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tic-10

먼 여행

by 박용기
박용기의 사진공감 poetic-10, 먼 여행/ 박주가리 꽃



아직 여름의 햇볕이 따가운 어느 오후.

학교가 끝난 외손녀를 데리러 갔습니다.


나를 만나자 무언가 보여줄 게 있다고

데려간 학교 앞 길가

그곳에는 박주가리 꽃이 피어있었습니다.


작은 꽃에 코를 가까이 대보면

향기로운 냄새가 납니다.


어릴 적 어디선가 맡아보았던

코티분 냄새 같기도 한

추억의 냄새


외손녀도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습니다.

그 아이는 내가 느끼는 냄새와는 다른 냄새를 맡았겠지요.

하지만 나중에 어른이 되고 나이가 들면

박주가리 꽃 향기는 외손녀에게도

외할아버지와 함께 나누었던

추억의 향기가 될 것입니다.


가을이 되면 꽃 진 자리에

작고 길쭉한 표주박 같은 열매가 달리고

겨울이 되면 열매가 열려

솜털을 단 씨앗들이 먼 여행을 떠날 것입니다.


그래서 꽃말이 '먼 여행'입니다


박주가리 꽃 향기와 함께

나도 생각 속 먼 여행을 떠납니다.


*


9월의 시 /문병란


9월이 오면

해변에선 벌써

이별이 시작된다

나무들은 모두

무성한 여름을 벗고

제자리에 돌아와

호올로 선다


누군가 먼길 떠나는 준비를 하는

저녁, 가로수들은 일렬로 서서

기도를 마친 여인처럼

고개를 떨군다.


울타리에 매달려

전별을 고하던 나팔꽃도

때묻은 손수건을 흔들고

플라타너스 넓은 잎들은

무성했던 여름 허영의 옷을 벗는다


후회는 이미 늦어버린 시간

먼 항구에선

벌써 이별이 시작되고

준비되지 않은 마음

눈물에 젖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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