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 앞

by 마리아

'그 집 앞'

가곡 그 집 앞이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가사에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 오히려 눈에 띌까'라는 가사가 있다. 어린 시절, 아니 사춘기가 지나고 있는 불타는 정열의 시기인 고등학교 시절 대학 입시라는 괴물 앞에 우리의 청춘은 제물로 바쳐진다.

그리고 아름답고 어여쁜 여학생 앞에 온통 마음이 빼앗겨 속앓이 했던 그 시절에 나의 가슴에 아주 와 닫던 노래 가사였다.

가사말처럼 그 집 앞을 지날 때면 가슴이 설레고 혹시라도 들킬까 얼른 그 자리를 떠났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첫 짝사랑의 속앓이를 해보지 않았을까

거의 40년도 넘어가는 세월이지만 아직도 그 동네에 살고 있는 어머니를 찾아 뵐 때면 전에 살던 집 근처를 가보는 버릇이 생겼다. 나도 나이를 먹는 것일까.

예전 주택들이 드문드문 그 골목을 지키고 있다. 그곳에 들어 서면 가슴 한 끝에서 찡하게 울리는 울림이 자리 잡고 있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본다. 작은 안경점이 그때 그 모습으로 아직도 자리 잡고 있다. 창가에 붙어 있는 "학생 안경 할인"이라는 빛바랜 간판은 세월의 무상함을 말없이 알려 주고 있다.

머리가 하얀 어른 한 분이 앉아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다.

주인아저씨!

그 시절 한창 젊었던 주인아저씨 대신 초로의 노인이 앉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저씨도 많이 늙으셨다.

아주 아주 낡고 유행이 지난 안경들이 진열장을 채우고 있다.

안경점 옆 가게는 식당으로 바뀌었다. 그곳은 펜시 문구점이 있던 곳이었다. 여학생과 남학생이 뒤섞여 물건을 고르던 곳은 이제 동태찌개 집으로 바뀌었다.

그저 무심히 옛 생각 기억 속에 잠겨 있는데 할 리 없이 홀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손님인가 싶어 엉거 주춤 일어선다. 자리를 피한다. 먹지도 않는데 앞을 서성거리니 다들 불경기에 손님 하나가 아쉽다.

전봇대 옆에 잠시 섰다.

저절로 웃음이 난다. 시계는 벌써 4여여 년 전 고등학교 교실로 나를 데리고 간다.


못 쓰는 글재주였지만 학창 시절 친구의 부탁으로 연애편지를 써 주고 라면이나 빵을 얻어먹는 일이 있었다.

내가 글을 잘 써서도 아니고 이성에 대해 잘 나는 것도 아니었지만 낑낑 거리며 마음속에 풍랑을 일으킨 소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해 주고 싶어 내 마음을 그대로 써 주었다. 그러니 반응이 좋을 수밖에.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는 시나 미사여구는 다 동원했다. 국어 점수는 늘 상위에 있었고 시도 몇 개 외우고 있는 덕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얄개 시절!

짓궂게도 우리는 친구가 쓰고 있는 종이를 빼앗아 읽고 낄낄거렸다. 아무리 막역한 사이라도 자신의 깊은 내면을 들켰으니 얼굴 표정은 일그러졌다. 어릴 적 꼬치 친구니 화내기도 뭐하니 난감한 표정이다.

장난은 잠시뿐이다. 우리는 나이 또래에 앓고 있는 홍역처럼 다가오는 병을 함께 앓고 있는 공법이었다.

다들 성장통을 앓고 있으니 장난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친구의 글을 거들어 줄 겸 몇 자를 고쳐 준다. 편지를 쓰고 있던 친구가 갑자기 작은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다른 친구들도 읽고 좋아한다.

뭐 거창한 미사여구를 넣은 게 아니었다. 그저 마음을 솔직하게 썼다.

친구의 상사병은 나의 병이기도 했다. 나는 용기가 없어 여학생을 사귈 엄두를 못 냈고 쓰지 친구는 용기를 내고 있었다.

친구가 좋아하는 여학생이 누군가 했더니 나도 아는 여학생이었다. 같은 동네에 사니 나도 그 친구도 늘 마주치는 여학생이었다.

길 한가운데서 편지를 줘야 하는 모험이었다. 읽을지 읽지 않을지 모르지만 나는 친구에게 그저 마음을 전하라고 말해 주었다.

늘 같은 시간에 등교하면서 마주치는 여학생에게 편지나 쪽지를 전해 주는 일은 쉽지 않다.

집을 나서면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한다. 그저 학교 앞 분식집 라면 한 그릇에 혹해서 사랑의 큐피드가 되어버린 내가 한심스럽다. 그렇지만 내가 사귈 것도 아니고 벙어리 냉가슴 앓는 것은 친구지 내가 아니다.

한 5분 정도 걸었을까 저기서 가방을 손에 들고 단발머리를 한 소녀가 걸어오고 있다. 나를 향해 걸어오는데 오늘따라 내 가슴이 꽁당꽁당 요동을 치고 있다. 개학하고 두 달이 지났다. 검은 교복 안에 얇은 면티 하나를 입었지만 두꺼운 검은 교복은 아침 햇살에 몸을 덮이고 있다. 거기에 가슴에서 일어나는 열기에 몸은 후끈해지고 등에서 땀이 줄줄 흐르고 있다.

매일 같은 시간 보는 여학생은 나와 자연스럽게 눈에 마주친다. 그녀의 입가는 보일 듯 말 듯 미소가 서려 있다.

검은 교복에 흰 칼라가 돋보인다. 하얀 얼굴에 쌍꺼풀이 져 있는 커다란 눈에 흑진주 박아 놓은 듯 한 까만 눈동자가 아침 햇살에 영롱하게 반짝인다. 매일 아무 생각 없이 스쳐지나 쳤지만 오늘따라 그 여학생이 내 눈에도 예쁘게 보인다. 괜히 샘이 난다. 아깝다는 생각이 주전자 물 끓어오르듯 한다.

머릿속에 딴생각을 하느라고 스치듯 지나쳐 버린다. 쪽지를 전해 주려는 타이밍을 놓쳤다. 그리고 곧바로 옆에 있던 문이 열리더니 같은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쪼르르 문 밖으로 튀어나온다. 둘은 너무 반갑게 인사를 하고 다정하게 걷는다.

'제길!'

속으로 튀어나오는 욕을 삼키고 나는 학교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쪽지를 건네주지 못했다고 하면 길길이 날뛸게 뻔한데 이 일을 어쩌지 내가 편지를 써 주고 내가 친구에 에게 욕먹게 생겼다.

친구는 그녀를 어디서 봤을까 그리고 어떻게 내가 등교 길에 마주치는 것을 알았을까

의문은 곧바로 해결되었다. 모퉁이를 돌아서자마자 그 친구가 나를 기다리고 서 있다. 얼굴은 나에게 답을 얻으려는 듯 작은 눈을 부릅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손을 가로저었다. 그 친구는 왜 하는 얼굴 표정을 나에게 던지고 있었다. 그 순간의 상황을 설명하고 내일 꼭 주기로 했다. 그 친구는 구구절절이 그 여학생에 대해 그리고 여자에 대한 환상을 이야기한다.

나는 누나 여동생 남동생이 하나씩 있었지만 친구네 집은 어머니를 제외하고 아버지 형 밑으로 남동생 둘이 있는 그야말로 남자들만 득실거리는 집이라 여자에 대한 묘한 환상에 사로 잡혀 있다. 심지어 방귀도 뀌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찬 한심한 녀석이다. 그저 흰 백합꽃 한 송이 바라보는 착각에 빠져있는 그런 친구였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성당을 다니던 나를 따라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함께 독서실이나 도서관을 갔다가 먼발치에서 그녀를 본 모양이다. 그리고 등교 길에 마주친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혹시 학생 지도부 선생님에게 들킬지 몰라 우리는 그 쪽지를 가방 제일 밑바닥 깔창에 숨겼다.

여학생을 사귀다 걸리면 정학 처분을 받았다. 정학 처분은 정말 끔찍했다. 학교를 등교해도 수업에는 들어갈 수 없다. 학교에서 별도를 마련 해 놓은 공간에서 자습을 한다. 친구들이 찾아가지 않으면 친구들의 얼굴도 볼 수 없다. 또 한 가지 끔찍한 일은 그때까지 우리 학교는 머리를 빡빡 밀지 않는다. 스포츠 형 머리 스타일로 앞 머리가 약간 길 수 있는 모습이었다. 어차피 짧은 머리에 앞머리가 조금 긴 정도이지만 그 차이도 사춘기 시절의 소년들은 큰 멋이었다. 그런데 그 머리를 아주 스님들의 맹숭맹숭한 머리로 만들고 벌을 받고 반성문을 써야 하는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모범생에 우등생 친구는 혹시 모를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그 여학생과 한 번이라도 만나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음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청춘을 끓어오르는 열정이 학교 교칙으로 막을 수 있을까 인간 내면에 가진 순순한 사랑과 열정을 학교의 교칙이 막는다는 것은 잘못이다.

나와 친구는 다음 날 아침 등교 시간에 용기를 내어 다시 시도하기로 의기 두합 했다.

막상 그 여학생과 친구를 연결해주는 일을 하는데 내 마음 한 곳이 왠지 텅 비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여학생과 나는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어린 시절부터 봐 왔던 사이었다. 소위 이웃사촌이었다. 그녀와 나는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지만 한 번도 같은 반에 되어 본 일이 없다. 참 재미있는 일이다.

늘 주변을 맴돌고 잇던 사이지만 말을 해본 일도 없다. 종교가 같아 초등학교 시절 어린이 미사에 나가면 흰 미사포를 쓰고 자리에 얌전히 앉아 희고 도톰한 작은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어린 생각에도 그렇게 기도하는 그 여학생의 모습에서 범접하지 못할 어떤 느낌이 강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애써 그 여학생을 피했는지도 모른다. 놀기 바쁘고 성당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억지로 갔던 장난꾸러기와 그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주일 학교라도 갔으면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었지만 미사를 마치고 하는 주일 학교에는 가지 않았다.

어리지만 일주일에 6일을 다니는 학교도 싫었는데 성당에서까지 학교라는 사실에 나는 반항했다. 부모님은 미사 참례만 하는 것도 기특하다고 생각하셨다.

중학생이 되고부터 남학생과 여학생이 다른 학교를 다녔다. 어머니와 그 여학생의 어머니는 같은 성당을 다녀서 그런지 그렇지 않으면 두 분의 나이가 비슷해서인지 아니면 같은 이북 출신이라서 그러신 지 이유야 어찌 되었던 친하게 지내셨다. 가끔 어머니의 음식이 그 집으로 가고 그 집 어머니의 음식이 우리 집으로 오고 하는 사이었다.

그 집으로 가는 음식의 심부름은 당연히 내가 한다. 동생들을 시키지는 않으셨다. 심부름은 오로지 내 몫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손발이나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이야 멋 모르고 어머니의 심부름을 했지만 점점 머리가 커가면서 심부름하는 일이 창피했다. 남자 녀석이 음식 접시를 들고 가는 것도 우스꽝 스러웠고 혹시라도 친구들이 보면 놀릴 것 같아 주변을 살피기도 했다. 그 집을 어머니가 부를 때 남정이네라고 한다. 그 집의 제일 큰 누나 이름이 남정이었다.

우리보다 두 학년이 높은 누나였다. 그 집도 우리 집처럼 삼 남매였다. 그 여학생 바로 밑에 동생이 나의 영원한 졸병, 남동생과 같은 또래였다.

음식 접시를 보자기에 싸고 양손으로 바치고 걸어간다. 문을 열고 나서는 그 순간부터 주변을 살피기 시작한다. 혹시 친구들이 나를 보고 놀릴까 마음을 졸이며 그 집으로 향한다. 보통은 남정이 누나가 문을 열어 준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집에 전화를 한다. 그러니 내가 뭘 가져왔는지 알고 계신다. 대문 오른편에 달린 조그마한 버튼을 누른다.

'딩동 띵동'

소리가 들리고 찰깍하는 자물쇠 풀리는 소리가 들린다. 문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는 신호지만 들어가기 싫어 문 밖에 망부석처럼 서 있다. 내가 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두 손으로 접시를 들고 엉거주춤하게 서서 대문만 쳐다보는 모습이 그려진다. 꼴이 말하지 않아도 우습다.

대개는 남정이 누나가 나와서 접시를 받아 준다. 그리고 늘 하는 말

"들어와 혜정이도 집에 있다. 놀다 가렴"
그러고는 한 손에 접시를 들고 한 손은 손짓으로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지만 꾸벅 인사하고 '씽' 하고 달아난다.

혜정이는 그 여학생의 이름이다.

나와 그녀는 가까운 듯 멀고 먼 듯 가까운 그런 사이었다.

그렇게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지내던 여학생을 송두리째 나의 죽마고우이며 고추 친구에게 넘겨줘야 하니 어쩐지 아깝다는 생각, 아쉽다는 생각이지만 엎질러진 물이고 내성적이고 겁 많은 놈이 여학생을 어떻게 사귀겠나 하는 마음에 그녀에게 내가 썼지만 친구의 편지를 전달하는 큐피드 신세가 되었다.

매일 보는 그녀와 다시 마주친다. 엷은 미소를 짓는 그녀 앞에 순간 멈추었다. 땡그란 눈이 나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본다.

손에 쥔 편지를 그녀에게 내밀고 그대로 달아난다. 그녀는 멍하니 나를 보고 나는 가방을 옆에 끼고 쏜살 같이 달아난다. 그 순간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던 친구 녀석이 나의 멱살을 잡고 낚아챈다.

"줬다. 야~이 새끼야 그다음은 네가 알아서 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다시 교복을 고쳐 입고 학교로 갔다. 잠시 뒤 친구가 팔로 내 목을 감싼다. 고맙다는 표시다.

물론 편지에는 일요일에 동네 초등학교 교문 앞에서 보자는 내용이 있었다.

빵집이니 분식집에서 바로 만나는 것은 친구 말로는 모양새가 좋지 않다나 어쨌다나 아무튼 나는 친구를 위해 뭔가를 했다는 뿌듯함이 가슴에 큰 파도로 부딪혀 부서졌다.

일요일!

불쌍한 고등학생들은 일요일도 학교에 간다. 공부를 하건 하지 않건 학교를 가면 시간이 잘 간다.

성당에 다니니 주일 미사를 빠지면 안 된다. 토요일에 중고등학생을 위한 미사가 있지만 아침잠이 적은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일요일 새벽 미사를 나간다. 새벽 공기의 상쾌함은 머리와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청량제와 같다. 그 기분을 느끼기 위해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새벽 미사를 나갔다. 어머니도 장남을 데리고 미사에 나가시는 게 은근히 기분이 좋으셨다.

아니 어떻게 된 일이야

으으으악!

그녀가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성당 안에 앉아 있다. 큰일 났다. 새벽 미사에 얼굴도 보이지 않던 그녀가 뭔 일이지 나에게 따지로 왔나 하~아 이 일을 어쩌지 어머니나 그녀의 어머니가 아시면 난 죽은 목숨이다.

어머니는 그녀의 어머니가 앉아 있는 자리에 가서 앉으신다. 나는 떨어져 앉았다. 성전 앞에 성모님도 십자가의 예수님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떻게 미사가 끝나는지 모르게 끝났다.

어머니와 그녀의 어머니가 다정하게 신부님께 인사하고 나도 신부님께 인사하고 집으로 걸었다.

누군가 뒤에서 나를 잡아당긴다. 느낌이 온다. 그녀가 분명하다. 그 찰나의 순간 '어떻게 이야기하지'라며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빨리 감아 돌리는 필름처럼 흘러갔다.

두 분은 벌써 저만치 멀리 가고 있고 나와 그녀는 얼굴을 마주 보고 서 있다.

편지를 내민다. 갑자기 친구 녀석을 죽도록 패주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이게 네가 썼지! 그리고 그 친구가 나와 사귀어 보고 싶다니?"
나는 계면쩍게 웃으며

"음 쓰기는 내가 썼는데 그 친구 공부도 잘하고 꽤 괜찮아 가끔 빵 사달라고 하면 꽤 쓸만할 거야!"
그녀 앞에 비열하게 웃었다.

그녀는 나에게 묻는다.

"내가 얘랑 만나는 게 좋아? 네가 어쩔 수 없이 친구의 의리 때문에 써 줬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찢을 게.

난 네가 만나지 마라고 말하면 안 만나!"
'에~엥!'

이게 무슨 소린가!

순간 나쁜 머리가 엄청난 속도를 내는 컴퓨터로 바뀐다. 사실 그녀와 나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 늘 집 앞을 지나치며 그녀의 피아노 소리도 듣고 창가에서 떠드는 소리도 듣고 창문에 서서 골목을 쳐다볼 때 지나가는 나와 마주치는 일을 일상이었던 그녀였다.

그 친구 그저 공부 좀 잘한다고 당당하지만 편지도 한 쓸 줄 모르는 놈이다.

결정은 한순간에 이루어졌다.

"그래 사실 그 녀석이 하도 조르길래 의리 때문에 써 줬다. 그리고 그 친구 자기밖에 몰라 사귀지 마! 진심이야."

그녀는 나에게

"바보! 바보! 바보!"
그 말을 던지고 앞에 걸어가시는 우리 어머니와 그녀의 어머니에게로 달려갔다.

뭔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지만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월요일 아침 나는 다시 그녀와 마주쳤다. 늘 그렇게 스쳐 지나치듯 그녀와 나는 엷은 미소를 서로에게 보냈다.

그 친구는 얼굴이 죽상이 되어 골목에서 나를 기다렸다.

다시 편지를 써 달라고 말한다. 분식집과 빵집을 들먹거리며.

그러나 나는

"야 앞으로는 너의 이성 문제에 나는 빠진다. 네가 알아서 해!"

멍하니 서 있는 그 녀석을 뒤로하고 힘차게 학교로 향했다.

그 녀석 표정은 완전 닭 쫓던 개의 표정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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