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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Jan 12. 2022

사주 이야기

사주는 공평하다 2

사람이 살아온 일생을 살펴보면 그 사람의 현재와 미래를 알 수 있다. 

굳이 사주가 아니더라도 그 사람의 삶에서 미래를 볼 수 있다. 

잘 살고 못 살고를 떠나 사람의 인품과 행실이 미래를 만들어 낸다. 신이 있다면(당연히 나는 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공평하다는 생각을 한다. 

절대 인생에서 그 사람에게 전부를 주는 일은 없다. 

재물, 명예, 권력이 있는 사람이든 그것이 부족한 사람이든 그 나름의 삶이 있고 그 삶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가는 길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그 존엄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사람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으로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외모나 겉에 치장된 모습만으로 판단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성공한 사람이나 훌륭한 사람은 무엇으로 판단할까?

돈! 명예! 권력! 

돈이 많아도 인간 같지 않은 사람들을 우리는 매스컴을 통해 가끔 보게 된다. 

명예라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대중의 인지도가 있다. 그런 사람들도 충격적인 사생활이나 범죄에 연루되는 모습을 본다. 

권력! 

권력과 돈과 명예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하늘 끝까지 올랐다가 추락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이 세 가지를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의 세 가지 중에 한 가지라도 자신의 손에 쥐기 위해 모든 것을 다 걸고 앞으로 나간다. 

삶이 위에서 말한 세 가지만이 온전히 자신이 추구하고 살아야 할 목표는 아니다. 

' 돈이 돈을 벌기 시작하면 그 돈에 둘러 싸여 다른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 

명예도 권력도 다 마찬가지다. 

행복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찰나의 순간 왔다 가지만 알지 못하는 때도 많다. 

그래서 진정한 인생의 성공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고 삶의 재미를 느끼며 사는 사람이다.

마음을 통해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된다.


오늘 이야기는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다. 

아버지는 남들이 보면 크게 성공한 사람이다. 

유수의 대학을 나와 대기업 중역을 거쳐, 사업을 일으켜 자수성가를 이루어 성공한 사람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을 표준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만이 옳고 자기가 가는 길이 성공을 향한 최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독선과 아집에 빠질 수밖에 없다. 

현재의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자기의 자식에게 강요한다. 가정의 불화는 이런 독선과 아집에서 시작된다.  


어느 햇살 따스한 봄날이었다! 

마당에는 봄의 기운을 잔뜩 머금은 야생초들이 서로의 자태를 뽐내며 울긋불긋 아름다운 색을 보이며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나는 마당 앞 작은 테이블에 앉아 봄 야생화의 아름다움에 취해 봄볕을 마음껏 희롱하고 있다. 

따스한 햇빛이 자리를 깔고 앉아 있으니 눈꺼풀이 무겁다. 

새들이 소리 내어 봄을 노래를 부른다.  새들의 노랫소리에 취한다. 

나는 나무의자에 기대어 앉아 잠시 눈을 감고 자연의 숨결 속으로 빨려 든다. 

새들의 노랫소리와 야생화의 향기에 취하여 달콤한 꿈의 나라로 들어가려는 그 순간 핸드폰 소리가 꿈을 깨운다.  

마을 어르신 중에 한 분이었다. 나이 차이는 있지만 배포가 맞아 나이를 떠나 꽤 친하게 지낸다. 

가끔 농번기 때 일손이 필요하시면 전화를 한다. 나는 일을 도와주고 약간의 쌀이나 밭에서 나는 작물을 얻어먹기도 하는 이웃사촌이다.

늘 활기가 넘쳐흐르는 낙천적인 분이다. 

바븐 일도 벌써 끝났을 텐데 하며 전화를 받으니, 차 한잔 얻어 마시러 가도 되냐고 묻는다. 

오며 가며 지나다 들리시는 분인데 새삼스럽게 전화를 다한다. 

마을 분들 와서 차 한잔 하는 시간이 나는 좋다. 거의 집 밖을 나가지 않으니 마을에 일어나는 일, 읍에 일어나는 일을 그분들에게 다 듣는다. 

케모마일 차를 얻어 마시고 싶다고 한다. 

그 어른이 오시면 케모마일을 드린다. 유리잔에 노란 빛깔이 예쁘기 빛나는 차는 약간 달큼한 맛을 내는데, 

재미 삼아 봐 준 사주에 위가 나빠 드시면 좋겠다 싶어 드렸는데 먹고 배가 편한지 집으로 놀러 오시기만 하면 노란 차를 달라고 하신다. 

어서 오시라고 말한다. 

조용한 오전의 망중한은 이미 날아갔다. 두 집 건너에 있으니 한 5분 뒤면 오시겠지!

잠시 뒤에 뒷짐 쥐고 어슬렁어슬렁 걸어온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다.

도시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아줌마 두 사람과 같이 걸어오고 있다. 이제 오십 초반이나 사십 후 반쯤 되어 보일까?

마당을 지나서 온 어른과 아주머니 두 분이 테라스 앞에서 멈췄다. 나도 자리 서서 인사를 했다.

아주머니 두 분이 사로를 쳐다 보고 그 어른을 쳐다보면서 뭔가 어색한 얼굴빛을 뗬다.

"어~ 여기 선생이 그래도 나름 좀 보는 사람이야 걱정 말고 물어봐"

하고는 나를 바라보면서 

"이선생! 내 가까운 친척인데 바람 쐬러 왔다가 내친김에 한 번 들렀으니 잘 좀 부탁해"

나의 모습에 약간 실망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산촌에서 나름 사주나 주역을 공부하는 사람이면 뭔가 그들이 생각하는 모습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청바지에 면 티셔츠를 입고 선글라스를 쓰고 앉아 있는 모습이 좀 그녀들의 상상과 달라 좀 당황했던 모양이야 

요즘 텔레비전 프로에 보면서 산에 사는 사람들은 다 이렇겠거니 하고 나름 상상하던 모습이 있었던 모양이다. 

수염을 기르고 개량한복을 입고 꽁지머리 하고.

 "도사 같이 않아 실망스러우신가요?"
내가 너스레를 떨자,

한 분이 고개를 끄덕인다. 감정을 바로 드러낸다.  솔직한 사람인 듯하여 마음이 놓인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어른이 얼른 차 한잔 달라고 조른다. 

봄날의 햇볕이 좋으니 바깥에서 이야기하기로 했다. 나는 투명하고 맑은 유리잔에 노란 빛깔의 차를 네 잔 들고 왔다. 

테라스에 앉아 따스한 햇살을 친구 삼아 따끈한 차 한 모금을 마셨다. 어색함이 달아난다. 

시계를 보고 괘를 만들었다. 

괘에서 자손의 효가 발동했다. 그리고 자손의 효가 아버지에게 극을 당하는 형국이었다. 아버지의 효가 아버지일 수도 있고 공부도 될 수 있었다. 

자식이 아버지 아니면 공부에 힘들어하는 괘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 말에 동네 아저씨 옆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의 한 숨소리가 땅이 꺼지라 한다.  

땅이 꺼지라 하고 내 쉬는 숨에 나도 얼떨결에 같이 한 숨을 쉬었다. 

다른 분은 곁에 아주머니 손을 꼭 잡아 준다. 

아이가 어떤 사주인지 궁금하다고 말하며 생년월일시를 적은 종이를 내민다. 

나는 내 노트에 사주를 적었다. 

추운 음력 11월 생이었다. 태어난 날의 오행은 물이다. 나무의 기운이 강하고 물을 도우는 금의 기운이 거의 없었다. 공부와는 거리가 먼 사주였다. 

놀기를 좋아하는 사주가 분명했다. 그런 경우 대개는 예술적 소질이 있는 경우가 많다. 

사주는 참 묘한 구석이 있다.  

같은 날 같은 시를 가지고 태어나도 주변의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부모의 영향도 있고 같은 형제나 자매의 영향도 있다. 

아이의 주변에 예술가나 음식을 하는 사람 같은 사람이 있으면 지금의 아이의 모습이 많이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의 기대는 아이가 공부를 해서 아버지와 같은 상대를 나와 사업을 이어받기를 원했다.  

아버지의 성공을 이어받아 남들이 보란 듯 번듯한 모습의 아들이 되기를 바랐다. 

난 꿈깨라고 말했다. 순간 아주머니의 표정은 굳어지고 눈에는 슬픔으로 촉촉한 물기가 쓰며 나왔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듯하다.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고 아버지와 관계가 좋아지겠냐고 묻는다. 

아들과 아버지가 반목을 하니 그분은 세상 살맛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옆에 함께 온 여자분은 그녀의 동생이었다. 언니의 괴로운 심정을 나눠 가지는 심성 고운 여인이었다. 


나는 사주로 돈벌이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보이는 그대로 말해 주고 그들이 갈 길만 말해 주면 속 편하다. 사주의 모습과 물어보는 사람의 기대치가 서로 다르다를 때가 많다. 그런데 기분에 맞추어 대충 이야기해 주기에는 내 성격이 그러지 못했다. 

접점이 맞지 않으면 보려 온 사람들은 대단히 불편한 표정을 짓는다. 

사주가 맞지 않는 둥, 아니면 엉터리라는 둥 하는 소리를 하며 대충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버린다. 

물론 나는 그런 소리에 신경 쓰지는 않는다. 결국 몇 달 지나 그 사람들이 다시 나를 아는 사람들을 앞장 세워 찾아오기 때문에.

늘 느끼는 일이지만 사람은 솔직하게 말해 달라고 하면서도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니체를 말한다. 물론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받아들이고 자신의 한계를 긍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얼굴에 나타난 표정은 이미 내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아이가 하고 싶은 공부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듣는 모양이다.

절대로 아버지 때문에 안 된다고 선을 긋는다. 

나도 더 이상은 말을 하지 않았다. 엄마가 왜 그렇게 내가 하는 말에 동의할 수 없는지도 알았다. 

아이 사주에 아버지의 기운이 아이를 힘들게 했다. 오늘 가서 아이 보고 요리사 농사꾼이 돠라고 한다면 그 아버지는 그 말을 듣지 않을 게 분명하다. 

아이의 사주에 아이의 몸집이 크다고 나온다. 내가 되묻자 고개를 끄덕인다. 

음식 만드는 일을 좋아해서 엄마를 도와 곧 잘 부엌에서 일을 잘한다고 한다.  어떤 경우에는 그녀가 만든 찌개보다 아들이 만든 찌개가 더 맛있을 때가 있다고 한다. 

그런 아들의 모습에 아버지는 불 같이 화를 낸다고 한다. 

엄마는 아빠를 설득할 힘이 없다. 

안타까운 게 바로 이러한 것이다. 

사주를 보라고 하면서 사주가 말하는 뜻이 자기와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낭패다. 

햇살 따스한 봄날 오후의 맑은 하늘이지만 마음의 하늘은 회색빛 먹구름이 짙게 깔린다.

엄마는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었다. 함께 온 그녀의 동생은 그저 옆에서 바라만 보고 있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나도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난 뒤, 다음에 한 번 더 찾아와도 되겠냐 말한다. 남편과 아이와 같이 와도 되겠냐고, 

아이와 남편에게 오늘 한 이야기를 똑같이 해 줄 수 있냐고?

물론이다. 

사주란 그런 것이다. 

아버지가 아무리 돈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있어도 아버지라는 분이 원하는 삶을 그의 지식들이 살 수 없다.

자신이 가진 것을 그대로 고스란히 가지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다. 

아버지는 힘들어할 것이다. 아들도 힘들 것이다. 그러나 아들이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간다면 아들은 행복할 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욕심을 버린다면 근심은 사라진다.  

다 쥐고 살 수 없다. 인생은 주고받는 것이다. 내가 하나를 받으면 다른 뭔가를 내줘야 한다. 

그래야 세상 공평한 것이 아닐까!

한 달이 지나고 다시 그 어른이 찾아왔다. 그날처럼 사람들을 줄줄이 사람들을 데리고 아주 비싼 양주 한 병을 들고 왔다. 그 집의 아들과 아버지, 두 닮은꼴이 함께 나타났다.

아들의 손을 보니 길고 통통한 게 손재주가 있어 보였다. 

물론 그 아버지가 마음을 돌린 것은 아버지의 사업에 조심할 일을 괘를 통해 보고 말을 해 주었고 그 일에 신뢰를 가졌을지 모른다. 

함께 온 마을 어른 집으로 가서 술 한 잔 하자는 말을 거절했다. 

어쩐지 상담자와 식사와 술을 마시기는 좀 부담스러웠다. 

아이 엄마가 나에게 말해 주었다. 결정을 하고 난 뒤 아이의 표정이 밝아졌다고.

오늘은 커피를 마시고 갔다. 아버지도 말을 들어 보니 꽤 음식에 대해 일가견이 있었다. 

부전자전인 것을.

나도 그들의 가는 뒷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가슴이 뿌듯해 옴을 느끼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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