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죽음, 한 시대의 역사

{아버지의 해방 일지를 읽고}

by 마리아

소설은 한 사람의 이야기이지만, 때로는 한 시대를 비춘다.

"아버지의 해방 일지"는 작가의 가족사에서 시작되지만, 그 안에는 해방과 분단, 이념의 대립, 그리고 여전히 끝나지 않은 우리 시대의 질문들이 응축되어 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내 부모의 시대 그리고 내 가족들을, 그리고 우리가 지나온 길을 오래도록 떠올리게 되었다.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소설의 소재로 삼는 일은 일종의 자기 고백일지도 모른다.

허구와 상상이 섞이면 그것은 하나의 소설이 되고, 그 안에 개인의 진실이 녹아든다.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들처럼, 가족사는 문학의 형태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역시 작가의 아버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아버지의 삶은 단순한 개인사를 넘어, 곧바로 우리 역사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 작품은 소설이면서도 동시에 역사서처럼 느껴진다.


역사는 개인의 삶으로부터 시작된다. 수많은 개인들의 서사가 겹겹이 쌓여 역사의 소용돌이를 만든다.

작가의 아버지 한 사람의 삶 속에 해방 전후 한국사회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해방은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물론 우리의 독립운동은 절대 간과해서는 안될 역사의 진실이고 그 역사가 우리의 해방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약했고, 세계는 이미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두 강대국의 이념 대립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라는 그 상반된 체제는 우리를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


당시 민족주의 지식인들에게는 미국식 자본주의보다는 평등과 분배를 내세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더 매력적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는 지금 복지국가라는 이름 아래 자본주의 속에 사회주의적 요소를 도입하고 있으니, 이념에 대한 지나친 단죄는 불필요하다.

구소련은 스탈린주의로, 북한은 김일성주의로, 중국은 마오쩌뚱의 개인독재로 변질되었지만, 사회주의라는 이상 그 자체가 악은 아니었다.


최초의 사회주의자라면, 어쩌면 토마스 모어일 것이다. 그의 "유토피아"는 지금도 많은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준다.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동양에는 묵자도 있다. 그의 사상은 평등과 사랑,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의 철학을 품고 있다.


작품 속 주인공은 그리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니었지만, 당시의 시대를 꿰뚫는 판단력을 지녔다.

해방 직후, 미군정은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유지하던 친일 관료들을 다시 필요로 했다.

미국은 조선을 잘 몰랐고, 독립운동의 흐름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그들의 손에, 다시 식민지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일반 국민들에게 그것은 배신이었다. 일제의 앞잡이들이 해방 이후에도 버젓이 행세하는 모습을 보며, 누군들 분노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선택은 분명했다. 미국과 그 체제를 따를 수 없었던 이들은, 민족주의와 평등을 표방한 사회주의를 선택했다.


그 선택의 결과는 비극이었다. 강대국들의 냉전은 한반도에서 열전으로 번졌고, 형제가 총을 들고 서로를 겨누는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의 승자는 없었다. 결국 모두가 패배자였다.


남한과 북한은 각기 남은 잔존세력과 반대파를 제거하는 작업에 나섰고, 그 속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되었다. 작품 속 주인공도 그런 시절을 통과했다. 그는 형기를 마치고 돌아왔지만, '빨갱이'라는 낙인은 평생 그의 삶을 옭아맸다. 살아 있으나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삶이었다.


그런 시대를 잊지 말아야 한다. 이념의 이름으로 능력 있는 사람들은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났고, 단지 부모 형제가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고통을 받아야 했다.


소설은 시대를 반영한다. 이 작품은 잊고 지냈던 우리의 아픈 현실을 다시 끄집어낸다. 그리고 미완의 해방, 여전히 진행 중인 분단의 상처를 직시하게 한다. 작가는 그저 개인의 이야기를 썼을 뿐이지만, 독자는 그 안에서 우리의 역사를 보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은 소설 속에서 너무도 허무하게 그려진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전봇대에 부딪혀 돌아가셨다는 그 한 문장.

거창한 명분 앞에 인간의 죽음을 이렇게 가볍게 묘사한 것은 오히려 묵직한 반전이다. 아무리 커다란 대의가 있더라도,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삶의 명분도, 이념도, 죽음 앞에서는 무력하다.


그래서 이 소설은 조용하지만 강한 울림을 준다. 한 사람의 삶 속에 담긴 시대의 고통과, 그를 지켜보는 가족의 침묵, 그리고 우리가 마주해야 할 역사적 진실을 담담히 건넨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비 내리는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