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뜨락-13

왕고들빼기 Lactuca indica

by 박용기


동네 화단 언저리에 자리 잡은

키 큰 왕고들빼기가

낮이면 피어납니다.


이 아이들은 잠꾸러기라

늦은 오전에 피어

오후면 꽃을 닫는

해바라기들입니다.


보통은 조금 연한 노란색 꽃이 피는데

햇빛에 바래서인지

이 아이는 거의 흰색에 가까운 꽃을 달고 있었습니다.


화초로 키우지 않아도

혼자서도 잘 자라는

튼실하고 예쁜 하나님의 꽃들입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꽃술이 참 예쁩니다.

누구의 디자인인지

꽃술대에는 멋진 세로줄 무니도 보입니다.


꽃이 다 지고 나면

꽃 진 자리에 하얀 솜털이 돋아나고

바람에 씨앗들을 날려 보냅니다.


왕고들빼기는 영어로는 Indian Lettuce(인디언 레투스)

즉 인디언 상추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상추가 들어오기 전에는

이 아이의 넓고 큰 잎이 상추처럼 쓰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요즘도 봄에는 나물로 먹는 풀입니다.

토끼도 잘 먹는 풀이라

'토끼밥'이라 불리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누가 가꾸지 않아도

열심히 여름을 나고

키도 쑥쑥 커서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예쁜 꽃을 피워내는 왕고들빼기가

사람들의 뜨락이 아닌

하나님의 뜨락에서 가을을 노래합니다.




왕고들빼기 일지/ 손영

잡초들이 모두 뽑혀나간 꽃밭

홀로 살아남은 왕고들빼기

꽃들에 끼어 짐짓 꽃인 척 튼실하게 차올랐다

지친 폭우와 장마에도

질기게 여름을 붙들고 살아남아

성장일지 기록할 사이도 없이

키를 늘리고 가슴을 세우더니

머리에 화관 쓴 듯 꽃대를 주렁주렁 피워 올렸다

백일홍 맨드라미 연신 제 매무새 만지느라 바쁜 틈에

쉬지 않고 꽃술 하늘거리며

허공으로 씨를 날려 보낸다

멀리멀리 날아가 부디 터를 잡아라

지나가는 바람의 갈피에 슬쩍 밀어 넣는다

바람의 등을 타고 멀어지는 씨앗들

노심초사 자식걱정에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제 몸 물기를 말려 수척한 왕고들빼기

마지막 페이지에 마침표를 찍고

추신을 덧붙인다

내년 꽃밭 주변에는

어미 닮은 잡초들 푸르게 돋아날 것이다




Pentax K-1
Pentax smc PENTAX-D FA 100mm f/2.8 WR Macro
100mm, ƒ/3.5, 1/400s, ISO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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