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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용기 Dec 14. 2020

레몬타임


2000년 2월 나에게는 생각하지 못했던 '위암'이라는 어려움이 찾아왔다. 다행히 나는 어려운 상황을 이기고 살아남았다.

갑자기 찾아온 뜻밖의 질병은
나에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하였다.
그 후부터 시작된 나의 글쓰기와 사진 찍기는
오늘까지 이어져
나의 삶을 지탱해주는 것들 중 중요한 하나가 되고 있다.

벌써 20년 전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제 그때부터 쓰기 시작한 글들을 하나씩 꺼내어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의 마음으로
<마음 공감>에 담아두기로 한다.



오늘도 오전에 ‘ 20분의 집안 산책’을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이번 시련을 통하여 무엇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일까? 몸이 회복되면 어떤 길로 인도하시려는 것일까?



항암주사를 맞고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 몸이 회복되기 시작하고 그동안 회복을 위하여 힘겹게 먹던 음식도 조금은 음미를 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이때부터는 장운동을 위해 가끔씩 집안 거실에서 20 분 정도씩 걷기를 시작한다.


 그러다 문득 베란다에 놓여 있는 화분들 중 아프리카 봉선화라는 꽃 화분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며칠 전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큰딸이 잠깐 집에 오면서 선물을 받았다고 데리고 온 작은 애완용 토끼가 생각났다.


토끼를 데려온 날 우리는 하얀 털과 연한 갈색의 귀를 가지고 있는 주먹만 한 어린 토끼의 너무도 귀여운 모습에 매료되어 온 가족이 저녁 시간을 온통 빼앗겼었다. 그놈은 온 집안을 작은 발로 깡충거리며 다녔는데 화단에 나가서는 낮은 화분에 심겨 있는 화초 잎들을 선별하여 시식도 하였다. 몇 가지의 화초를 작은 코를 벌름거리면서 냄새로 감별하더니 바로 오늘 내 눈에 들어온 아프리카 봉선화의 잎 하나를 삼분의 일쯤 작은 입으로 오물오물 뜯어먹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보니 그 화초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뜯긴 잎도 그대로 싱싱하고 여전히 예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 꽃을 보면서 그날 밤 작은 토끼가 더 좋아했던 화초가 생각났다. 그것은 작은 화분에 심겨 연한 잎들이 막 돋아 난 레몬타임이라는 허브다. 토끼는 몇 번씩 그 화분에 가서 잎들을 뜯어먹었는데 그 녀석이 잎을 뜯어먹을 때마다 레몬의 향긋한 냄새가 실에까지 은은하게 퍼져오곤 하였다.


그 날은 깨닫지 못했었지만 오늘 아침 화초들을 보면서 갑자기 허브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에게 베풀면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더욱이 자기를 내어 주면서도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는 허브와 같은 삶.




*이미지 출처: Pixabay

#수필 #2000년_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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