아 지역의 도로를 주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무턱대고 다니다 빠져나올 수도 없는 길로 들어가면 어떡하지?
아내의 소원대로 소나무가 많이 나 있는 좁은 길로 들어가 본다. 차들이 몇 대 들어갔다가 나오고 있었다. 역시 우려대로 울퉁불퉁하다. 조심조심해서 들어가 보니 소나무 숲이 계속되고 있었다. 길이 끝날 것 같은 지점에 도착하니 승용차들이 여러 대 보인다. 다가가 보니 바닥이 투명하게 보이는 작은 호수가 나타났다. 여름에는 지역주민들이 일종의 비치로 사용하는 곳인가 보다. 바비큐 장비를 가져와서 식사를 하고 있는 가족들, 젊은 연인들이 함께 와서 파티를 하는 팀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내는 차에서 내리 자마 ‘원더풀’을 연속한다. 정말로 긴 주행 동안 만나지 못한 휴양지에 도착한 것이다. 저녁이 되자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이제 우리만 남아있게 되었고 불빛 하나 없는 어둠이 내려앉는다. 저녁을 마치고 나서 소나무 숲으로 나와 보니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수많은 별들이 우리만을 비쳐주고 있었다.
얼마나 기뻤으면 그랬을까? 그 짧은 순간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최고의 순간이었다. 시베리아 자연이 우리 부부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었다. 중년 부부에게 신혼 시절에 가졌던 뜨거운 사랑의 감정을 솟게 해 준 시베리아의 작은 호수.
우랄산맥을 넘어 카잔에 도착하기 전 휴식을 위해서 휴게소에 들렀다. 점심까지 하느라 2시간 정도가 걸린 것 같았다. 10 루블에 사과 한 바구니를 사서 즐겁게 들고 들어오는 아내를 태우고 출발하려고 하는데 어떤 한 아줌마가 우리에게 다가와 러시아어로 무어 무어라고 말한다. 10여분의 긴 인내 속에서 그분이 카잔에 가야 하는데 차에 태워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휴게소에서 몇 분의 아주머니들이 오랜 시간 동안 서 있었던 것을 봐 둔 터라 아마 이분들이 여유자리가 있는 차에 태워달라고 하는 부탁을 하려고 하는 것이리라 짐작했다. 나는 “카잔?” 그랬더니 “카잔” 하면서 손으로 차를 가리킨다. 그래. 저번에 러시아 청년 샤샤도 태웠으니 이번에도 태워주면 되겠지.
이분은 수다쟁이. 전화로 자식에게 관광객 차를 타고 출발한다고 연락한다. 이 또한 물론 느낌으로 알아들은 것이지만(말속에 투어리스트라는 단어로 추론). 그러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매우 제한적이지만 아내는 매우 끈기 있게 대화를 나누어간다. 정말로 대단한 두 여성들이다.
그 녀의 이름은 그루웰. 아버지 집에 다녀가는 중이고 집은 카잔이란다. 그리고 자신은 러시아인이 아니고 카잔에 살고 있는 타타르족이란다. 카잔은 타타르 공화국의 수도이다. 러시아가 지배하기 이전에는 타타르 부족이 지배하던 땅이었고 무슬림 전통이 강한 곳이다. 러시아 대부분이 러시아 정교회를 믿고 있지만 이 지역에는 무슬림 사원인 모스크가 있다. 그리고 자신은 러시아어, 타타르어, 우크라이나어를 할 줄 안다고. 아내와 나누었던 이야기 중에서 젊은 자식을 잃어버린 슬픈 사연도 들었다. 그루웰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카잔에 예쁜 이슬람 사원이 있구나 하는 정도로 지나쳤을지 모른다. 저녁에 방문한 카잔 이슬람 사원은 지금까지 내가 본 이슬람 사원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얀색과 푸른색 지붕 그리고 노을과 조명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규모는 이스탄불의 대규모 모스크보다는 작지만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루웰을 만나 타타르인이 있고 타타르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과거에 이슬람 종교가 지배적이었던 곳(사실 카잔의 이슬람 사원은 이슬람 국가들이 지원해서 다시 화려하게 지은 것이란다)에 러시아 정교회가 들어섰으니 그들의 아픈 역사가 지금도 진행되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잔 시내에 들어와 우리는 그루웰과 아쉬운 이별을 했다. 차에서 내리는 그루웰이 차비를 내려고 한다. 무슨 말씀. 우리가 차비받으려고 당신을 태워 준 게 아닌데. 그루웰은 너무나 고마워하면서 친정아버지 집에서 가져온 사과와 모양이 안 예쁜 토마토를 준다. 그 토마토를 본 순간 우리는 친정아버지가 멀리서 온 딸에게 모양이 예쁘지 않은 토마토를 주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 토마토는 멀리서 찾아온 아버지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이리라. 그리고 그루웰은 그 토마토를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 여유롭지 않은 생활이지만 감사하다는 마음을 그렇게라도 표시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루웰의 활기찬 목소리와 너무나 감사해하는 얼굴이 다시 떠오른다. 그루웰은 아내와 몇 번의 포용을 한 후 차에서 내렸다.
다음날 아침에 어제 그루웰이 준 과일을 먹으면서 다시 한번 생각했다. 딸에게 못생긴 토마토를 주어야 하는 부모의 마음을. 우리가 마트에서 돈을 주고 산 과일들은 아주 싸고 잘생긴 것들이다. 그루웰 아버님의 마음을 생각하며 먹으니 토마토와 사과 향기가 더욱 그윽하게 마음을 적시고 있었다.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님 두 분이 생각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