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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용기 Oct 24. 2021

가을과 초콜릿


가을은 참 아름다운 계절이다.

푸른 하늘과 단풍, 그리고 가을꽃이 어우러진 숲 속은 더욱 그렇다. 무더위가 한창인 여름 숲에서는 꽃과 나무들도 지쳐 있는지 꽃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날씨가 서늘해지면서 산과 들에는 가을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가을꽃으로는 코스모스와 함께 구절초와 쑥부쟁이 그리고 참취, 개미취, 벌개미취 등의 취 꽃 가족과 노란 산국 등이 있다. 하지만 가을은 꽃보다 단풍의 계절이다. 가을에 아름다운 단풍을 만드는 나무로는 뭐니 뭐니 해도 단풍나무를 꼽을 수 있지만, 나는 느티나무와 복자기나무, 벚나무 그리고 서어나무도 좋아한다.





가을 단풍의 심리학

“그런데 우리는 왜 가을의 모습들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일까?” 몇 년 전 페이스 북에서 만나는 신부님께서 던진 질문이다. 그는 가을의 아름다움 속에 들어있는 공통적인 코드는 ‘죽음’이라고 말한다. 모든 생명체에는 난 곳으로 돌아가려는 성향이 입력되어 있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가을 잎을 보면서 우리에게도 회귀 본능이 강해지는 계절이 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이다. 늙어감과 죽음을 생각하면서 성숙해 지기를 권면하는 내용이었다.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는 그의 결론 부분에서는 숙연한 마음이 되었다. 그래서 가을은 슬픈 아름다움을 지닌 계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을은 급격한 변화를 동반하는 계절이다. 무덥던 날씨가 갑자기 서늘해지고, 녹색의 나뭇잎들은 붉고 노랗게 변하며, 낮의 길이는 하루가 다르게 짧아진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들로 하여금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브런트(Jason Brunt)에 의하면, 가을의 단풍잎 같은 시각적인 대조는 유아기부터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는 요인의 하나라고 한다. 아름다운 가을 잎과 같은 강한 시각적 대비와 밝기는 기분 좋은 흥분으로 인식된다고 한다.


여기에 시간적 대비도 빠르게 진행된다. 봄부터 여름까지는 초록의 세상이 이어지지만 가을이 되면 갑자기 가을 색으로 변하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는 온통 붉게 타오르게 된다. 그리고 낙엽이 지기 시작하면 오래지 않아 가을 잎은 낙엽이 되고 만다. 이렇게 다른 계절에 비해 빠른 가을의 변화를 우리의 뇌는 자극 신호로 해석한다고 한다. 이러한 자극 신호에 맞닥뜨리게 되면, 우리는 그 신호를 의미 있는 신호로 인지하게 된다. 더욱이 그러한 자극이 일정한 간격으로 오고 가게 되면 우리는 훨씬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바로 매년 같은 시기에 맞이하는 가을의 단풍이 그런 신호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을엔 생각이 많아지게 된다.




가을에 느끼는 우울함

가을부터 시작되는 ‘계절성 정서 장애’라는 마음의 병이 있다. 영어로는 seasonal affective disorder라고 하며 줄여서 SAD라고 부르는데, 이 말(sad)이 영어로 슬프다는 말이니 가을에 느끼게 되는 쓸쓸하고 우울한 감정을 참 잘 나타낸다는 생각이 든다. 가을이 되면 누구나 조금은 쓸쓸한 감정과 우울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그 정도가 심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병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SAD는 대체적으로 가을철이 되면서 낮의 길이가 짧아지는 북회귀선 이북과 남회귀선 이남의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겪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세계 지도를 들여다보면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유럽, 북미 등이 여기에 속하며,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아프리카 지역 및 중남미의 많은 나라 등은 이 지역에 해당하지 않는다.


SAD의 원인은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으며 몇 가지의 가설이 제안되어 있다. 첫 번째는 햇볕의 영향이다. 우리 망막이 빛을 받으면 신호가 뇌의 시상하부라는 곳으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는 수면, 식욕, 체온, 기분 등을 조절하게 된다. 해가 짧아져 하루의 일조량이 적어지면 이러한 활동이 둔화되어 SAD가 나타날 수가 있다는 가설이다.


두 번째는 세로토닌이라는 뇌신경전달물질의 영향이다. 가을과 겨울철에는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세로토닌의 양이 줄어들어 우울한 기분이 된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비타민 D와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결과도 있다. 2018년 Genes & Nutrition 저널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부 사람들에게서 우울증의 시작을 설명할 수 있는 비타민 D와 세로토닌 사이의 연관성이 발견되었다. 우리 몸은 햇빛에 노출되면 비타민 D를 생산한다. 가을이 되면서 낮의 길이가 짧아지면 체내에서 비타민 D의 합성이 적어지게 되어 SAD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 밖에도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영향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수면과 연관된 이 호르몬은 어두워지면 분비되는데, SAD를 경험하는 사람들의 겨울철 멜라토닌 수치는 정상적인 사람에 비해 현저히 높다고 한다.


SAD를 앓게 되면 수면 시간과 주간 졸음이 증가하고, 이전에 즐겼던 활동에 대한 흥미와 즐거움을 상실하게 되며, 사회활동의 위축과 거절에 대한 민감도가 증가하게 된다. 짜증과 근심이 늘고, 죄책감과 절망감이 들며, 힘이 없고 피로감이 커지기도 한다. 집중력이 저하되고 명료한 생각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한편 식욕은 증가하여 특히 단것과 탄수화물에 대한 탐닉을 할 수도 있게 되어 체중 증가를 수반할 수도 있다. 증상은 매년 같은 시기에 다시 나타나고 계절이 지나면 호전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SAD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제시된 몇 가지를 보면, 햇볕을 많이 쪼일 것, 스트레스를 피할 것, 운동과 함께 잘 먹을 것 등이 있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가을꽃과 단풍으로 아름다운 숲길을 걸은 후 아담한 카페에 들러 맛있는 초콜릿 케이크 한 조각과 함께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이 아름다운 가을에 SAD와는 친구로 지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미지 출처: pixabay



가을과 초콜릿

가을의 우울한 느낌을 벗어나는데 도움이 되는 음식 중 하나는 바로 초콜릿이다. 영국 런던의 UCL(University College London)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다크 초콜릿을 먹는 사람들은 우울해질 가능성이 적다”라고 한다. 20세 이상의 성인 1만 362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바탕으로 한 연구 결과 초콜릿 종류와 상관없이 초콜릿을 먹은 그룹은 먹지 않은 그룹에 비해 우울증이 발생할 확률이 57 % 낮았으며, 특히 다크 초콜릿을 섭취한 그룹은 초콜릿을 섭취하지 않은 그룹에 비해 우울증이 발생할 확률이 70 % 나 낮았다고 한다. 이 연구는 초콜릿 회사로부터 연구비를 받지 않은 연구이기 때문에 보다 객관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초콜릿은 인류와 4,000여 년 동안이나 함께 해온 먹거리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덩어리 형태의 초콜릿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영어의 ‘chocolate(초콜릿)’이라는 단어는 지금의 멕시코인 고대 라틴 아메리카 아즈택의 단어 ‘xocoatl(초코아틀)’에서 왔다고 하며, 이 말은 카카오 콩으로부터 걸러낸 쓴 음료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카카오나무의 라틴어 이름인 테오브로마 카카오(Theobroma cacao)는 "신의 음식"을 의미한다. 그들은 이 쓴 음료를 종교의식이나 약으로 사용했다.


코코아나무는 1528년에 스페인으로 전해졌으며 그 후 스페인 사람들은 액체 상태의 쓴 초콜릿에 설탕이나 꿀을 넣어 마셨다. 스페인은 오랫동안 초콜릿을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있어 유럽의 다른 나라들은 알지 못했다. 1615년 프랑스의 루이 13세와 스페인의 왕 펠리페 3세의 딸 안 도트리슈(Anne d'Autriche)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안이 스페인에서 초콜릿 샘플을 프랑스 왕실에 가져옴으로써 유럽에 퍼지게 되었다.


초콜릿은 코코아 분말과 코코아 버터로부터 시작되지만, 코코아 분말과 버터를 얻는 일은 커피보다도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코코아 분말의 원료인 카카오나무 열매는 쓰고 맛없어 우리가 알고 있는 달콤한 초콜릿과는 180 도 다른 맛을 가지고 있다. 매력적인 갈색의 초콜릿 속 코코아 향과 맛을 내기 위해서는 발효와 경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카카오나무에 달린 열매를 카카오 포드(pod)라고 부르는데, 껍질 속에는 점성이 있는 펄프(pulp)가 가득 차있고 그 속에 아몬드 형태의 씨앗(cacao bean)이 들어 있다. 포드를 가른 후 24-48시간 이내에 발효를 시키기 시작하며, 일반적으로 5-7일 동안 발효시킨다. 효모는 펄프에서 자라면서 펄프 속의 당분을 에탄올로 변환시키는 발효를 담당한다. 그 후 박테리아가 산소가 있는 상태에서 에탄올을 산화시켜 아세트산과 물로 변화시킨다. 이 과정에서 열이 발생되고 온도가 높아진다. 펄프가 분해되고 젖산과 아세트산이 생성된다. 아세트산은 결국 콩을 죽여서 세포벽이 파괴되고 이전에 분리되었던 여러 물질들이 섞이게 된다. 이 과정을 거치는 동안 카카오 콩 내부에서는 효소의 작용에 의해 산화 작용이 일어나게 되어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경화 과정(curing process)이라 부른다. 이 단계를 통해 카카오 콩은 비로소 우리가 알고 있는 독특한 초콜릿 맛과 향을 만드는 향미 전구체를 가지게 되며 갈색을 띠게 된다. 그 후에도 세척, 로스팅, 지방이 풍부한 코코아 버터와 코코아 고형분의 분리 등의 많은 과정을 거쳐야 짙은 갈색의 코코아 분말을 얻을 수 있으며, 이 분말과 코코아 버터 그리고 설탕과 우유 등이 첨가되는 과정을 거쳐 달콤한 초콜릿으로 탄생하게 된다.


밀크 초콜릿은 우유를 첨가한 고체상태의 초콜릿인데 1875년에 스위스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유럽연합의 규격에 의하면, 초콜릿에는 코코아 고형분이 최소 25 % 이상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한편 다크 초콜릿의 경우 보통 코코아의 양이 70 % 이상으로 100 % 까지 있다. 화이트 초콜릿의 경우, 설탕과 우유 및 코코아 버터를 사용하지만 코코아 분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다크 초콜릿은 혈관을 보호하고, 심장 건강을 증진시키며, 암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항산화 물질인 플라보노이드, 에피카테친과 갈산(gallic acid)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다크 초콜릿은 적포도주, 녹차, 블루베리 같은 항산화제가 풍부한 다른 어떤 음식보다 플라보노이드를 더 많이 함유하고 있다. 초콜릿 지방의 3분의 2는 스테아르산과 올레산이라고 불리는 두 개의 포화 지방이지만, 다른 포화 지방과는 달리, 이 둘은 혈류에서 고지혈증과 연관된 LDL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달콤한 음식은 몸속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를 낮추고 기분을 좋게 하는 세로토닌의 분비를 늘리기 때문에 초콜릿처럼 단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게 된다. 비록 달콤한 초콜릿이 가을의 우울함을 일시적으로 완화시켜 줄 수는 있지만, 열량이 높은 식품이므로 많이 먹으면 비만해질 수 있어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이제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 아름답게 물든 단풍과 꽃을 피우고 씨를 맺어 바람에 날리고 있는 작은 풀들을 보면서, 아름다운 회귀를 준비하는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끔씩 마음속에 스며드는 쓸쓸함을 슬픈 아름다움으로 즐기며 늙어감을 성숙함으로 바꿔가는 지혜로움도 배우는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파란 하늘빛과 붉고 노란 단풍 빛으로 물든 투명한 아침 햇살을 카메라에 가득 담아 외로움을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겠다.




*이 글은 '계량과 측정" 2021년 가을호에 게재된 제 <과학 칼럼>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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