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용기 Jun 27. 2024

정원 산책-2024-9

수레국화 Centaurea cyanus/ Cornflower



수레국화/ 안채영

        

빈 팔월 수레국화 꽃밭을 끌고 간다

가벼운 것들만이 무거운 것들을 끌고 갈 수 있다는 듯

분분한 솜털도 덥게 칠월을 달려왔다


우리는 말을 배열했었지 파란 모자를 장난으로 주고받았지. 말미가 없는 것들은 발설의 꽃말을 가지지 못한 전설이 되지. 수레가 텅 비면 저절로 움직이기도 하겠지만 미동이란 무거운 쪽부터 미끄러져가지


끝만 늙어가는 것이 꽃말이다

우리는 서로 관상觀相이었다

가혹한 꽃말일수록 안 보이는 틈에 흔들리고

총총총 여러 번의 계절을 채굴하고 나서야

씨앗들만 남는다


일년생 꽃말은 너무 가볍다

언젠가는 그 가벼운 꽃말이 꽃밭을 통째로 끌고 간다


사라진 생가들은 어디로 갔을까. 은밀한 때는 헐렁하게 풀린 바람 사이로 왔다 가고 생가는 있는데 생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투명한 족보는 발소리가 죽은 풍경을 위해 문을 열어놓고 있다


알아요, 둥글게 섞이지 못할 뿐이죠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고 느리게 늙어가는 여름 한때

가만가만 진열된 팔월이 지나가고 가장 가벼운 내부 쪽으로 아픈 것들을 묶어놓는다

전설엔 잡초가 더 무성하다




<생의 전부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간 오후>라는 안채영 시인의 시집에 실린 시입니다.


그런데 시를 몇 번 읽어도 쉽게 읽히지 않는 시입니다. 

그런데 무언가 끌리는 느낌은 시의 매력일까요?


시를 읽고 제 수레국화 사진을 번갈아 보면서

빈자리 속에 채워지는 꽃의 생명력을 느껴봅니다.


이 시가 실린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이병철 시인은

이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안채영은 가벼움을 통해 무거움을 획득하는 새로운 시대의 존재론을 제시한다. 화자가 “생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투명한 족보는 발소리가 죽은 풍경을 위해 문을 열어놓고 있다”고 진술할 때, ‘비움’이란 결국 ‘사라짐’, ‘투명함’, ‘죽은 풍경’과 짝을 이루는 소모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오독되기 쉽다. 하지만 시인은 “가장 가벼운 내부 쪽으로 아픈 것들을 묶어놓는" 사람이다. 자신을 비운 자리에 “안 보이는 틈에 흔들리는" 세계의 풍경들을 채워 넣는다. 그 순간 사람이 살지 않는 텅 빈 폐가가 소멸의 장소만이 아니라 “잡초가 더 무성한" 생명의 공간임이 밝혀진다. 공허를 충만으로 바꾸는 생명력의 언어, “가벼운 꽃말이 꽃밭을 통째로 끌고 간다." 이는 존재론적 아포리즘인 동시에 탁월한 메타시(Metapoetry)이기도 하다. 자의식과 자기감정을 덜어낸 언어로 독자의 마음을 끌고 가는 시, 물처럼 어디로든 흘러갈 수 있는 시, 안채영의 시야말로 포스트모던의 시가 아닌가? (출처: https://www.usbntv.net/news/view.php?bIdx=3818)




Pentax K-1    

Pentax smc PENTAX-D FA 100mm f/2.8 WR Macro


#정원_산책 #수레국화 #안채영의_시 #2024년

매거진의 이전글 정원 산책-2024-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