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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Feb 14. 2020

전원생활 일기

 겨울의 시작

바람이 심상치 않다. 저녁에 부는 바람과 새벽에 부는 바람 소리가 창문 밖에서 요란하다 싶더니 어제는 여름에서 가을에 오는 태풍보다 더 강한 바람이 하루 종일 불고 있다. 

주변에 나뭇잎들은 바람과 함께 하늘로 훨훨 사라지고 양상 한 나뭇가지는 바람결에 흔들린다. 

여름과 가을에 태풍이 오는 일기예보보다는 겨울이 시작되는 바람을 더 걱정하는 동네다. 


이제 겨울이 시작되는 바람이 분다. 겨울 동안 바람은 그치지 않는다. 세게 불던 약하게 불던 바람 속에 묻힌다.

마을 이름은 척지다. 척박했던 땅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집에서 멀리 지리산의 천왕봉이 보인다. 훤히 트인 전망에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을 주는 마을이다. 

마을 이름처럼 별다른 특용작물이 나오지 않는다. 오직 벼농사와 늦가을 양파와 마늘 정도 심으면 된다. 

여름 채소 작물을 심어 한 철 먹을 수 있다. 

나도 이것저것 다해 봤지만 동네 어르신이 뒷짐 지고 가시다가 하시는 말씀이 그냥 먹을 텃밭이나 하라는 말씀이 귀가에 아직도 쟁쟁하다.

겨울에 특별히 하우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곳이다. 역시 바람이 너무 강해서 비닐이 남아나지를 않는다. 

이곳의 겨울은 정말 조용히 봄을 기다리며 겨울잠을 자는 그런 곳이다. 

그나마 바람이 조금 덜 부는 날에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수확한 콩으로 두부를 만든다. 주변에 두부의 고소한 맛이 나서 기웃거리면 두부와 김장 김치 썰어 내어 손짓한다. 

못 이기는 척 집 마당이 들어간다. 벌써 동네 어르신과 아저씨들이 앉아 두부 한 모 김치 하나 해서 우적우적 드시고 께신다. 나도 옆에 걸터앉아 두부 한 모 집어 김치 올려 한 입 쏙 먹어 본다. 

방금 담금 김치의 아삭 거림과 두부의 고소한 콩 맛이 정말 맛있다. 찬 김기가 입안을 약간 시리게 하지만 따뜻한 두부의 온기에 그마저도 사라진다. 

가마솥 한 군데에는 돼지 수육이 거의 익어간다. 집게로 건져 올려 도마 위에 올리면 격렬한 김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고기의 향을 퍼트린다. 이쯤 되면 입 안에 침을 주체할 수 없다. 

시커먼 부엌칼이 도마와 올려진 돼지고기를 사정없이 난도질한다. 그리고 김치와 두부로 삼합을 이루어 거기에 맛있는 새우젓 살짝 올려 먹으면  그 맛은 가히 천하 진미가 따로 없다.


다행히 동네 어르신이나 아저씨들이 그다지 술은 즐기지 않으시는지 술이 비워지지 않는다. 

시골에 들어와 나도 술맛을 잃었다. 맑은 공기에 작은 삶을 살면서 굳이 술이 필요하지는 않더라

입 만 축일 정도로 딱 알맞게 한 잔 하고 자리에 일어나려니 아주머니가 봉투에 두부 한 모 넣어 주신다. 

주는 마음 너무 거절하면 안 된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넙죽 받아 챙긴다.


눈이 온다. 바람과 함께 불어오는 눈보라는 쌓일 틈을 주지 않는다. 잿빛 하늘에 눈풍풍에 몰아 치고 하늘 그 많던 새들은 온대 간데없다. 창 밖으로 무섭게 불고 있는 눈보라를 바라보며 아내가 새 걱정을 한다. 

자연의 순리대로 자신들도 어딘가 눈보라를 피할 것이라 이야기한다. 


자연은 그 힘을 거스르지 않고 더불어 살면 문제가 없다. 개발한다고 파헤치면 자연의 인간에게 재앙을 준다. 


이제 시작된 바람은 따뜻한 봄이 올 때까지 그치지 않을 거다. 

아내는 '우리는 한 동안 갇혀 살겠네' 한다. 그래도 그런 겨울도 나름 운치 있다. 

가져온 두부로 된장찌개 해달라고 아내에게 조른다. 아내는 부엌으로 향하면서 

"냉장고 있는 고기 꺼내 놔"라고 말한다. 두부랑 얻어 온 고기를 아내는 맛보지 못했다. 찌개에 넣고 남은 두부는 고기를 삶아 김치와 함께 먹을 것이다.  전원생활의 소박한 사치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창밖에 가지만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신들린 듯 춤을 춘다.  겨울은 이렇게 깊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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