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리면-14

튤립

by 박용기

아내는

'텐트 밖은 유럽'이라는 TV 프로그램을

즐겨 봅니다.


스위스, 이탈리아 그리고 스페인 등

유럽의 유명 캠핑장에서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하는

여행 리얼리티 프로인데,

유럽의 경치와 함께

출연한 배우들이

캠핑에 적응해 가는 과정들이

소소한 재미를 선물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멋진 풍경의 캠핑장이

눈에 고립되기도 하고

강풍이 불어 텐트가 엉망이 되기도 합니다.


봄비가 내리는 날

튤립 꽃밭에도 붉은 텐트가 생겼습니다.

꽃잎 일부는 시들어버려

암술과 수술을 보호하기 위해 오므리지 못하고

남은 두 잎이 우산처럼

꽃술을 비로부터 지켜줍니다.

조금은 애처롭지만

텐트 밖은 꽃밭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때로는 눈과 비가 오는 날이 있고,

바람 부는 날도 있지만,

인생의 여정을 그럭저럭 이어갑니다.


오늘은 봄비가 내리는 날

비록 시드는 저 꽃을

지켜줄 수는 없지만,

봄을 불러와 우리에게 선물하고 떠나는

저 꽃의 마지막 모습은

멋진 영정사진으로 남겨놓고 싶었습니다.


꽃이 시드는 동안

오늘의 사랑을 내일의 사랑으로 미루어 온

나를 돌이켜 봅니다.




꽃이 시드는 동안/ 정호승


꽃이 시드는 동안 밥만 먹었어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꽃이 시드는 동안 돈만 벌었어요

번 돈을 가지고 은행으로 가서

그치지 않는 비가 그치길 기다리며

오늘의 사랑을 내일의 사랑으로 미루었어요

꽃이 시든 까닭을 문책하지는 마세요

이제 뼈만 남은 꽃이 곧 돌아가시겠지요

꽃이 돌아가시고 겨우내 내가 우는 동안

기다리지 않아도 당신만은 부디

봄이 되어주세요




Pentax K-1/ Pentax smc PENTAX-D FA 100mm f/2.8 WR Macro
100mm, ƒ/3.5, 1/640s, ISO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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