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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쩜반살롱 Sep 19. 2024

어머니,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오래전 헤어진 시어머니에게 드리는 말씀

아득하게 오래된 일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 자체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시니어세대의 문턱에 들어서는 입장에서, 천둥벌거숭이 20대에 결혼이라는 걸 했다가 가족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일찍이 이혼을 하고 아이들과도 오랜 세월 헤어져 지낸 아픔을 새삼스럽게 들추어내는 것은 뭔가를 고쳐보려는 시도도 아니고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고 탓을 하려는 의도도 아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이제 와 돌이켜 되새김질하는 것이 현재 단절된 상황에 아무런 개선의 길을 열어주지는 않을 테지만 적어도, 불행했던 시절을 그대로 떠올리며 당시의 감정에 젖어드는 어리석음은 피할 수 있게 되었기에 이제는 말문을 열어본다. 

결혼 십 년 만에 이혼을 하고 도망치듯이 내 몸만 빠져나온 데에는 당시의 허약하기만 했던 나의 멘털로서는 앞뒤좌우를 살펴볼 여력이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당시의 나를 딸로 둔 친정어머니가 과연 나 자신이었다면?

나라면 그런 딸에게 어떤 조언 혹은 위로를 했을까?

아주 최근 들어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상상해 봤더니 만만치 않다. 개념도 없고 물정도 모르는 철부지 딸을 둔 부모님과 나 같은 동생을 둔 언니, 오빠들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다. 

옛 시절의 나를 기억하며 혀를 끌끌 차는 지금의 나는 좀 덜 미숙해졌다는 얘기인지는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결혼 자체가 질곡이 될 수는 없다. 그런데 여러 정황은 며느리를 맞아들인 그때 그 시어머니의 심사를 뼛속부터 뒤틀리게 했었던 것 같다. 어느 누가 태어날 때부터 강퍅한 성미를 타고나겠는가.

시어머니가 살아온 배경으로부터 추정해 볼 때 세상이 자기편으로 느껴진 적이 좀처럼 없었으며 따라서 원망과 울화에 절여진 상태였던 것으로 간주된다. 시어머니의 친정어머니는 무슨 능력자이셨는지 몰라도 전하는 말씀에 의하면, 큰 요정 같은 식당을 운영한 여장부였다고 하고 시어머니의 유일한 혈육은 손위 이모님이 있었는데 앙상한 동생과는 달리 매우 투실투실한 유한마담 스타일이었다. 시어머니는 친정어머니로부터 받을 자기 몫의 유산이 그 이모님이 관리 중이라 언젠가는 목돈을 돌려받을 희망에 눈치를 살피며 그 곁을 늘 맴돌았다.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만 마셨을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시어머니는 늘 가난으로 몸과 맘이 시렸다.

나의 친정으로부터 경제적인 원조를 구해오기를 드러내놓고 요구하는 시어머니나 팔을 걷어붙이고 생활전선에서 뭣이라도 해 볼 재간도 없는 지질한 며느리였던 나의 모습이나 도긴개긴 아닌가. 살림에 돈이 말라 늘 허덕였고 시어머니는 불만과 신세한탄에, 사흘이 멀다 하고 분노가 폭발하며 욕설의 화염을 방사하는 것이었다. 보통의 '가장'이라 할 이 집 남편은 뭐 하고? 이렇게 의문을 가질 만하다. 하나 시어머니의 아들은 여기서 논하고 싶지 않다. 그를 거론하는 순간 논지를 벗어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취지는 어려움 속에 살던 한 사람의 태도와 그 파장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다. 

어려움은 어디에나 어느 때나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누군가를 탓하는 것, 화를 내고 분풀이 대상으로 삼는 것은 매우 부당하며 서로 간의 불행을 초래한다. 학교폭력의 상처와 다르지 않은 아픔을 남긴다. 고질라와도 같이 입으로부터 화염을 쏟아내면 그 막말과 욕설은 듣는 이의 마음에 화상을 입히고 자극을 받은 감정은 미세한 화학물질로 변하여 몸에 엉긴다. 그것이 쌓여서 세월이 흐른 후, 물혹 또는 종양이 되는 것이다. 대개 여성들이 중년을 넘기면서 부인과 질환으로 수술대에 오르기도 한다. 나 또한 의사로부터 양성종양 진단을 받았고 수술을 제안받았다. 몇 년 전의 일이고 지금도 아랫배에 불룩하게 드러날 정도로 그 덩어리가 작지 않다. 하지만 뱃살이라고 그저 넘길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 있고 악성은 아니니 갖고 살아도 별 탈은 없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도 있어 굳이 수술을 할 것 없이 자연섭생과 운동, 마사지 등으로 조금씩 줄여가고 있다. 그렇다고 이 종양의 원인제공자를 옛 시어머니로 지목하는 것은 아니다.    

'분노조절장애'라는 이름으로 당시의 시어머니를 객관화할 수 있었다면 나의 상황대응력은 좀 달랐을 수도 있었을까. 20대 후반에서 고작 서른 초반에 세상 처음 겪는 '갈굼'앞에 상담센터도 찾아보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표현할 길을 찾지 못하고 사실묘사조차도 어려워 실질적인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냉가슴만 앓았었다. 마음의 병은 이혼 후 나에게 자폐증 또는 실어증에 가까운 증상도 치르게 했다.  

사람이 짓는 죄 중에 입으로 짓는 죄가 막중하다고 한다. 언어폭력이 물리적인 폭력 이상으로 잔인할 수 있다는 걸 피해자인 나도 몰랐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욕설을 할 만한 죄는 없다. 내가 당신에게 무슨 잘못을 했더라도 나에게 그런 욕을 해서는 안되었다.  

 "어머니,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이렇게 대꾸해 볼 정신도 없었는지. 

이 말은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우리말이 서툰 외국인 여주인공이 한 대사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에서 착안했다.  

시어머니 당신에게 내가 '나쁜' 이유로 치자면 수백 가지일 것이다. 그 마음에 들지 않은 걸로 따지자면 나 조차도 한숨이 나올 정도로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함부로 하는 말은 사람을 죽이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속으로 멍들게 한다.

지금에 와서 따지는 혼잣말.

"어머니,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시어머니의 욕설사전>은 이렇게 봉인하기로 한다.

내 아이들을 키워낸 수고에 감사하는 뜻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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