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의 가을 -1

쇠뜨기에 내린 서리

by 박용기
무주의 가을 -1, 쇠뜨기에 내린 서리


아내와 막내딸과 외손녀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서 무주로 짧은 주말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둘째 날 아침

모두가 아직 아침잠에 빠져있는 시각에

혼자 숙소를 조용히 빠져나와

서리가 하얗게 내린 시골길을 걸었습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른 아침의 청량한 행복감이

박하사탕을 먹고 들이쉬는 들숨처럼

가슴속을 전율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무주의 10월 하순은

이미 꽃들이 사라져 버린 뒤


들녘에는

한때 아름답게 꽃을 피웠을

코스모스와 들꽃들의 잔해만 가득하였습니다.


무성하던 쇠뜨기도

차가운 서리에 풀이 죽어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임을

깨닫습니다.


그래도 멀리 단풍이 들어가는 나무들이

가을은 아름다운 계절이라고

따사로운 미소를 보내옵니다.






우주의 가을 시대/ 박노해


첫 서리가 내렸다

온 대지에 숙살肅殺의 기운 가득하다

하루아침에 찬란한 잎새를 떨구고

흰 서릿발 쓴 앙상한 초목들

나는 텅 빈 아침 숲에 서서

하얀 칼날을 몸을 떨며 바라본다

싸늘한 안개 속으로 태양이 떠오를 때

사과 밭으로 올라가는 나는

지금 두 다리 밑에 지구를 깔고

우주를 산책하고 있다

우주의 절기에서 가장 혁신적인 변화는

여름의 불火에서 가을 금金으로의 변화

언덕 위의 사과나무들은

언 서릿발에 뒹구는 낙과들 위로

살아남은 것들만 붉게 울고 있다

가을은 익어가는 계절만이 아니다

갈라내고 솎아내는 엄정한 계절이다

아 가을이 온다

우주의 가을이 온다

쭉정이와 알갱이를 가려내는,

참과 거짓을 한순간에 심판하는

우주의 가을 시대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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