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3

수레국화

by 박용기
121_5046-58-st-c-s-Before and after-3.jpg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3, 수레국화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사라져가는 것들은

무언가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아니

아름답게 사라지는 것들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물 없는 작은 화병에 꽃힌

마른 수레국화도

아름다워 서럽습니다.


류시화 시인은

슬퍼하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가버린 것,

시들어가는 것,

그리고 늙어가는 것

슬퍼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하지만

가버리기 전에

시들기 전에

그리고 더 늙어지기 전에

슬퍼하지 말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슬퍼하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다/ 류시화


슬퍼하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아

해마다 숫자가 줄어드는 바다거북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 붉은머리두루미

풋눈 내려 뭇별들 얼굴 시릴 때

솜옷 꺼내 입고 흩어져 날던 쇠기러기 떼


슬퍼하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아

언제까지나 곁에 있을 것만 같았던

이마에 부딪치는 늦반딧불이

아침마다 나뭇가지 흔들며

왜 늦게 일어나느냐고 나무라던 긴꼬리딱새

두 손 땅에 짚고 물그러미 쳐다보던 두꺼비


슬퍼하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아

가시덤불 속에서 돋움발로 웃던 흰제비꽃

손 내밀어 외로움 붙잡아 주던 하늘나리

마음의 작은 흉터들 위로

빛을 물어다 주던 노랑부리멧새


우리 자신을 슬퍼하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아

그때는 몰랐던

상실 후에 알게 되는 것들




#어디에서_와서_어디로_가는가 #고갱 #수레국화 #시든_꽃 #삶 #슬퍼하지_않고는_사랑할_수_없다 #발코니 #2022년

매거진의 이전글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