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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용기 Jul 08. 2021

신비로운 색, Blue


파란 하늘, 파란 바다.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두 거대한 물체는 모두 파란색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초록 잎, 빨갛고 노란 꽃, 노랗고 붉은 과일 등에 비해
파란 꽃, 파란 과일은 생각보다 흔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은 파란색이라고 한다.
흰 집과 파란 지붕이 동화같은 산토리니의 풍경을 보면서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느끼며 좋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란색은 자연의 꽃과 나무와 동물 들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왜 그럴까?


고대 인류는 파란색을 알지 못했다?


과학자들은 고대의 인류는 파란색을 알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인류의 조상들은 흑, 백 그리고 빨간색만을 구별할 수 있었고 후에 노란색과 녹색을 인식할 수 있었으며, 가장 늦게 파란색을 구별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고대의 언어에서 ‘파란색’이라는 말이 어느 문화권에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일의 언어학자인 가이거(Lazarus Geiger)교수는 히브리어, 독일어, 중국어, 산스크리트어, 아랍어, 아이슬란드어 등의 말에서 색에 대한 어원을 연구하였다. 그런데 어떤 언어에서도 고대에는 ‘파란색 (blue)’을 가리키는 말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연구에서 색을 나타내는 말이 출현한 순서를 발견하였다. 그 순서는 대부분의 언어에서 비슷하게 검정색과 흰색, 빨간색, 녹색, 노란색 그리고 그 후에 파란색 순이었다. 고대 문화에서 ‘파란색’은 별도의 색이 아니라 ‘녹색’의 색조의 하나로 인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말에서도 ‘푸르다’는 말을 사전에서 찾으면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 풀의 빛깔과 같이 밝고 선명하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하늘의 파란 색과 풀잎의 초록색을 같은 말로 표현하기도 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문화는 현대에도 일부 지역에 남아있다고 한다. 심리학자인 데비도프(Jules Davidoff)의 2006년 연구에 의하면,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힘바(Himba) 부족은 아직도 ‘파란색’에 해당하는 언어가 없으며 그들은 실제로 녹색과 파란색의 구분이 없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언어학자들 사이에서는 ‘파란색’에 해당하는 말이 존재하지 않을 때 과연 사람들은 ‘파란색’을 볼 수 있는지, 그 색을 인식하지 못할 때 그 색은 정말 존재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존재한다.




파란 하늘과 바다의 색


필자가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호기심 하나는 ‘왜 하늘은 파랄까?’였다. 그 당시 잘 풀리지 않았던 이 호기심이 어쩌면 나로 하여금 과학자가 되게 했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그 호기심에 대한 답을 인터넷에서 찾기만 하면 속 시원하게 알 수 있지만 필자가 어렸을 때에는 누구 하나 속 시원하게 답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하늘의 파란색과 바다의 파란색은 자체가 파란 물감으로 물들어 있어 파란 게 아니다. 빛이 만들어 내는 시각의 마술이다. 태양 빛에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이 포함되어 있다. 가시 광선은 다양한 주파수의 전자기파로 파장이 가장 짧은 보라색(380 nm ~ 450 nm)에서부터 파장이 가장 긴 빨간색(630 nm ~ 750 nm)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그중 파란색은 파장이 450 nm ~ 495 nm로 보라색 다음으로 짧은 파장을 가지고 있으며 그 파장의 범위도 좁다. 태양 빛이 대기층을 통과하는 동안, 공기 속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산소와 질소 분자는 태양 빛을 흡수 한 후 파장이 짧은 파란색에 해당하는 빛을 모든 방향으로 다시 방출하는 레이레이 산란(Rayleigh scattering)을 일으킨다. 이렇게 사방으로 흩어진 파란색의 빛이 우리 눈에 들어오면 우리는 하늘을  파란색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런데 왜 파장이 더 짧은 보라색으로 보이지 않고 파란색으로 보일까? 그 이유는 보라색도 산란이 되지만 태양광 속에 보라색 파장의 에너지의 양이 파란색 파장의 에너지 보다 적고, 우리 눈이 파란색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을 하기 때문에 하늘은 파란색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한편 물은 긴 파장의 빛을 흡수하고 짧은 파장의 빛을 산란시키기 때문에 같은 이유로 바다도 파랗게 보이는 것이다.


자연에는 왜 파란색이 드물까?


다양한 색상의 꽃들을 살펴보면 의외로 파란색 꽃이 드물다. 파란색 꽃은 28만여 가지의 꽃 피우는 식물 중 10 % 미만이다. 동물 사이에서 파란색을 찾기는 더욱 어렵다. 이유는 바로 파란색을 내는 천연 물감이 자연에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꽃이나 동물의 천연 염료는 주로 유기물질로 이루어졌으며, 들어오는 햇빛에서 필요한 파장 부분을 선택적으로 흡수하고 나머지는 반사함으로써 우리 눈에 고유의 색으로 인식되게 한다. 파란색은 녹색이나 붉은색에 비해 파장이 짧아 높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파란색 빛은 식물 속 유기물질 내에서 전자 상태를 더 높은 에너지 상태로 올려놓기에 충분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 식물 내에서 흡수가 잘 되기 때문에 거의 반사 되지 않는다. 즉 식물은 빛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데 있어 높은 에너지의 파란색 빛을 다른 색의 빛보다 더 선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생물 염료는 파란색 빛을 흡수하고 녹색이나 붉은색 빛을 반사시켜 우리 눈에 녹색이나 붉은색으로 보이게 된다.


대표적인 파란색 꽃으로는 참제비고깔(델피니움 delphinum), 플럼바고(plumbago), 블루벨(bluebells), 수국, 자주달개비, 아메리칸 블루(blue daze), 나팔꽃 그리고 수레국화 등이 있다. 그런데 실은 이러한 꽃의 색을 내는 물감의 주원료는 안토시안이라는 붉은 염료다. 안토시안은 용액의 산성도에 따라 색이 변한다. 식물들은 안토시안과 함께 다른 물질을 섞어 화가가 색을 만들어 내듯 자신의 꽃을 파랗게 장식한다.


동물의 색은 많은 경우 먹이에 들어 있는 색소가 발현되어 나타난다. 홍학의 경우 그들이 좋아하는 새우로부터 온 핑크빛이며, 금붕어의 경우도 먹이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식물에 파란색을 내는 염료가 없기 때문에 동물의 경우에도 파란색을 만들 수 없게 된다.


blue-diadem-butterfly



그렇다면 멋진 파란 날개를 가진 청색 디아뎀 나비(Blue Diadem butterfly)의 파란색은 어떻게 만들어 질까? 식물들이 꽃의 파란색을 화학적인 방법으로 만들어 내는 반면, 동물들은 대부분 물리적인 방법에 의해 만들어낸다.


디아뎀 나비의 날개를 연구한 사람들에 의하면 이 나비는 염료가 아닌 날개에 있는 독특한 나노 구조에 의해 파란색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비늘은 지붕의 널 모양의 이중 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위 층의 비늘은 투명한 창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아래 층의 비늘이 파란색을 만들어 낸다. 즉 아래 층의 비늘 두께는 200 nm로 비늘의 윗표면에서 반사된 빛과 비늘을 투과해서 아래표면에서 반사된 빛이 400 nm의 경로차를 만들고 두 빛이 간섭을 일으켜 파장이 400 nm 부근의 파란색에 해당하는 파장은 커지고(보상간섭, constructive interference) 다른 색의 파장은 상쇄되도록(상쇄간섭, destructive interference) 만들어져 있어 파란색의 빛만 우리 눈에 들어온다.


한편 모포나비(Morpho butterfly)는 비늘이 크리스마스 트리 형태로 더욱 복잡하게 생겼으며 빛이 굴절하면서 파란색 빛만 반사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파란색 블루제이(blue jay)라는 새는 깃털에 빛을 산란 시키는 미세한 구슬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되어 있어 파란색 파장 이외의 빛들은 상쇄되도록 되어 있다.


파란색 물감의 역사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거나 천에 염색을 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염료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붉은 색과 노란색의 황토나 검은 숯으로부터 물감을 만들기 시작한 건 10만 년 보다도 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파란색 물감을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고작 5000여년 전부터다. 최초의 파란색 물감은 석회석(limestone) 가루와 모래, 그리고 구리를 포함하고 있는 남동석(azurite)이나 공작석(malachite) 등의 광물을 섞어 800 °C에서 900 °C로 가열하여 푸른색 유리를 만들고 이 유리를 부수어 계란 흰자와 같은 투명하면서도  점도가 높은 물질에 섞어 푸른색 물감을 만들었다. 이 최초의 인공물감을 이집션 블루(Egyptian blue)라 한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에게 특별한 물감은 대단히 중요한 재료가 된다.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의 걸작인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라는 작품을 보면 머리를 감싸는 두건이 고급스러운 울트라마린(ultramarine, 군청색)과 황금색으로 칠해져 있다. 이 물감은 6000년 전부터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아프카니스탄의 산지에서 나오는 라피스 라줄리(lapis lazuli, 청금석)라는 청색의 보석을 이용해 물감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물감이지만 실제로 물감으로 만들어져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6세기에 와서야 가능했다. 하지만 이 고급스러운 파란 물감은 고가여서 특별한 작품에만 사용되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는 이 물감을 너무 좋아해 집안을 빚더미에 빠지게 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가 1500 년 또는 1501 년경에 제작한 예수의 매장에 대한 작품 <매장, Entombment>은 미완성으로 남아있는데, 그 이유가 그가 더 이상 울트라마린 색의 물감을 살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후 1826년 프랑스 화학자에 의해 같은 색을 합성하는 방법이 개발되었으며 이 물감은 ‘프렌치 울트라마린’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우리가 잘 아는 코발트 블루(cobalt blue)는 8세기에서 9세기 사이에 출현하였다. 이 색은 중국 등에서 도자기에 사용하였으며 후에 프랑스에서 1802년에 보다 순수한 물감이 개발되어 상용화되었다. 빈센트 반 고흐도 비싼 울트라마린 대신 이 새로운 파란색 물감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는 물감으로 사용된 파란색 물감들은 비교적 고가였지만 천에 파란색 물을 들이는 물감 중에는 싼 ‘인디고 블루, indigo blue’가 있다. 이 물감은 인디고페라 틴토리아 (Indigofera tinctorial, 낭아초 종류)라는 식물로부터 만든다. 우리나라에서도 쪽이라는 식물을 이용해 천에 푸른색 염색을 한다. 1880년에는 천연 염료 대신 합성한 염료가 개발되었다. 이 물감은 청바지의 색을 내는 물감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 밖에도 영국 해군의 제복으로 사용되어 이름이 붙여진 어두운 청색의 네이비 블루(navy blue), 독일에서 우연히 발견된 프러시안 블루(Prussian blue)도 있다. 프러시안 블루는 원래 붉은색 물감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더 붉은색을 만들기 위해 탄산칼륨이라는 물질에 동물의 피를 섞었는데, 뜻밖의 화학반응에 의해 이 파란색의 물감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한다. 파블로 피카소는 이 프러시안 블루를 사용해 그의 ‘청색 시대’ 그림들을 그렸다. 또한 1842년 영국의 천문학자인 존 허셜경(Sir John Herschel)은 이 프러시안 블루가 빛에 특별한 민감도를 지니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설계도면을 복사하는데 가장 적합한 색조임을 알게 되어 ‘청사진’으로 알려진 복사 방법을 발견하였다. 이 기술은 현대적인 복사기술이 나오기 전까지 설계도면 등의 복사에 없어서는 안 될 유용한 방법이었다. 때문에 청사진(靑寫眞) 또는 블루프린트(blueprint)는 오늘날에도 은유적으로 ‘어떠한 자세한 계획’을 일컫는 데에 사용되고 있다.


파란색 물감의 역사는 아직도 진행중으로 가장 최근에 발견된 물감은 ‘인망 블루, YInMn blue’라고 명명되었다. 이 물감은 2009년 미국의 화학자인 마스 수 브라마 니안(Mas Subramanian)팀이 전자재료를 만들기 위해 이트륨(Y), 인듐(In) 및 망간(Mn)을 섞어 가열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되었으며 지금까지 발견된 파란색 물감 중 가장 파란색에 가까운 색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파란색은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하늘과 바다의 색으로 우리에게 고요함과 안정을 주는 색이다. 하지만 자연에는 이 색을 내는 꽃이나 물감이 드물다. 사람들 뿐만 아니라 많은 식물과 꽃들도 이 파란색의 빛을 좋아해 모두 흡수해버리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 퍼져있는 색이면서도 정작 손에는 잘 잡히지 않는 파란색은 정말 신비한 색이라는 생각이 든다.










* 이 칼럼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사보인 <KRISS> 2021 SUMMER에 게재된 제 글입니다.


* 그림출처: Pixabay, 박용기,

                blue-diadem-butterfly: https://www.redbubble.com/people/amydaggett/works/28436935-blue-diadem-butterfly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https://ko.wikipedia.org/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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