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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Feb 11. 2022

사주 이야기

기대와 실망

사람의 감정은 아무리 의식적으로 숨기려 해도 표정에서 드러난다. 

가끔, 흰구름만 떠다니는푸른 하늘에 새들만 날아다니는 고적하고 한가롭기만한 산골 작은 집으로 삶의 무게를 나누려고 찾아 오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표정에는 두 가지뿐이다. 

황금빛 미래에 대한 기대가 한 가지 있다. 

또 한 가지는 막연한 불안감이다. 표정을 숨긴다고 해도 그 두 모습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공통된 모습이다. 

가을이 익어 가는 어느 날 40 대 초반의 여인이 나를 찾아왔다. 얼핏 보니 40대 후반쯤으로 보였다.

얼굴에는 잔 주름이 끼였고 투박한 손이 제 나이보다 더 들어 보였다.

나름 최선을 다해 기죽지 않으려고 꾸민 모습이지만 어딘지 어색하고 고생을 많이 한 사람 같았다. 

그래도 자존감이 강하고 꽤 자만심도 강해서 사람을 깔보듯 쳐다보는 눈빛과 뚝뚝 내던지 듯 말을 하는 말투는 호감이 가지 않는 느낌이었다. 

밝은 표정을 억지로 내면서 자신의 당당함을 내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왜그런지 그 모습이 참 어색해 보였다.

그녀의 얼굴은 기대에 찬 자신 있는 표정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긍정으로 보는 마음은 나쁘지 않지만 너무 지나치면 만용이 되고 허세가 된다. 

첫 인상이 그리 호감가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날 찾아온 손님이니 차도 내어 주고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했다.

조그만한 쪽지에 아무렇게나 휘 갈긴 생년월일시와 이름이 적혀 있었다. 

사주에는 남편의 자리가 약했다. 사주 用神(용신)이 아직은 힘을 받지 못했다. 오행의 木이 자신을 나타내는데 더운 계절에 태어나니 물이 필요하다. 물을 상징하는 오행이 다행히 태어난 시의 천간에 있고 태어난 날의 지지에 겨우 기대고 있다. 

상담자는 의욕이 넘쳤다. 식당을 하고 있고 자신이 만든 음식은 손님들이 모두 맛있다고 평가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장사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 정도란다. 손님이 많지 않아 속이 상한단다.

사주에 식신이나 상관 즉 자신의 기운을 주어하는 기운이 거의 없다.(나무 일주는 불이 식신 기운이나 상관 기운이 된다) 그러니 재물은 있지만 재물이 모이지 않는 사주다. 

운도 자신에게 힘을 주는 물의 기운이 오지 않았다. 자기가 만든 음식에 자부심이 대단했다. 

자신감이 충만한 사람에게 기를 꺾을 수 없다. 

뭔가 좋은 이야기를 기대한다. 

그렇다고 엉터리로 봐줄 수도 없는 일이다. 다른 곳에서도 사주 본 모양이다. 내가 본 사주를 이야기를 다 듣고는 능숙하게 어디서 들은 소리를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뭐라고 이야기해 줄까?

앞으로 곧 좋은 운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얼굴이 환해진다. 

나는 거기에 한 마디 더 붙였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지 말고 사람들이 내 음식을 먹고 힘을 내어 잘 살아갈 수 있게, 자신은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일을 하라고 말했다. 마지막에 흘러가는 말로 음식 장사는 본인에게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는 피식 웃었다. 

"다른 곳에 가서 물으니 다들 내가 물장사나 음식 장사를 해야 한다고 말하던데요"

말하면서 네까짓 게 뭘 알아서 자기 보고 음식 장사를 하지 말라고 하냐는 그런 얼굴 표정이었다. 

"그러면 그러시던가요!"

몇 마디 더 물어보고 더 말할 것이 없다 싶었는지 휙 일어나 나갔다. 


그 여자는 내 말의 진심을 알아듣지 못했다. 큰 운은 없는 사람이다. 아무리 사주가 좋아도 운이 없으면 뜻을 이룰 수 없다. 하물며 사주에 식신과 상관의 힘이 없는 사람이다. 식당을 하는 일은 맞지 않는 사람이다.

남을 위해 반찬 조금 더, 밥 조금 더, 정 조금 더 주면서 자신을 공부하며 세상을 살라는 말을 해 주었다.

그 말에 자신의 솜씨는 대도시에 가도 손색이 없단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자기 음식이 맛있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한다.

사주에 자신을 희생시키는 식신이 없으니 인색하고 음식 또한 맛이 없을 듯 했다. 다 입을 하는 말을 진심으로 듣는 쉬 얇은 사람이었다. 

그래서야 무슨 먹을거리 장사를 하겠나!


솔직이 모두 이야기해 달라고 해서 말해 주면 화를 내고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리는 사람도 가끔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상담 때 종은 말 사탕발림 말을 해주면 좋겠지만 천성이 그러질 못하다. 

한 10여 년 전 어떤 남자를 상담한 일이 있다.  처음에는 그 사람 집 사람이 남편이 걱정이 되어 사주를 의뢰해서 본 일이 있다. 아내의 걱정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하는 사업마다 잘 되지 않았고 사업을 할 때마다 차나 사무실 집기를 바꾸는 묘한 버릇이 있었다. 허영심과 겉치레가 강한 사람이었다.

아내 되는 사람과 상담한 며칠 뒤 남편이 나를 찾아왔다. 

내 앞에서 얼굴 모습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약간 화가 나 있었다. 당연하다. 그 사람은 산에서 살아야 하는 사주를 가지고 있다.

왜 산에서 살아야 하냐고? 

사주 운이 그를 받쳐 주지 않았다. 대신 그는 손으로 농사를 짓거나 만드는 일을 하면 된다. 대신 도시의 찬란한 빛은 그에게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그렇게 묻혀 사는 삶을 산다면 나름 일가를 이루고 살 수 있었다. 

그 남자 하는 말이 자신은 도시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왜 내가 이런 시골에 묻혀 살아야 돈을 벌 수 있냐고 따졌다. 

잘하면 사람 치겠더라. 뭐 내가 그런 사람 덤빈다 겁낼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아무리 나보다 덩치가 좋아도 나를 이길 수 없으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 다 해 주었다. 

상당히 화를 내며 나에게 뭐 욕설까지는 아니어도 그다지 좋은 말은 하지 않고 갔다. 

아내 되는 사람이 다시 찾아와 백배사죄했다. 그렇지만 사죄할 일이 아니였다. 남편 잘 다독여 행복하게 사세요 라는 말을 해 주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잊었다. 언젠가부터 SNS에 특이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내가 글을 올리면 좋아요를 늘 해주고 댓글도 가끔 달렸다.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사진이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각인되는 사람이 있다. 

직접 찾아와 따졌으니 말해 뭐 하겠나!

나에게 와서 따지던 사람이었다. 도시로 가지 않고 시골에서 조각도 하고 농사도 짓으며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내심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말할 때는 뭐 듣다가 이제 와서 행복하게 사는 말년의 모습을 SNS 올려 자랑하냐 하는 생각에 기분이 살짝 나빠지려다가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때는 그 사람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부터도 나에게 '너는 별 볼 일 없으니 시골에 묻혀 조용히 살아!'

하는 이야기를 하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그 사람은 도시로 가지 않았다. 지난 일은 지난 세월 속에 묻고 그는 자신의 또 다른 인생을 살았다. 

그가 나에게 화를 내었을 때 그는 절망했는지 모른다.

'내가 이것밖에 안돼? 내 인생이 이렇게 초라해?' 라며 실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도 아마 생각해 봤을 테지!

인생이 꼭 물질을 향해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는 행복한 삶을 사는 것 같다. 

앞에서 사주 봤던 식당 하는 여자에 대한 소식은 몇 년 뒤에 알게 되었다. 

신년이 되면 꼭 집안사람들 신수를 보러 오는 부부가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식당 하는 여자 이야기를 한다. 처음에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 장사는 잘하시는가?"

하고 물었다.

"왠 걸요! 그렇게 잘난 척하고 자기 음식 자랑하더니 손님이 점점 줄고 어느 날 어디로 갔는지 소식도 없어요."

전자의 사람은 만용과 자만으로 살았고 후자의 사람은 자신을 돌아보았다. 

인생이 그런 게 아닐까 크기 기대할 것도 크게 실망할 일도 아닌 게 인생이 아닐까!


돈 꽤나 만지는 육십 대 초반의 남자가 찾아왔다. 다 낡아 빠지고 허름한 트럭을 타고 왔다.  옷도 그저 평범하다 못해 남루한 작업복 차림이었다. 

사주를 나에게 내밀었다. 하도 태도가 당당해서 사주를 보니 지금 재물이 있지만 결국에는 몽땅 날릴 사람이었다. 지금 재물의 풍성함에 그렇게 당당했다. 

나는 사주를 보러 왜 왔냐고 물었다. 뭔가를 알면서도 괜히 나를 시험해 보려고 하는 느낌도 받았다.

언제 돈을 벌겠냐고 사는 게 힘들다며 재물 복이 있겠냐는 물음이었다. 

다시 물었다.

"그 재물이 지금 있는 재물을 이야기합니까? 아니면 칠십이 넘어간 순간을 이야기합니까?"

라고 물었다. 

"아따 선생 나중 말년운이 중요한 것 아닙니까? 척 보면 몰라요!"
오히려 나에게 큰 소리를 쳤다. 

난 웃었다. 

겸사겸사 사는 동네에 사주 보는 인간이 있다는데 얼마나 잘 보나 하는 심산이었다. 보아하니 사주 꽤나 보러 다니는 사람이었다. 

사주에 영적 기운이 도는 사람이었으니 뭔가 신을 모시는 사람이 가까이 있을 것 같았다. 

"선생님은 초년 운은 나빠 공부도 못하고 마구 사셨고 지금은 중년 이후에 用神(용신)이 힘을 쓰는 식라 돈이 있습니다. 사는 것도 풍족하고 따르는 이도 많지만 머지않아 전 재산이 날아갈 듯 하니 사람 조심하셔야 하겠습니다."

얼굴색이 한순간에 바뀌었다. 말년이 가난하다는 말과 현재 있는 재물이 자기 재물이 아니다는 말에 충격도 받은 모양이었다. 

알고 보니 상당히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사람은 겉으로 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다. 겉모습이 근사해도 실속 없는 사람이 수두룩한 세상이다. 

그 사람도 자신이 이룬 성을 자랑스러워했다. 그저 시골에서 사주나 이름 지어주고 몇 푼 받는 나를 측은하게 여기기까지 했으니 말해 무얼 하겠는가!

내 말에 불쾌감을 표시하는 것도 잠시뿐 성격은 대인배였다. 가끔 지나가며 안부도 묻고 명절에는 양말 한 짝이라도 선물을 주었다. 좋은 소리 하지 않았는데도 안부를 물어 주니 고마웠다. 

사람인지라 나도 틀릴 때가 있네 하는 생각을 하며 지냈다. 

제 작년에 그는 얼굴이 말이 아니게 변했다. 

어느 날 가까운 그의 지인이 나를 찾아왔다. 시간이 괜찮으면 그분의 집에 가서 차나 한 잔 하자는 것이다. 

한 동안 소식도 궁금하고 해서 따라나섰다.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지인이 먼저 나에 말을 먼저 꺼냈다. 

그분이 다 망하게 생겼다는 말이다. 한 동안 소식이 없다 했다. 큰일이 있었다.

마음고생을 무척 많았다고 한다. 

그의 집에 가니 그 넓고 정리 잘된 마당에는 잡초만 무성하고 늘 방문객이 끊이지 않던 문은 검은색 무게만큼 무겁게 닫혀 있었다. 

안을 들어가니 집안 살림도 흐트러진 모습이고 청소는 언제 했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방안 침대에는 초췌한 노인이 누워 있었다. 사람이 변해도 그렇게 변할 수 없었다. 

나를 보고 몸을 일으키는 모습은 마치 늙은 사자가 겨우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모습 그대로였다.

순탄한 인생이 급전직하했다. 더 이상 투자나 동업은 하지 마라고 말했지만 설마 홀라당 말아먹을 줄 어떻게 알았을까!

그 강인한 분이 나를 보고 울기 시작했다. 나도 마음이 쓰라리고 아팠다. 

사주를 보고 끝이면 모르지만 그래도 가끔 놀러 와 차도 마시고 명절에는 양말 한 짝 주던 그런 분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다 날렸다. 

세상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삶은 정말 정해져 있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다시 생각났다. 

친구든 아까는 후배든 식구든 누구에게도 하지 말라는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결국 자신의 운명대로 살아간다. 

그가 내 손을 잡고 울었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삶은 커다란 기대도 실망도 할 필요가 없다. 태양이 뜨고 태양이 진다. 다시 태양이 뜬다. 

세상 이치가 이렇게 간단하지만 삶이 그렇게 녹녹지 만도 않다.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사주는 공평하다. 기대와 희망 그리고 절망이 늘 교차하는 게 사주팔자다. 

자만해도 안되고 너무 자신을 낮추어서도 안된다. 

이카루스는 자신의 날개를 믿고 태양을 향해 날랐다. 더 높은 곳을 향해 날랐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 충고를 잊고 말았다. 날개는 태양 빛에 녹아내리고 이카루스는 지상으로 떨어져 죽었다. 

너무 태양을 가까이하지 않고 그렇다고 날개가 나뭇가지에 부딪히지 않게 적당히 날았다면 이카루스의 날개는 늘 그를 목적지에 데려다주었을 것이다. 

크나큰 기대를 가질 것도 없고 땅이 꺼지게 실망할 것도 없다. 

특별한 삶은 없다. 늘 가운데 中을 쓰는 中庸(중용)을 잊지 말고 살면 자만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신을 너무 낮추어 실력을 발휘 못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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