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용기 Oct 03. 2022

계룡산 산책

갑사 가는 길

각 사진을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아내와
계룡산 갑사 가는 길을 걸었습니다.


아직 여름의 느낌이 떠나지 않은,

그렇다고 가을 옷으로 갈아입은 것도 아닌 길이었습니다.


떠나가는 여름의 아쉬움과

아직 단풍이 물들지 않은 아쉬움이 뒤섞인 산책이었지만,

모처럼 걷는 숲길은 역시 좋았습니다.


오리숲을 지나 우리가 가끔씩 가는

옆길로 접어들어

철당간지주가 있는 쪽으로 걸었습니다.

길가에는 야생화들이 별로 보이지 않고

각종 여뀌들만 무성하였습니다.


붉은 이삭여뀌와

줄기에 가시가 잔뜩 있는 가시여뀌를

사진에 담는 사이

제가 사진 찍는 걸 싫어하는 아내는

혼자서 저 멀리 사라져 버려

사진을 찍은 후에는

빠른 걸음으로 뒤를 쫓아가야만 했습니다.


갑사 돌담에 뿌리를 박고

늘어져 피어난 메리골드를 찍고 있으려니

"그 흔해빠진 꽃을 또 찍느냐?"라고 핀잔을 주는 아내에게

카메라의 모니터를 보여주며

난 좀 다른 분위기를 찍는다고 말해주지만

별로 설득력은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도 자연탐방로 숲에서 만난

귀여운 다람쥐를 보고는

'이쪽에서 찍으면 더 잘 보이는데' 하며

사진 포인트를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아마 다람쥐가 너무 귀여워서일 겁니다.


덕분에

잠시 포즈를 취하다 사라져 버린

다람쥐를 사진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탐방로가 끝나가는 지점에 서 있는 탱자나무도

이제 노란빛으로 살짝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때 살던 시골의 울타리에 가득 달린

노란 탱자를 따서 놀던 추억이 떠올라

참 반가웠습니다.


숲길을 내려와 주차장 부근에 피어있던

코스모스를 사진에 담고 있으려니

빨리 가자는 아내의 독촉이 들립니다.


붉은 유홍초가 감싸고 올라가

조금은 힘들어 보이는 분홍 코스모스도

아랑곳하지 않고 밝은 미소로

둥근잎유홍초와 어울려 피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합니다.


정말 자연스러운

자연의 아름다움 같아 보이기도 하고,

함께 사는 삶의 고단함 같기도 하고......


늦여름과 초가을이

한 지붕 두 집 살림을 하는 것 같은 계절이지만,

갑사 가는 길은

여전히 고즈넉하고 좋습니다.


누구나 한 번은 길을 잃는다면

그곳에서 길을 잃고 싶다는

이운진 시인의 시가 마음속에

깊이 들어옵니다.




갑사 가는 길/ 이운진


누구나 한 번은 길을 잃는다면

그래서 한 자리에 오래 서 있어야 한다면

거기, 서 있고 싶네

일주문 넘어가는 바람처럼

풍경소리에 걸음 멈추고

그곳에서 길을 잃고 싶네

산그늘 물소리 깊어져서

늙고 오래된 나무 꽃이 지고

꽃 피운 흔적도 지고 나면

말(言)까지 다 지우는 마음처럼

수만 개의 내 꿈들 떨구어 내는 일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저, 먼 길 끝나지 않았으면




#계룡산 #갑사 #갑사_가는_길 #아내와의_산책 #다람쥐 #여뀌 #코스모스

매거진의 이전글 Traumerei-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