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리면-10

튤립

by 박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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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저도

가득 핀 튤립밭 앞에 섰습니다.

그것도

봄비가 내리는 날


집에서 가까운 갑천변에

튤립이 가득 피었다고 해서

달려갔습니다.


비를 맞고 서 있는 튤립은

조금 더 특별한 봄을 선물합니다.


어두운 자주색의 튤립이

참 매력적입니다.


저는 가득 핀 넓은 꽃밭을

사진에 담는 것보다

그중 하나를 골라

그 표정을 닮기를 좋아합니다.


가까이 다가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의

초상화를 찍습니다.

그러면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꽃들의 깊은 내면을

담아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날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빗방울을 머금고 있는

몇 장의 튤립 사진만

살아남았습니다.


봄비 속의 튤립과

마음의 대화를 나누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 류시화


봄이면 꽃마다 찾아가 칭찬해 주는 사람

남모르는 상처 입었어도

어투에 가시가 박혀 있지 않은 사람

숨결과 웃음이 잇닿아 있는 사람

자신의 아픔이면서 그 아픔의 치료제임을 아는 사람

이따금 방문하는 슬픔 맞아들이되

기쁨의 촉수 부러뜨리지 않는 사람

한때 부서져도 온전해질 수 있게 된 사람

사탕수수처럼 심이 거칠어도

존재 어느 층에 단맛을 간직한 사람

좋아하는 것 더 오래 좋아하기 위해

거리를 둘 줄 아는 사람

어느 길을 가든 자신 안으로도 길을 내는 사람

누구에게나 자기 영혼의 가장 부드러운 부분

내어 주는 사람

아직 그래 본 적 없지만

새알을 품을 수 있는 사람

하나의 열굴 찾아서

지상에 많은 발자국 낸 사람

세상이 요구하는 삶이

자신에게 너무 작다는 걸 아는 사람

어디에 있든 자신 안의 고요 읽지 않는 사람

마른 입술은

몰이 보내는 소식이라는 걸 아는 사람




Pentax K-1/ Pentax smc PENTAX-D FA 100mm f/2.8 WR Macro
100mm, ƒ/3.5, 1/320s, ISO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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