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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Oct 15. 2021

생을 돌아보며

나도 언젠가는 죽겠지!

올 가을 추석 연휴는 개천절이 함께 있어 그런지 유난히 길다는 느낌이 든다. 

코로나라는 바이러스가 올 초부터 세계를 휩쓸고 온 나라를 꼼짝하지 못하게 만든다. 

인간은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교만한 마음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에 맥을 추지 못한다.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어간다. 

엊그제 뉴스에는 우리와 멀리 떨어진 나라의 이야기지만 코로나로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길에 그대로 방치된 모습이 TV를 통해 보였다. 

그 사람들은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하더라도 살아 움직이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하던 그런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사람 참 살았다고 못 본다. 

태어나는 그 순간 사람은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어디 사람만 그러할까!

세상 만물은 피고 지고 다시 모습을 바꾸어 태어나는 게 자연의 이치다. 어찌 보면 그 죽음도 자연의 순환이라고 말하겠지만 살아 움직였던 존재였다.

나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죽음은 모든 것을 잃는다.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지는 아픔이 제일 크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이 가장 크기 때문은 아닐까.

슬퍼한다. 그 슬픔의 괴로움 때문에 몸부림치지만 떠난 이는 말이 없다. 

그 죽음의 당사자인 나는 어떨까?

아무것도 없는 無! 

그 자체로 소멸되어 머릴까!

바람이 되어 구름처럼 떠다니다가 다른 모습으로 환생할까?

사람들에게 영혼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죽으면 그 자체로서 소멸되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두 가지 이야기 다 맞을 수도 있고 둘 다 틀릴 수도 있다. 

아직은 죽음 저 건너편에서 아직 다시 돌아온 사람은 없다. 그러니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영혼이 있다는 가정에 한 표를 던진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다. 그 유한한 존재는 무한을 향하고 싶은 욕망을 가진다. 

그 어떤 욕망보다 부질없는 생각은 무한의 시간을 쥐고 싶은 욕망이다. 

TV 화면 속에 바이러스로 고통받고 죽어 가는 사람 죽은 사람 죽음의 공포에 떠는 사람을 보면서 어쩌면 그 모습이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전화기를 들었다. 노모의 아직도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전화를 통해 들린다. 

"밥 먹었니?"

전화 목소리를 확인하시고 하시는 첫 말씀이었다. 

나는 "예"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조심하라는 당부의 말에 어머니는 오히려 내 걱정을 하신다. 

나에게 생명을 주신 어머니에게 사랑합니다 하는 낯간지런 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몸성히 계시라는 말을 전했다. 

전화를 끊고 잠시 뒤, 세상이 바이러스에 둘러싸였거나 말았거나 아내가 상기된 얼굴로 집으로 들어온다. 

"밥 해 먹자!"

아내의 말이다. 

나는 그런 아내의 손을 꼭 잡고 팔을 당겨 안았다.

하지 않던 짓에 계면쩍어하던 아내도 나를 꼭 안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사랑한다고!

지금처럼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 나는 얼마나 행복한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서 움직인다는 사실이 고맙게 생각되는 시간이다. 

시간이 지나 떠나는 그 순간 내 곁에 사랑하는 이들, 사랑했던 이들이 있었음을 감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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