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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일랑 Apr 22. 2017

스페인 해변가에서의 추억을 담아, 엠빠나다

시금치 리코타 치즈로 속을 넣은 스페인식 파이, 엠빠나다

스페인의 매력 중 하나는 배고픈 배낭여행자의 배를 두둑하게 채워줄 간식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이다. 다른 곳에서라면 몰라도, 스페인에서는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민박 형태의 숙박이 거의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고개를 돌리면, 도처에 간단하고 저렴한 식사 거리를 파는 곳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스페인의 대표적인 간식거리를 꼽자면 많은 이들이 유명한 츄로(Churro, 한국말로 추로스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복수형의 's'가 붙은 형태이다)를 빼놓지 않고 언급할 것이다. 하지만 이 외에도 간단한 간식거리나 아침식사로 적절한 요리가 무궁무진한데, 그중 하나가 스페인식 샌드위치인 '보카디요(bocadillo)'이다. 


마드리드에서 만났던 1 유로짜리 보카디요 메뉴들. 맥주는 단돈 0.5유로!




보카디요는 원래 가난한 노동자의 소박한 끼닛거리로 자리를 잡은 음식이다. 저렴하면서도 간식 겸 식사 겸 먹기 적당하기 때문에 관광지에서는 노동자뿐 아니라 가난한 여행객에게서도 큰 환대를 받는다. 대체로 담백한 스페인식 샌드위치 빵을 길게 잘라서 치즈나 오믈렛, 육가공품(하몽, 쵸리소, 살라미 등 햄 종류), 생선 튀김, 오징어 튀김 같은 것을 끼워먹는다. 태생이 화려한 요리가 아닌 만큼, 각종 야채와 드레싱을 다채롭게 듬뿍 올려먹는 미국식 샌드위치에 비해 주재료는 햄이면 햄, 오믈렛이면 오믈렛 한두 가지만 넣어 단순한 맛을 낸다.




그러나 스페인의 간식거리를 논할 때 보카디요만 언급하면 정말로 억울한 만한 녀석이 하나 있다. 이번 포스팅의 주인공, '엠빠나다(Empanada)이다. 엠'파'나다라고 표기해야 할지, 엠'빠'나다라고 표기해야 할지 애매한데, 본토 발음상으로는 엠'빠'나다가 좀 더 가까운 듯하다.


바르셀로나 람블라스 거리의 까르푸에서 만난 엠빠나다 매대. 이곳에서 엠빠나다를 사서 시체스의 해변가에서 먹었더랬다.


엠빠나다를 굳이 다른 요리와 비교하자면 자연히 동아시아의 만두나 이탈리아의 깔조네, 영국의 미트파이 등을 떠올리게 된다. 실제로 16세기에 처음으로 등장한 엠빠나다의 기원을 따지는 이들은 인도/중동 지역의 사모사(삼사, 삼부삭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림)나 이탈리아의 깔조네, 영국의 파이를 유력한 후보로 본다. 엠빠나다는 깔조네나 미트파이처럼 빵 반죽 안에 속을 채워서 오븐에 굽거나 튀긴 요리이다.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시작하여 식민지배로 인해 이베리아 반도 문화의 영향을 받은 남미지역에도 널리 퍼졌다. 본토와 남미지역 간의 차이점이라면, 이베리아 반도의 엠빠나다는 주로 오븐에 굽는 형식이 많은 반면 남미의 엠빠나다는 튀겨서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오븐에 하나하나 구워내는 것보다는 뜨거운 기름에 빨리 익히는 것이 가판대 간식으로 효율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남미 지역의 비만의 원인을 꼽을 때 이 튀겨서 만든 엠빠나다가 언급되기도 한다.


엠빠나다의 모양은 스페인 안에서도 다양하다. 기본적인 엠빠나다의 모양은 타원형으로 늘린 반죽을 반을 접어 손바닥 사이즈의 반달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엠빠나다가 오래전부터 만들어졌던 스페인 북서부의 갈리시아 지역의에서는 커다란 파이를 닮은 원형이나 직사각형 모양의 큰 덩어리를 만들어 적당한 사이즈로 잘라서 먹는다.


동그란 파이 모양으로 구워낸 갈리시아식 엠빠나다. 가운데 동그란 구멍은 엠빠나다가 터지지 않도록 방지하는 숨구멍인데, 배꼽 같아 보여서 귀엽다. common.wikimedia.or


도우(dough)는 주로 밀가루와 올리브 오일을 섞어서 만든다. 그 경우 적당히 담백한 빵맛이 나게 된다. 하지만 인터넷을 보면 버터를 넣어서 페이스트리  반죽을 만드는 레시피도 많이 찾을 수 있다. 이 경우 올리브 오일을 섞는 것보다 덜 담백하지만 더 고소하고 버터향이 감도는 도우를 만들 수 있다.



엠빠나다의 필링(filling)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재료의 목록은 무궁무진하다. 애초에 '엠빠나다'라는 요리명은 '빵 반죽으로 감싸다(cover in a pastry case )'라는 의미의 스페인어 동사인 '엠빠나르(empanar)'에서 유래했다. 달리 말하자면, 속에다 무엇을 넣든, 빵 반죽으로 감싸서 요리하기만 하면 엠빠나다의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덮밥'요리에도 '버섯 덮밥', '콩나물 덮밥' 등 재료에 따라 다양한 변주가 있듯이, 엠빠나다도 '소고기 엠빠나다', '닭고기 엠빠나다', '참치 엠빠나다', '햄과 치즈 엠빠나다', '시금치 엠빠나다'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심지어 초콜릿과 둘체 데 레체(연유를 오랫동안 끓인 것)를 넣은 디저트용 엠빠나다가 있을 정도이니, 아쉽지만 우리나라의 만두는 속재료의 변주 가능성에서 엠빠나다 쪽에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할 것 같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첫날에, 관광객들은 꼭 들르기 마련인 람블라스 거리의 까르푸에서 눈이 휘둥그레 질 정도로 맛있어 보이는 엠빠나다들을 보았다. 다음날은 마침 아침 일찍 바르셀로나 산츠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고 편도 40분에서 한 시간 거리의 근교 마을인 시체스와 타라고나를 돌아볼 예정이었다. 친구와 꼭 일찍 나와서, 해변에서 출출해질 때쯤 꺼내먹을 납작 복숭아와 엠빠나다를 까르푸에서 사서 가기로 결심했다. 별것 아니지만 과일과 엠빠나다를 챙겨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소풍을 떠나는 것 같아 신이 났다.


종류가 참 다양하다. 이 사진 안에서만 해도 프랑크푸르트 소시지가 들어간 것, 베이컨과 치즈가 들어간 것, 참치가 들어간 것, 시금치가 들어간 것이 보인다.


황홀할 정도로 귀여운 엠빠나다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던 매대 앞에서, 어떤 엠빠나다를 선택할지에 대해 친구와 한참을 고민했다. 결국 고른 것은 무난함의 극치인 햄과 치즈 엠빠나다(empanada queso y jamon)였다. 신기한 맛으로 하나 더 골라올 것을, 그때 찍은 엠빠나다 사진들을 이리저리 보면서 뒤늦은 후회를 하곤 한다.


속재료뿐 아니라 모양도 다양하다. 


기차를 타고 시체스로 가는 길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엠빠나다를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고생을 조금 했다. 아름다운 시체스를 둘러 다니다 보면 곧 배가 출출해질 터, 그때 해변을 마주 보는 벤치에 앉아 먹는 엠빠나다가 훨씬 맛있지 않겠는가! 시체스의 푸르른 바다를 떠올리며 엠빠나다에 대한 욕망을 지우려 노력했다.




그리고, 뜨거운 8월의 태양 아래 작지만 볼거리가 많은 시체스의 거리와 해변가를 거닐며 감탄을 연발하며 사진을 찍어대던 우리는 드디어.




해변을 마주하는 야자수 그늘이 진 벤치 아래에 자리를 잡고 엠빠나다를 나누어 먹었다. 이미 식어서 조금 딱딱해진 엠빠나다를 생수를 아끼느라 꼭꼭 잘 씹어먹어야 했다. 하지만 푸르른 지중해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단짝 친구와 나누어 먹었던 엠빠나다는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행복감을 선사하였다.






오븐 사용과 빵 반죽에 자신감이 붙으면서 엠빠나다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부쩍 자주 들었다. 마침 시장에서 한 단에 천 원 하는 바람에 두 단이나 사버린 시금치가 냉장고에 있었고, 코스트코에서 사 온 리코타 치즈도 남은 양이 상당했다. 그래서 만들게 된 요리는 '시금치 리코타 치즈 엠빠나다'이다.





재료.


[속재료]

-시금치 200g

-치즈 100g(리코타 치즈나 모짜렐라 치즈 등 다양한 치즈를 입맛에 맞게 사용한다)

-볶은 참깨 1 테이블스푼

-견과류 20g(원래 레시피에서는 잣을 넣었지만, 자취방에 비싸디 비싼 잣이 있겠는가. 호두라도 넣기로 했다)

-달걀 1개

-소금

-양파 1/4알~1/2 알 잘게 다진 것(양파의 양은 취향껏 가감하면 된다. 원 레시피에서는 양파 없이 시금치와 치즈만으로 속을 만들었다)



원래는 도우 또한 엠빠나다 도우 레시피를 찾아서 제대로 만들어야겠지만, 지난번에 만든 터키식 빵 요리 Fatayer의 반죽이 정말 쉽고 맛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어차피 올리브 오일과 밀가루로 만드는 이상 엠빠나다 반죽과 들어가는 재료도 별로 다르지 않으니 Fatayer 레시피를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반죽 재료]

-중력분 2½ 컵 (350 grams)

-이스트 1½ 티스푼 (7.5 ml)

-백설탕 1 테이블스푼 (15 ml) 

-소금 ½ 티스푼 (2.5 ml)

-미지근한 우유(저지방유 제외) 1 컵

-올리브 오일 ⅓ cup (79 ml)


[도우 반죽법]

1. 가루 재료(밀가루, 이스트, 소금, 설탕)를 큰 볼에 넣고 섞는다.

2. (1)에 액체 재료(우유, 올리브 오일)를 넣고 잘 섞는다.

3. (3)을 둥근 반죽 모양이 잡히도록 치대면서 5분 남짓 반죽한다.

4. (3)의 반죽을 볼에 담고 랩을 씌워 10~15분 정도 반죽이 살짝 부풀어 오르기를 기다린다.


조리법.


1) 팬에 버터나 오일을 살짝 두르고 양파를 볶는다.




2) (1)의 팬에 시금치를 넣고 볶으면서 익히다가 호두(견과류)와 참깨를 넣고 소금으로 간한다.




3) 반죽을 4등분 또는 8등분을 한다. 4등분을 하면 성인 남성의 주먹보다 살짝 큰 엠빠나다가, 8등분을 하면 성인 여성의 주먹보다 살짝 큰 엠빠나다가 나온다.



4) 반죽을 밀대로 편다. 


너무 얇으면 터지기 쉽다. 특히 속재료에 수분기가 있어 반죽이 쉽게 터질 수 있다. 만두처럼 얇게 미는 것은 금물이며, 적당한 두께의 빵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된다.



5) 반죽 위에 시금치 소와 리코타 치즈를 적당히 올리고



6) 주머니 안에 공기가 차지 않도록 반죽을 덮을 때 공기를 충분히 빼낸다. 다음으로,  가장자리를 포크로 눌러 내용물을 단단히 봉한다.


요렇게 예쁜 테두리 모양은 만들기 어려운 것임을 깨달았다. -사진 출처: www.thespruce.com


엠빠나다를 빚으면서 느낀 것인데, 위의 사진과 같이 귀여운 밧줄 모양이나 톱니 모양 테두리는 고수들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하수라면 포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된다.




7) 예쁘게 빚은 엠빠나다에 계란물을 바른다. 



8) 180도로 예열한 오븐에 30분간 굽는다. 다만 엠빠나다의 크기에 따라 익는데 차이가 날 수도 있고, 속재료가 이미 다 익은 상태이기 때문에 눈으로 보기에 노릇하게 잘 익었다 싶을 때 꺼내는 것이 좋다.



스페인의 추억을 담아서, 엠빠나다 완성!



사실 계란물을 입혀서 무언가를 굽는다는 경험이 이번이 처음인데, 이미 알던 사실임에도 결과물이 빤들빤들하니 정말 귀여워서 무척 즐거웠다.




시금치도 간을 세게 하지 않았고, 리코타 자체도 워낙 담백하다 보니 심심한 듯 하다가도 씹다 보면 고소한 맛이 매력적이다.



확실히 속재료가 달라서 그런가, 시체스에서 먹었던 엠빠나다와는 맛이 사뭇 다르다. 햄과 치즈가 들어간 그때 그 엠빠나다는 무척 짭짤해서 안 그래도 물이 부족한 여행자들이 더 애타게 물을 찾도록 만들었었다.



씹으면 씹을수록 리코타와 시금치의 맛, 호두와 빵의 맛이 어우러져 고소하다.



잠시, 지난여름 여행의 추억에 빠져들었다.



아직도 뜨거운 스페인의 여름 태양과 푸르른 지중해의 바람을 어제의 일처럼 떠올릴 수 있다.



바로, 이 엠빠나다 덕택에.



Buen prove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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