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방에서 이탈리아 여행
끼 만들기는 나에게 있어 마치 숙제와도 같았다.
뇨끼(gnocchi)라는 요리가 이 세상에 존재함을 알았던 것은 거의 10 년 전, 대학교 2학년때 첫 자취생활을 시작하며 애독하였던 생활요리 만화를 통해서이다. 너무 오래되어 작가님의 이름이 기억날듯말듯한데, 그 캐릭터가 돼지코를 한 토끼 모양이었던 것은 확실히 기억이 난다. 아직 웹툰이 각 포털에 제대로 정착하지 않았던 시절에, 야매요리나 오므라이스잼잼 같은 요리툰이 뜨기도 전에 수준급의 세계요리 및 한국 가정식을 자취생의 수준에 맞게 풀어쓴 정말 재미있고 알찬 만화였는데. 아마 시대를 잘 타고나서 네이버나 다음에 연재가 되었으면 더 널리 알려졌을텐데. 작가님의 이름이 기억나는 대로 한번 다시 찾아보아야겠다.
어찌되었든, 기억을 되짚어 보면 지금의 나와 같이 홀로 자취생활을 하시던 그 작가님 또한 뇨끼라는 요상한 어감의 요리에 크게 끌리게 되었고, 집에서 직접 만들어보겠다는 도전에 착수하기에 이른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동그랗게 빚은 뇨끼 반죽을 하나하나 포크로 눌러 빗살무늬를 넣어준 것이다. 그 작가는 뇨끼를 만들고 나서, '외국요리라 왠지 모르게 만들기가 더 거창하고 피곤하게 느껴지는 이탈리아 감자 수제비'라고 표현했다.
항상 그렇듯 뇨끼를 만들기 전에 유튜브 영상을 살펴보았다. 가장 많이 참고한 것은 제이미 올리버의 절친한 친구, 제나로Gennaro의 레시피이다. 쫀득쫀득한 이탈리아 억양으로 왁자지껄하게 만들어내면 어느 요리가 맛없을 수 있을까 싶다. 제이미 올리버 채널의 거의 모든 동영상을 다 보았는데, 제이미와 제나로를 굳이 비교할 필요는 없지만 아무래도 이탈리아 요리는 제이미보다는 제나로가 만들 때 더 맛깔나 보인다. 하긴 제이미도 자신의 이탈리아 요리 스승이 제나로라고 존경을 표시하고 있기도 하고.
이 요리를 위해 먼저 시장에 가서 감자를 샀다. 감자 한 봉을 집어들며 걱정이 되는 것이, 바로 한국에서 생산되는 감자와 유럽 감자의 질감 차이였다.
한국의 감자는 미국이나 유럽의 감자에 비해 유독 물기가 많으며 그 식감이 서걱서걱하다. 반찬으로 많이 나오는 감자볶음을 먹다보면, 덜익은 부분에서 바로 그 서걱서걱한 느낌을 느낄 수 있다. 삶아서 으깨 먹으면 물기가 많고 찰지기에 으깨는 숟가락의 뒷편에 크게 한 덩이가 눌러붙어 달리기 일쑤이다.
한편, 내가 미국에서 잠시 머물렀던 곳은 감자로 유명했던 아이다호와 가까웠는데, 마트에 가면 항상 아이다호 감자가 다른 감자와 구분되어 진열되어 있었다. 아이다호 감자 한 봉지를 집에 들고와서 삶아보았는데, 한국 감자와는 달리 서걱거리지 않고 포슬포슬하게 무너지는 식감이 참 매력적이었다.
한국감자의 서걱임 또는 찰짐이 좋은 때도 있고, 아이다호 감자의 포슬함이 포근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뇨끼를 만드는 데 있어 핵심은, 삶은 감자를 포슬포슬하게 쳐 내야한다는 것. 과연 가능할까?시장에서 산 자그마한 감자 알갱이를 손으로 굴려보며 고민에 잠겼다.
재료.
-뇨끼반죽류: 감자 많이 많이. 밀가루(되도록 박력분, 계란 노른자, 소금후추
-크림소스류: 시판 파스타 크림소스, 파슬리 플레이크, 소금후추
-올리브소스류: 올리브오일, 편마늘, 로즈마리, 파슬리, 소금후추
1) 감자를 삶고 삶은 감자는 으깬다.
이때 집에 각종 감자 으깨기 전문기구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것이 없었던 나는 그냥 채반에다 대고 눌러서 내려버렸다. 감자는 한 오천원 어치를 쓴 것 같은데 야채 가게용 붉은 소쿠리 두 소쿠리 정도이다. 어차피 삶으면 부피가 확 줄어들게 되어있다.
2)으깬 감자에 달걀 노른자 하나(또는 질척이지 않을 것 같으면 하나 추가해서 둘)을 넣고 밀가루를 섞어가며 살살 건드리듯이 반죽을 치댄다. 간은 나중에 요리할 때 해도 된다.
밀가루를 섞는 것은 밀가루의 글루텐이 반죽의 형태를 잡도록 하기 위한 것. 밀가루의 양은 취향에 따르는데, 감자의 포슬함을 즐기고 싶다면 거의 뿌리다시피하여 최소한, 쫀득한 맛을 느끼고 싶다면 더 많이 넣어 준다.
2) 반죽이 다 되었다 싶으면 뇨끼반죽을 길게 늘린다.
3) 길게 늘린 반죽을 칼을 이용해 일정한 크기로 썰고, 동그랗게 뭉쳐낸다.
4) 작게 빚어낸 뇨끼에 포크나 젓가락 등을 이용해 빗살무늬를 넣어주는데, 이는 포면적을 늘려 소스가 더 잘 묻어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5) 반죽이 끝나면 뇨끼를 끓는 물에 넣어 뇨끼가 끓는 물 속에서 떠오를 때까지 약 1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
내 반죽의 문제 인지, 절반 정도는 다시 떠오르지 않고 뜨거운 물 안에서 퍼져버린다. 아쉽지만 이 과정은 건너뛰기로 한다.
6) 올리브 소스를 만든다. 프라이팬에 올리브유와 편마늘, 로즈마리를 넣고 약불에 익혀서 기름에 마늘과 허브향이 배도록 한다.
7) (6)의 소스에 뇨끼를 넣고 노릇노릇하게 익힌다. 소금 후추로 간을 한다.
8) (7)의 뇨끼늘 그대로 먹어도 되지만 냉장고에 먹다남은 크림소스가 있어 그대로 넣어 보었다. 이쪽도 짭쪼롬하니 맛있었다.
완성된 크림소스 뇨끼. 마늘 향과 뇨끼의 쫀득함, 감자향이 꼬소한 크림소스와 합쳐지니 입안이 행복하다.
하지만 내 취향에 더 맞는 것은 크림소스를 뿌리지 않고 마늘과 허브, 후추로만 맛을 낸 녀석. 감자의 향이 더 살아있고 노릇노릇하게 익은 겉면이 고소하다.
다시 한번 더 뇨끼를 만들어 먹을 생각이 있나 물으면, 글쎄, 혼자 먹기 위해서라면 그닥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한끼를 먹는데 파스타를 그낭 때려넣는 것보다 품이 너무 많이 든다.
나중에 자식이 생기면 함께 뇨끼를 빚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적에 어른 들이 송편을 빚으면 옆에 꼭 붙어서 토끼모양 송편, 기린모양 송편을 같이 만들곤 했는데, 뇨끼반죽하기도 아이들에게 그런 재미가 있지 않을까? 물론 집이 어지러지지 않도록 되도록 얌전하게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Buon Appeti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