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의 소중한 순간-6

배초향과 박각시나방

by 박용기
가을날의 소중한 순간-6, 배초향과 박각시나방


아내와 외손녀를 데리고
계룡산 갑사까지 드라이브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날은 발이 좀 아파
아내와 외손녀가
주차장에서 갑사까지 이어지는
오리숲길을 조금 걸으러 간 사이


나는 주차장 입구에 머물면서
배초향이 피어있는 풀숲 가에서
열심히 꿀을 먹고 있는
박각시나방을 카메라로 잡는 놀이를 했습니다.

요 녀석
어찌나 바지런한지
웬만해서는 그 빠른 몸놀림을 따라갈 수가 없어
번번이 허탕을 쳤습니다.

그래서 작전을 바꿔
나도 마음에 드는 구도의 배초향 한 송이를 정해놓고
그 꽃에 찾아오는 아이만 노리기로 했습니다.

삼각대도 없고
주변이 그리 밝지 않아
감도를 ISO 400으로 올려도
셔터스피드는 1/400 초 밖에 안 나왔습니다.

이 상황에서 요 녀석을 잘 잡으려면
최대한 나의 움직임이 적어야만 합니다.

70- 200 mm의 무거운 렌즈 달린 카메라를 들고
뷰파인더 안을 들여다보면서
낚시를 하듯 기다리는 일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한참을 기다리니
요 녀석이 입질을 하네요.
숨도 멈추고
무겁던 카메라의 무게를 잊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내 영혼도 맑고 한없이 가벼워지는 순간입니다.



10월의 시 / 류시화


그리고는 가을 나비가 날아왔다
아, 그렇게도 빨리

기억하는가
시월의 짧은 눈짓을

서리들이 점령한 이곳은
이제 더 이상 태양의 영토가 아니다
곤충들은 딱딱한 집을 짓고
흙 가까이
나는 몸을 굽힌다

내 혼은 더욱 가벼워져서
몸을 거의 누르지도 않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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