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그리고 산 바람

양양 2박 3일

by 박용기


강원도 양양에서 2월의 바다와 산 바람을 잠시 만나고 왔습니다.


외손녀가 초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학기말 방학을 맞아

엄마 아빠와 여행을 떠나게 되어

아내와 나는 모처럼 홀가분한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떠나기로 한 주초에만 해도

봄날처럼 따사롭던 날씨가

갑자기 깜짝 추위 모드가 되었습니다.

더욱이 강원도에는 강풍까지 불었습니다.


어차피 바닷가에서 오래 놀거나

등산을 할 계획은 없는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추위와 강풍은

여행에 반갑지 않은 불청객임에는 틀림없었습니다.


스페인 풍으로 지어진 숙소 건물의

흰색 벽과 붉은빛이 도는 갈색 타일 지붕이

푸른 바다와 어울려

잠시 유럽의 어느 휴양지에 와 있는 기분이 들게 했습니다.


이곳 해변은

몇 년 전에 파도와 어우러진 멋진 겨울 일출 사진을 찍은 곳이어서

또 한 번 시도를 해 보고 싶긴 했지만,

이번에는 가능한 사진을 덜 찍겠노라 작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의 아침잠을 보장해주는 대신

새벽에 일어나 바닷가에 나가는 일을 포기했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인지

새벽의 추위 속에서 일출을 사진에 담는 대신

늦은 아침까지 따뜻한 침대를 떠나지 않는 일 또한 편하고 좋았습니다.

아내의 싫은 소리를 듣지 않게 된 것도 보너스로.


우리는 고성까지 해안을 따라 드라이브도 하고,

바닷가 카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시기도 하면서

편한 여행을 했습니다.


고성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진부령을 넘으면서 황태덕장도 보고,

전에 외손녀와 함께 들렀던

한계령 휴게소에도 들러

따뜻한 한방차와 함께

늦은 오후의 겨울 산을 바라보았습니다.

한계령에서 양희은의 '한계령'을 듣는 일도 즐거웠습니다.


바람이 너무 강해

휴게소 밖에서 산을 감상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전망대에 잠시 서서

바람에 마구 흔들리는 카메라를 붙잡고

파노라마 사진 한 장을 찍었습니다.


외손녀와 함께 왔을 때처럼

운무가 가득한 환상적인 풍경도 아니고

눈으로 하얗게 덮인 산봉우리들도 없어 아쉬웠지만,

늦은 오후의 불그스레한 노을빛과 어우러진

2월이 설악산 능선들도 그런대로 아름다웠습니다.


한계령에서 바라본 설악산



마지막 날에는 다행히 추위가 풀리고

바람도 조금 약해졌습니다.

그래도 숙소를 조망할 수 있는 방파제에 오르니

온몸으로 부딪히는 바닷바람이

마치 우리가 서있는 방파제가 통째로

어딘가로 표류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방파제에서 바라본 숙소, 폰카


양양을 떠나

강릉 안목해변의 커피거리에 들러

브런치와 커피로 점심을 먹고

해변에서 마지막 바다 바람을 쏘였습니다.


따뜻해진 날씨 탓인지

해변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나와있었습니다.


가까이까지 다가오는 갈매기들이 있어

폰카에 몇 장을 담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모래사장에 앉아있던 아이들과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사진 두 장을 중첩해보니

재미있는 사진이 만들어졌습니다.



안목해변의 갈매기. 폰카로 찍은 앉아있는 아이들과 날아오르는 아이들 사진 두 장을 중첩



바다를 떠나기가 아쉬운 듯

일흔의 소녀가 된 아내는

해변에서 조개껍질을 줍고,

아내의 긴 그림자도 바다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코로나-19로 힘들고 지친 날들을 날려 보내기라도 할 것처럼

바다와 산 바람이 강하게도 불었던 짧은 여행이었습니다.


특별할 것도 없고

사진도 별로 찍지 못했지만,

대신 편안한 휴식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더 많은 것들을 내려놓아야 하는 나이라고

여행에서 만난

바다와 산 바람이 나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아내의 긴 그림자는 바다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겨울바다/ 이해인



내 쓸모없는 생각들이 모두

겨울 바닷속으로 침몰해 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도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일 때

바다를 본다


누구도 사랑하기 어려운 마음일 때

기도가 되지 않는 답답한 때

아무도 이해 못 받는

혼자임을 느낄 때

나는 바다를 본다


참 아름다운 바다빛

하늘빛

하느님의 빛

그 푸르디푸른 빛을 보면

누군가에게 꼭 편지를 쓰고 싶다


사랑이 길게 물 흐르는 바다에

나는 모든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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