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갑사를 지나 산길로 내려가다
세월의 흔적이 이끼처럼 묻어있는 돌 하나를 만났다.
사리를 모시던 부도의 받침이었을 것 같기도 한 납작한 돌.
그 위에
한 해의 생을 마감하고
쉼을 찾은 가을 잎이
편히 누워 쉬고 있는 오후
가을 햇살은 따스이 낙엽을 어루만진다.
그 앞에 잠시 앉아 보고 있노라니
낙엽의 이야기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방하착(放下着)
'마음을 내려놓아라'
산사 가까이에서 한 해를 지내면서
가을 잎은 벌써 득도를 했나 보다.
낙엽이 저 돌 위에 내려앉은 이유를 알 것 같다.
낙엽/ 오세영
*
이제는 더 이상
느낌표도 물음표도 없다.
찍어야 할
마침표 하나.
다함없는 진실의
아낌없이 바쳐 쓴 한 줄의 시가
드디어 마침표를 기다리듯
나무는 지금 까마득히 높은 존재의 벼랑에
서 있다.
최선을 다하고
고개 숙여 기다리는 자의 빈손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빛과 향으로
이제는 神이 채워야 할 그의 공간,
생애를 바쳐 피워올린
꽃과 잎을 버리고 나무는
마침내
하늘을 향해 선다.
여백을 둔 채
긴 문장의 마지막 단어에 찍는
피어리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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