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들려주는 이야기

by 박용기

눈이 있어 아름다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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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눈이 없다면

참 삭막한 계절이 될 것 같다.


아이들에게는 꿈을 꾸게 만들고

어른들에겐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마법의 흰색 가루.


세상을 덮어 더러움을 감추고

날카롭던 세상이

아름답고 부드러운 곡면으로 변하여

다정히 다가온다.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만드는 매직 카펫.

눈이 있어 아름다운 세상이다.


춥고 볼 것 없는 겨울에도

이렇게 때로는 은혜처럼 눈이 내려

겨울을 풍요롭게 하듯이,

힘들고 어려운 삶 속에도

가족, 다정한 이웃, 친구 그리고 믿음 같은

매직 카펫이 있어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나도 누군가의 매직 카펫이 되어

그 삶의 겨울을 이겨내는데 작은 힘을 보태는

새해가 되기를 기도한다.


목련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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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이 소복이 쌓인 날 아침

오랫동안 나에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목련나무를 찾아갔다.


오랜만에 만난 목련나무들은

앙상한 가지에

하얗게 눈 장식을 하고

가지 끝에는

아직 작지만 단단한 봄을 매달고 서 있었다.


아직 남아있는 가을의 흔적도

흰 눈이 아름답게 장식을 해주었다.


아직은 빈약하고 작지만

이 겨울의 끝이 되면

목련의 겨울눈에

가장 먼저 봄이 깃들고 탐스러운 꽃을 피워낼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겠지.


춥고 힘든 겨울이지만

그런 꿈이 자라고 있어

이 겨울도 아름답다.


겨울 조팝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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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아침

마른 조팝나무 가지는

아름다운 시인이 된다.


말라 구부러지고 뒤틀린 잎마다

삶의 굴곡을 노래하는 시어를 매달고

지난 삶을 한 편의 시로 보여준다.


어쩌면 끝나버린 삶.


하지만 눈 오는 겨울날에

이렇게 멋진 시 한 편으로 다시 살아나기 위해

온전히 가을을 붙들고 남아있었나 보다.


삶의 가을을 지나고

이제 겨울에 접어든 나에게

삶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겨울 조팝나무는

한 편의 시로 보여준다.


눈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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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펑펑 내리는 날

외손녀는 엄마를 졸라

눈사람을 만들러 밖으로 나갔다.

나도 카메라를 들고 함께 따라 나갔다.


눈을 굴려

눈 덩이를 만들고

작은 눈사람을 만들었다.


눈과 입을 붙이고

나뭇가지를 주워 높은 코와

두 팔도 만들었다.

풀잎 목도리에

단풍잎으로 만든 모자까지

작지만 참 귀여운 눈사람이다.


특히 외손녀가 만든 단풍잎 모자가 참 멋지다.


비록 생명은 없지만

손으로 직접 만들어 놓은

우리를 닮은 피조물을 보면서도

우리는 참 기분이 좋고 애착을 느꼈다.


하나님도 자신의 피조물을 보시면서

흡족해하셨다.


"하나님이 자기가 창조한 것을 보시니 모든 것이 아주 훌륭하였다." (창세기 1장 30절 중)


그런데

눈을 피해 나무 밑에 잘 만들어 놓은 눈사람이

다음 날 다시 가보니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아마 누군가가 통째로 가져간 모양이다.


어차피 해가 나면

녹아 없어질 눈사람이었지만

외손녀와 딸은

무척 서운해했다.


하나님도 우리 인간을

그렇게 아끼신다고 한다.


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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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을 덮을 기새로

아침부터 눈이 내렸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았을 때엔

앙상한 가지로

볼품없이 서 있던

자그마한 벚나무 하나가

잠시 뒤에 다시 보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꽃나무로 변하였습니다.


저 작은 가지 하나하나마다

하얗게 피어난 눈꽃은

자연이 만들어 놓은

섬세한 프랙털(fractal)의 예술입니다.


저 겨울나무처럼

이제 앙상하고 볼품없는 나도

저 나무 곁에 서서

하늘이 내리는

하얀 축복으로

눈꽃 나무로 변하고 싶었습니다.


"수없이 잘못한

인간의 죄를

용서로 덮는

하얀 눈"을 맞으며.




눈꽃 노래 2/ 이해인


포근하고

순결하다


수없이 잘못한

인간의 죄를

용서로 덮는

하얀 눈

송이 송이

끝도 없이 떨어지네


울다가 웃다가

꽃으로 기도로

내리는 눈


행복한 사람 되라고

고요히 고요히

함박눈으로 떨어지는

하느님의 하얀 용서




*이 글은 대덕교회의 소식지 <대덕행전> 2023년 겨을호에 실린 제 포토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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