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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Mar 07. 2020

사주와 음식

된장 이야기 1

가을에 콩을 타작한다. 

우리나라는 그 기후의 특성상 전 세계에서 노란 콩 주산지다. 콩이 많이 수확되어 콩을 저장하여 오래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그 콩을 발효시켜 된장을 만들어 여러 가지 음식에 사용하게 되었다. 


늦은 가을 들녘이 누렇게 색이 바랜다. 누렇게 익은 콩은 주변의 다른 들풀처럼 시들하지만 안에는  황금알이 가득하다. 

낫으로 땅과 닿은 줄기가 사정없이 잘려 나간다. 멍석을 깔고 도리 개 질을 한다. 툭툭 무심히 던지는 나무 작대기처럼 내리친다. 사정없이 내리 치는 도리 개 질에 숨어 있던 콩들이 통통 튀어 오른다. 

말라비틀어진 콩 줄기는 불 쏘시개로 쓰려고 가지런히 모아 둔다. 감싸 안은 마른 콩줄기에 어설픈 초보 농부의 얼굴에 농사의 수고로움을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 자꾸 찔린다. 

이제 멍석에 갈린 사방에 흩어진 콩을 콩껍질과 중리 시키는 만만치 않은 작업이 남아 있다. 가을 들녘 서녘 해를 바라보며 멍석에 깔린 콩과 껍질을 분리시키는 일을 할 차례다. 멍석 앞에는 멍석 색깔과 닮은 바둑이가 주인 따라 이리저리 움직인다. 새들이 앉아 행여나 콩을 쪼아 먹을까 분주한 바둑이가 주인을 도리개 질을 가끔 훔쳐본다. 

키 를 이리저리 흔들어 불어오는 늦은 가을바람에 날려 보낸다. 키 위에는 콩만이 남는다. 그렇게 언제 끝이 보이지 않던 키질도 끝난다. 서녘 하늘에 불게 불든 놀이 하늘과 땅을 붉게 물들인다. 

콩을 자루에 넣고 동여매면 올해 콩 농사뿐만 아니라 모든 농사의 마지막인 콩 농사는 끝이다. 


그렇게 늦여름부터 늦은 가을까지 대지의 기운으로 자란 콩은 우리에게 다시 내어 줄 게 많은 식재료다.

땅에서 나는 고기라고 말할 정도로 콩이 가지고 있는 영양소는 대단한 듯하다. 


비록 마르고 딱딱한 콩은 건조하고 추운 겨울 동안에는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따스한 햇살이 내리 쪼이는 봄부터 콩을 보관하기 쉽지 않다. 봄을 지나 여름이 다가오기 전 장마가 시작된다. 습하고 더운 공기는 아무리 건조한 콩도 썩게 한다. 장마가 끝나고 시작되는 여름 동안에 습한 공기에 콩은 습기를 머금고 부패하기도 한다. 


콩을 수확하고 나면 코을 깨끗이 씻고 커다란 가마솥에 콩을 삼는다. 

부엌에 가마솥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콩은 가마솥에 삼는 게 좋다. 부엌에 가마솥을 걸고 부뚜막에 앉아 있던 시절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마당 한편에 솥을 두 개쯤 걸어 놓고 산에 부러진 마무를 주워와 불을 지핀다. 불이 지펴지면 거기에 물과 콩을 넣고 삶기 시작한다. 솥 아래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 고구마를 알루미늄 포일에 싸서 집어 놓고 기다리는 재미도 솔솔 하다. 지루한 시간 달콤한 고구마로 허기를 달래며 먹는 맛이 기가 막히다. 


콩을 메주로 만드는 일도 쉬운 과정은 아니다. 우리네 먹거리에 손이 적게 가는 게 없다. 

서양에서는 치즈 만즈는 과정이 아주 힘들게 보이는데 저장 음식을 만드는 과정은 어디나 마찬가지 인 듯하다.  

삶은 콩을 뭉갤 때 요즘은 절구로 찧거나 하지만 어린 시절 어머니가 메주를 만드실 때 면포에  싼 메주를 발로 꾹꾹 발고 계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는 어머니가 발로 밟고 있는 게 뭔지도 모르고 어머니의 발 위에 발을 얹고 어머니는 내 손을 잡으며 함께 밟던 때가 생각난다. 어머니의 허벅지를 안고 아니면 어머니가 내민 손을 잡고 어머니 발등에 작은 발을 얹고 어머니가 흥얼거리시던 노랫소리에 리듬을 맞춰서 밟던 생각이 난다. 

이제 도시에서 메주를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아파트라는 주거 환경이 우리의 전통을 밀어내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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