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눈의 이방인

by 마리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TV 프로그램이나 외국인이 출연하는 방송이 전파를 타고 흐른다. 다들 유창한 한국 말을 구사하며 자신을 한껏 드러내 놓는다.

나는 평생 살면서 외국인과 접촉할 일은 없었다. 일 때문에 만나는 일도 없고 외국여행을 나가지도 않는다.

외국인과 이야기를 나눈 일은 딱 세 번 있다.

한 번은 군대 시절 지금은 잘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일명 T.S(team spirit) 훈련이라고 불리던 한미 연합 훈련 때 우연히 미국에서 날아온 젊은 병사들과 짧게 인사를 나누고 서로가 가지고 있던 간단한 간식을 나누어먹었던 때가 있었다. 음식은 만국 공용어라는 사실을 그때 배웠다. 먹을거리 앞에서는 모두 한 인류가 된다.

두 번째는 그래도 국제화 시대인데 하면서 영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원어민 강의를 들었다.

젊은 캐나다 선생님이었다. 서너 달 공부하면서 마주친 내가 가장 길게 만난 외국인이다.

그리고 이 년 전쯤 5월의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몰몬교 선교사들이 나에게 말을 걸었고 같은 방향으로 한 삼십 분 정도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눈 게 나의 외국인 접촉의 전부였다.

그때 그들과 짧은 시간 동안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많이 아쉬웠던 순간이었다.


5월의 태양이 때 이르게 따갑게 내리쬐고 불어오는 늦은 봄의 바람도 태양의 열기를 식히기는 역부족이었다.

때 이른 더위 탓에 가만히 서 있어도 등줄기에서 땀이 흐른다. 아직 오전 시간인데 오늘 하루 어떻게 보내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몸을 더 덥게 만든다. 그나마 버스의 시원한 에어컨 속에 있다가 후근 한 거리를 걸어가니 그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간절히 생각이 난다.

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 섰다. 그늘막 아래로 얼른 들어가 보지만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를 막아 주지 못한다. 길을 건너려는 사람들의 얼굴이 때 이른 더위에 잔뜩 찡그려져 있다.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아무 생각 없이 서 있었다.

바로 그때, 내 머리 뒤에서 "어디 가세요" 하는 발음이 약간 이상한 말소리가 들린다.

대구에는 특별히 아는 사람도 없는데 날 부르는 소리는 아니겠지 하며 무시하고 맞은편 신호가 초록색으로 언제 바꾸나 뚫어지게 앞을 보고 있었다.

바로 가까이에서 다시 "안녕하세요"라는 묘한 발음이 들린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검은색 바지에 흰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단정하게 맨 푸른 눈의 외국인 두 사람이 서 있었다. 가슴에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까만 명찰이 달려 있다.

미국인 선교사였다. 그것도 몰몬교 선교사가 나를 쳐다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주 어린 선교사 두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길을 건너려고 서 있는 많은 사람 중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이면 나에게 말을 건다. 역시 내가 다른 사람보다 만만하게 보이더니 외국인의 눈에도 만만해 보이는 모양이다.

나보고 하는 이야기냐며 손기락으로 내 가슴을 가리킨다.

앳되어 보이는 얼굴의 선교사 하나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얼굴을 아래 위로 끄덕인다.

잘 됐다 싶었다!

가는 길에 심심하지는 않겠다. 나도 그들에게 '안녕하세요'라고 답을 한다. 뭐 대충 선교사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들도 종교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았다.

몰몬교 선교사를 오래전에 본 적이 있다는 말에 그들이 흥미를 느낀다. 어리고 순수한 그들의 표정과 호수 같이 푸른 눈동자가 내 이야기에 호기심을 가진다. 잠시 그들과 가로수 밑을 함께 걸었다.


나는 아주아주 시간으로 되돌아 간다. 골목에는 아이들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고 집과 집 사이에 골목에는 나무로 짠 평상에 여자 아이들이 올라앉아 소꿉놀이를 하고 있다.

동네 형들은 집과 집 사이를 마주 보는 차 두대가 겨우 교차해서 지나 길 정도의 폭을 가진 골목에서 공 던지기 놀이를 하고 있다. 나는 또래의 아이들과 평상 옆에 쪼그리고 앉아 비닐봉지에 가득히 구슬을 넣고 철렁철렁 거리며 구슬치기에 혼을 쏙 빼고 있다. 그때

'야 저거 봐라!'

누군가의 커다란 소리에 머리는 들어 쳐다본다. 역시 흰 와이셔츠에 검은 정장 바지 옷차림이다. 옛날 어른들이 이야기하던 서양 도깨비 세 명이 우리를 향해 걸어온다. 평상의 여자 아이들이 얼른 자리를 떠나 골목으로 숨는다.

날이 더운지 그들은 평상에 걸터앉아 잠시 흐르는 땀을 닦는다. 키가 큰 노란 머리의 젊은 여자가 조그만 한 종이를 들고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서 있는 우리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환하게 웃으며,

"이게 읽어 볼래요?" 서툰 한국말이 이상하게 들린다. 그 바람에 모두 키득키득 웃고 그 젊은 여자 선교사도 함께 미소 짓는다. 함께 있던 남자 선교사 두 명도 미소 짓는다.

웃음은 명약이다. 두려움은 사라지고 그들이 준 유인물을 본다.

난 생 처음 서양인은 처음 본다. 흑백 tv에 나오던 그들의 모습과 실제 모습은 전혀 느낌이 달랐다.

노란 머리에 파란 눈이 마치 고양이 눈 같다. 도망가는 아이들도 있지만 호기심이 강한 아이들은 그들을 가까이서 보고 싶어 했다.

어설픈 한국말에 우리는 웃음이 났다. 평상 주위로 아이들이 하나 둘 모이고 그들도 가방에 있던 사탕을 꺼낸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달콤한 과자나 사탕이 분명하다) 아이들은 호기심에 하나 둘 가까이 다가가고 그들도 그 서늘한 평상에서 잠시 다리를 쉬어 간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근처에 있는 교회로 오라는 이야기였다. 아이들은 그들의 피부와 머리 색깔 그리고 눈 색깔이 신기했다. 그들은 그 뒤로 가끔 우리가 노는 골목에 찾아왔다. 몇 번 보니 그들이 이상하다는 생각은 없어졌다. 그저 그 또래 동네 아는 형이었다. 그 시절에는 성당에서 외국인 신부님과 수녀님을 종종 볼 수 있었지만 대부분 나이가 많거나 뚱뚱한 분들이었다. 젊은 서양인을 보기는 쉽지 않았다.

가끔 놀러 오던 그들이 어느 날인가부터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의, 나의 기억 속에서도 사라졌다.

내가 어릴 때 선교사들과 만남을 이야기하자 신기한 듯 내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그들이 언제 때 이야기냐고 묻는다. 1970년 대 초의 이야기라고 말하자 그들은 놀란다. 옆에 있던 또 다른 선교사가 서툰 한국말로 말한다.

"저희 어머니가 71년 생입니다."나는 그래 하며 맞장구를 쳐주었고 그들은 자기 엄마가 태어난 때쯤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다. 그들과 짧은 30분 동안 역사이야기와 문화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특히 음식 이야기에 관심이 아주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왕성한 식욕을 가진 이십 대 초반의 젊은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동안 갈림길에 보였다. 나는 오른쪽으로 간다고 이야기하고 그들은 곧바로 간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의 표정에서 아쉬움이 묻어 난다. 주저 거리던 한 사람이 자신들의 명함을 드려도 되냐고 정중히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들은 꼭 한 번 더 봤으면 좋겠다는 말을 어렵게 꺼내었다. 명함을 건네받고 나에게 전화번호를 물었다.

나는 그들에게 여기까지만 하자고 말했다. 나는 이미 종교가 있고 그들은 선교를 해야 한다. 괜히 성과 없는 일에 그들의 시간을 뺏을 필요는 없었다. 아쉬움 표정이 역력했고 나는 그들에게 악수를 청했다.

언제 배웠는지 우리가 악수하는 방식대로 두 손을 모아 내 손을 잡았다.

그들과 짧은 시간의 대화는 늙은 고목나무에 꽃이 피듯 나에게 생기를 불러 넣어 주었다. 그들이 가진 호기심도 신기한 일이고 젊은 사람들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마음이 비록 우리와 다른 모습이지만 감동적이었다.

마지막 헤어지며 그들에게

"신의 은총이 함께 하길 빌어요!"

라는 말에 그들도 나에게

"은총이 함께 하시길...."

하며 인사를 꾸벅한다.

아쉬워하는 그들은 잠시 서서 내가 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다시 힘차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들이 잠깐 동안이지만 그들은 듣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고 재미있어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전도를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겠지만 뭐 그들의 종교에 관심이 없는 내가 애들을 데리고 놀 수도 없었다. 어린 자식 뻘 같은 순수한 아이들을 데리고 장난 삼아 거짓으로 종교에 관심을 가지는 척 하기에는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혹시 해서 다시 뒤를 돌아봤다. 아직도 그 두 선교사는 나를 바라본다. 나는 웃음 가득 띤 얼굴로 그들을 향해 힘차게 손을 흔든다. 기다렸다는 듯 그들도 또 한 번 크게 손을 흔든다.

파란 하늘 같은 맑고 푸른 눈이 언제까지나 푸르름을 간직하길 두 손 꽉 모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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