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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용기 Oct 20. 2020

나를 붙잡는 순간들-20

개여뀌와 밤송이

나를 붙잡는 순간들-20, 개여뀌와 밤송이


공주의 한 밤 농장으로

밤 줍기 체험을 하러 갔습니다.


내가 연구소에 근무할  때는

주말에 연구소에 들러

떨어진 밤들을 주우며 즐거워했던

아내와 외손녀가

내가 연구소를 퇴직한 후  

처음 맞는 이 가을에

그냥 넘어가기 좀 서운해해서

가까운 공주 밤 농장에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갔을 때 너무 재미있어

다시 한번 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사이 벌써 밤 줍기도 끝물이 되어 

밤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욕심을 버리고

셋이 한 자루에만 채우기로 했습니다.


밤 농장이 제법 넓어

나는 따로 떨어져 아직 밤이 달려있는 나무 밑에서

알밤을 모은 뒤

여유를 지고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철 늦은 난쟁이 제비꽃,

작은 흰 꽃을 피우고 있는 까마중도 보였습니다.

그리고

밤나무 밑에는 개여뀌 꽃이 무리 져 피어있었습니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비쳐 더욱 붉게 물든 개여뀌 위에

토실 알밤이 든 밤송이 하나도 내려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밤 줍기는 잠시 잊기로 하였습니다.

내 손에는 밤 줍는 집게 대신

벌써 카메라가 들려있었으니까요.


붉은 개여뀌와 함께

10월이 아름답게 여물어 가는 오후였습니다.




시월의 편지/ 이민영


허리 사이로 가을이 살랑거립니다.

먼 남국에서 오는 슬픈 계절은

이따금씩 하늘빛에 젖고 싶은 웃음으로 답을 합니다.

오늘 이날은 님의 고향입니다.

때로는 지새야 할 겨울날의

하얀 입김에 추워하기도 하고,

바람조차 막아 줄 수 없는

고산(高山)의 나무 홀로서도 이미 높고 황홀하여

가을 가득 붉은 노을로 다가옵니다.

단풍잎 줄기 사이사이 선명해진 핏 줄 속에는

그대의 얼굴로 노래된 고배의 글입니다.

지난날도 그리했듯이.

선홍같은 순정은 사각거림으로 남습니다.


가을에는 시월의 나무잎 하나가

시월의 눈(目)가를 거닙니다.




#나를_붙잡는_순간들 #개여뀌 #밤송이 #밤농장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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