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아 Jul 14. 2023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

으~음 

시골 생활은 단순하다. 일찍 일어나 움직인다. 늦잠을 자고 싶어도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시끄럽다. 

산촌의 아침, 새 울음소리는 자명종 시계의 알람보다 더 요란하다. 

누워있을 수 없다. 날씨에 상관없이 울려 퍼지는 아침 새소리가 게으름을 피우지 못하게 만든다. 

날씨는 흐리고 비는 오락가락하는 날에는 바깥일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 없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늘 침묵 속에 있던 전화기가 아침 정적을 깨고 요란스럽게 울어 댄다. 

'뭐지? 전화 올 때도 없는데? 어머니?'

이렇게 생각하고 얼른 전화기로 뛰어갔다. 아흔이 되신 어머니의 안부 때문에 늘 전회기를 가까이 두었는데 어머니 전화는 아니었다. 

가끔 아르바이트 삼아 일당 벌이 하는 농협에서 전화가 왔다. 

지금 바로 와서 일을 좀 해 줄 수 있냐는 전화였다. 시계를 보니 8시가 조금 넘었다. 차로 가면 한 20분 걸리는 곳이다. 

가겠다고 하고 채비를 차렸다. 

일할 때 입는 옷 늘 준비되어 있다. 시골 생활에서 일하는 옷은 손에 잡힐 듯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얼른 옷을 걸치고 장갑과 마스크(아무리 코로나가 끝났지만 사람 많은 곳에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왠지 안심이 된다)와 물통을 챙겼다. 

종이컵에 물을 마실 수 있지만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종이컵이 마음에 걸려 물을 받아 마시는 물통을 들고 다닌다. 게슴츠레한 눈에 아직 잠이 들깬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차를 타고 내려갔다. 

그렇게 시작한 일을 2주 동안 했다. 그곳 일이 바빠 휴일에도 일을 했다.

한편으로는 잘 됐다 싶었다. 일에 미쳐 시간을 보내기 좋은 기회였다. 

일당 받고 하는 일이 쉬운 일은 없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좀 하기 싫어하는 힘든 일을 보통은 일당에게 맡긴다. 어차피 일당 벌이는 그 일 하고 나면 다른 일이 없으니 좀 힘들어도 감내하고 일을 한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현실인지도 모른다. 

몸을 써가며 하다 보니 일을 마친 날에는 온몸이 쑤셔 댔다. 나이 60이 코 앞이다. 청춘은 60부터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몸이 젊은 시절처럼 잘 따라주지 않는다. 괜히 늙어가는 모습에 위안을 받기 위해 하는 말이다. 

청춘은 찰나의 순간 지나가고 없다. 

일주일 중에 하루 이틀 일해 달라고 할 때와 일손이 달려 하루도 쉬지 않고 2주 동안 매일 일 할 때와는 나의 생활과 몸이 천양지 차이를 보였다. 

아무리 일당 받는 아르바이트라고 해도 2주를 쉬지 않고 일하면 뭐 큰돈은 아니지만 몇 십만 원 손에 쥔다. 

나도 그만 욕심이 과했던 것이다. 하겠다고 했으니 중간에 그만 둘 수도 없다. 그랬다가는 이 삼일 일하는 압도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생겨 어쩔 수 없이 죽으라 일을 해 보았다. 

일주일 중 이 삼일 일한 날 저녁에는 책도 보는 여유가 생기더니 사흘 째 되는 날부터는 저녁을 먹고 나서 몸을 뉘위기가 바빴다. 

만사 귀찮았다. 더위에 지치고 눅눅한 날씨에 몸이 무서우니 더 그럴 수밖에.

일하고 밥 먹고 잠자고 다시 일어나 일하러 가고 하는 반복생활이 정신을 황폐하게 만든다. 

우선 바보가 되는 기분이었다. 

생각도 하지 않고 책도 보지 않고 기계처럼 일만 반복하니 '모던 타임스' 영화가 생각난다. 찰리 채플린이 기계의 틈 속에서 움직이듯 나도 그저 일하는 농기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다를 수 있지만 생각을 잊어버리고 책을 보지 않고 같은 생활을 반복하는 것처럼 사람을 황폐하게 하는 것도 없다. 

현대사회는 사람을 사람을 보지 않는다. 부속처럼 쓴다. 대체 가능한 소모품이 되어 버린다. 

나 외에는 어떤 것도 대체 불가한 자리가 인간이어야 하는데 이 사람 아니면 저 사람 쓰면 되지 하는 그런 모습이다. 

노동은 신성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그 노동에 사람이 묻혀 버리면 그 또한 그리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하루도 쉬지 않고 2주를 일하고 나서 내린 결론은 인간은 유희의 동물이지 일을 통해 성취감이니 자아를  찾기는 어려운 존재다.

성취감?

무엇을 위한 성취감일까?

돈을 번다고?

그러고 나서 나를 위한 시간을 낼 수 있을까? 

없다. 

다시 돈을 벌기 위해 일터로 나간다. 좋은 집을, 좋은 차를, 좋은 옷을 입어야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돈이 필요하지!

크고 좋은 아파트를 사서 대출을 내고 그 대출금과 이자를 내기 위해 죽으라 일한다. 

번듯한 새 차를 샀다. 그러나 몇 천만 원 하는 새 차를 단 번에 살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더라.

그 활부금을 갚기 위해 일한다. 

사람의 가치를 외모에 두는 사회가 되었다. 

그러니 머리는 비어 있고 겉모습만 꾸미려 한다. 

카드 할부를 해서 명품 옷 몇 벌 사 입는다. 

그러고 나면 뭐가 남을까?

노동은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최소한의 가치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인간은 먹고 자고 싸고 하는 동물의 본성만 있는 게 아니다. 생각하고 창조하는 또 다른 존재다. 

일을 해 보니 물질만 생각한다면 인간이나 동물이나 다를  바 없다. 

동물의 사냥은 그래도 최소한의 생존 때문이지만 나는 그 몇십만 원 여유 때문에 나를 기계로 만들어 버렸다. 

한 주 아무 생각하지 않고 쉬었다. 비가 와 텃밭일을 틀렸고 그 한 두 주 동안 읽지 못한 책, 보지 못한 영화를 보고 멍하니 내리는 빗줄기를 '에디 히긴스'의 음악과 이글스의 '테스페라도' 같은 음악에 묻혀 지냈다. 

아마 다음 주면 또 일을 해달라고 연락이 오겠지!

일을 한다. 그렇지만 쉬지 않고 일하는 것만은 사양해야겠다. 

그 2주 동안 나는 내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은 반복되는 일상을 견딜 수 있을지 모르지만 쉼표 없는 삶의 일상을 나는 나 스스로 허락하고 싶지 않다. 

지겹게 내리는 비가 몸과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쉼을 가지는 일상이 먹구름 가득한 장마 같은 내 삶에 잠깐잠깐 내리는 흰 햇살이 되었으면 한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는 6.25를 어떻게 생각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