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ic-8

초가을을 밝히는 등불

by 박용기



초가을과 늦여름이 사이좋게 동거하는

이 계절도 의외로 좋습니다.


아침저녁으로는 시원하고

낮으로는 햇볕이 좀 따가운

그래서 꼭 짬짜면처럼

여름과 가을을 모두 맛볼 수 있는 계절입니다.


이 즈음에 피어나는 꽃 중

계요등이라는 아이도 있습니다.


이름에서 벌써 냄새가 좀 나지요?

하지만 초가을을 밝혀주는 등불처럼

이 즈음에 피어나는 이 아이는

오늘도 나를 향해 밝은 미소를 보내줍니다.


계절의 아름다운 동거처럼

이 세상도 다른 서로를 포용하며

아름답게 동거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계요등은 꼭두서니과의

풀꽃이 아닌 잎 지는 덩굴나무입니다.

덩굴들도 지지대를 감고 올라갈 때에는

자신들만의 방향이 있다고 합니다.


사진에서처럼 계요등은

지지대를 왼쪽으로 감아 올라갑니다.

등나무는 반대로 오른쪽 나사 법칙을 따릅니다.


계요등(鷄尿藤)의 순수 우리말 이름은 ‘구렁내덩굴‘인데

잎과 꽃에서 닭 오줌 냄새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한자 이름입니다.

학명도 Paederia scandens로

속명인 페데리아(Paederia)는 ’악취‘를 뜻하는 라틴어 페도르(Paedor)에서 왔고

종명 스칸덴스(scandens)는 ’기어오른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역한 냄새가 나는 아이는 아니어서

좀 억울한 이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계요등/ 김승기


*


서울 종묘 담장 위에서

여름이면 땅으로 땅으로

길게 목을 늘이는

계요등

지금 꽃 피우고 있겠지


가장 낮은 곳을 향해 팔을 벌리면서도

누구에게나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웃음짓는

바짝 다가가지 않는 사랑법을

가르쳐준 너

오늘도 사랑의 세레나데를 위해

클라리넷 불고 있겠지


병들어 찾아온

따뜻하게 안아주지도 않는

낯선 고향

시름겨운 한숨소리 뱉을 때마다

나직이 들려주던 너의 속삭임이 그립다


더는 견딜 수 없는 야멸찬 고향 바람

고통의 바다를 자맥질하다가 겨우 잠드는

깊은 이불 속이 유일한 행복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몸

이제 네게로 가련다


가슴 울려주던 클라리넷 선율 멈추고

둥근 열매마저도 떨어져

누렇게 찌그러진 얼굴 되어도

서로 아픔 달래며 마주하는

행복한 시간 만들고 싶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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