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 정원의 꽃들
오랜만에 그 집 정원에 잠시 들렀습니다.
포토에세이집도 줄 겸
가을 정원에 들렀습니다.
입구에 서 있는 루꼴라가
십자화 꽃을 피우고 저를 반겼습니다.
정원은 벌써 늦가을 느낌이 들면서
많은 꽃들이 시들고
화사하던 봄이나
풍성하던 여름 정원에 비해
초라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막 비가 그쳐 빗방울 놀이를 하고 있는
귀여운 핫립세이지 꽃이 아름다웠습니다.
기다란 키의 버들마편초 잎에는
비를 피해 쉬고 있는
배추흰나비도 있었습니다.
한동안 꽃이 없는
추운 겨울 정원으로 남아있겠지요.
하지만
겨울 동안 쉼을 얻은 생명들은
내년 봄이 되면 다시
아름다운 생명의 잔치를 펼칠 것입니다.
집 앞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걸었습니다.
길가에는 아직도 꽃들이 피고
길가의 또 다른 작은 화단에도
꽃들이 피어있었습니다.
낮은 산을 배경으로 피어난 산국이 있어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비가 와서 흐린 날씨라
산 배경의 산국 사진이
독특한 느낌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다르게 보이는 것은
꽃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좋은 배경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모양입니다.
가을날
조용히 정원을 둘러보면서
작은 꽃과 나비를
사진에 담을 수 있는 시간은
시가 되는 순간입니다.
가을 날, 낙엽 지는 정원에서 / 유인숙
가을 날,
낙엽 지는 정원에서
맛을 나누고
멋을 나누는 일은
한편의 시를 쓰는 것보다 이름다운 일이다
내 좋은 사람들과 마주 앉아
삶의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바스락거리며 떨어지는 낙엽을 노래하다
나뭇잎 사이 반짝이는
햇살을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유리 탁자 위로 덮인
하얀 식탁보가 돋보이던 날
하늘빛조차 눈이 부시도록 푸르러
햇살은 물끄러미 온화한 미소 흩뿌리고
한 줌 삶의 여유마저 아낌없이 쏟아붓는다
증류되어 진한 원두커피에
하얀 생크림이 녹아지듯
그렇게 내 하루가 녹아지고
그 향기에 녹아지고
서두르지 않아도 밤은 고요히 찾아들겠지
이야기 소리를 따라 찾아 왔는지
맛깔스런 냄새를 따라
찾아 왔는지 모를
이름없는 강아지 밟아 대던 낙엽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서 바스락거린다
가을 날,
낙엽 지는 정원에서
맛을 나누고
멋을 나누는 일은
한편의 시를 쓰는 것보다 이름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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