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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일랑 Jan 12. 2017

남해 시금치의 철, 오븐 없이 시금치 파이 만들기

시금치 혐오자도 사랑에 빠질 페타치즈 시금치 파이

지하철 한 정거장 건너에는 크고 깔끔한 상설시장이, 길 건너편에는 홈플러스가 있어서 장보기를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다. 시장에서는 각종 채소와 과일을 싼 값에 살 수 있고  홈플러스에서는 동네마트에서 찾기 힘든 향신료나 소스, 재료를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퇴근길이나 심심하지만 어디 멀리 나가기는 애매한 저녁에 시장이나 홈플러스에 가서 싸고 싱싱한 고기나 채소가 있는지, 새로 입점된 제품이 있는지를 탐색하며 구경하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운동도 할겸 구석구석 선반을 들여다보며 돌아다니다보면, 아무리 제철 음식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고 해도 "요즘 핫한" 식재료가 무엇인지를 어느 정도는 눈치채게 되는 법이다.


지금은 한창 추운 1월. 작년 12월부터 지금까지 올해의 겨울은 근 몇년 간은  달걀이 가장 귀했던 시절로 기억될 듯하다. 그래서 요즘에는 궁금증 반, 걱정 반, 달걀 가격을 가장 먼저 확인하고나서, 그제서야 채소 코너와 다른 식재료 코너를 돌기 시작한다. 한번 슥 둘러보니, 시장에서건 마트에서건 요즘 제철인 재료는 '봄동'과 '남해 섬 시금치'인듯 했딘. 양배추배추그 특유의 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봄동은 패스하고, '남해 섬 시금치'를 골라 장바구니에 담았다.


왜 하필이면 그냥 시금치가 아니라 '남해 섬 시금치'일까? 곰곰히 들여다보니, 한 단에 스무 뿌리 정도 가지런히 모아 노끈으로 꼭 묶어둔 일반 시금치보다 더 강인한 생명력 같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봄동처럼 뿌리에서부터 꽃처럼 만개한 잎은 노끈으로 곱게 묶을 수 없을 정도로 자유분방해 보였고, 추운 겨울을 이겨내서일까, 잎은 단단하고 두꺼워 마치 상록수 같은 강인함이 깃들어 있었다. 아무리 서울보다 따뜻한 남해라 할지라고 그곳도 겨울이기는 겨울일 터. 더구나 바다를 마주한 섬이라면 가지조차 없는 여린 식물의 몸으로 매서운 해풍을 오롯이 견뎌내야 했을 것이다. 아침저녁 할 것 없이 불어오는 겨울바람을 이겨내려면, 아마 뿌리내린 흙 위로 몸을 착 붙여서 땅을 부여잡듯 자라나야하지 않았을까? '남해 섬 시금치' 한 봉을 손에 들고 별별 상상을 하였다.




일반 시금치와는 달리 활짝 만개하여 봉지에 포장된 남해 섬 시금치. -출처: 남해신문 기사 "남해시금치, 새로운 도약을 꿈꾼다”


해풍을 맞고 자란 남해 시금치는 그 맛과 향이 뛰어나다고 한다. 출처: 한국 농어민 신문 기사 "남해 시금치, 겨울 보물채소로 부상"


시금치 한 봉을 손에 들고서, 생각은 집에서도 이어졌다. 막상 사오기는 했는데, 무슨 요리를 할 지 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시금치 요리라 하면 자연스레 시금치 무침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시금치 무침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패스. 내가 즐겨보는 유튜브 푸드 채널인 "Food Wishes"에 시금치(spinach)와 관련된 레시피를 찾다가 마침내 도전해 볼 만한 레시피를 발견했다. 마침 집에 페타치즈와 귀한 달걀이 있었기 재료사정도 딱 맞아 떨어졌다.


바로, "페타 치즈 시금치 파이(Spinach Feta Pie)!"


더군다나, '파이'라는 이름이 붙어서 오븐이 필요한가 했더니 프라이팬만 있으면 된단다. 파이반죽도 없어도 되며, 사실 파이이긴 파이인데 일종의 오믈렛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Food Wishes채널의 주인공 Chef John의 설명에 따르면, 전통 그리스식 시금치 파이(Greek spinach pie: Spanakopita)를 좀더 간편화한 것이라고 한다. 바로, 종잇장처럼 얇은 파이반죽인 '필로 도우(phyllo dough)'의 역할을 달걀로 대신한 것이다.



'필로'라는 얇은 파이지로 감싸서 굽는 그리스식 시금치 파이 'Spanakopita'




프라이팬으로 만드는 오믈렛이야, 이전에 스페인 전통요리 스패니쉬 오믈렛(Tortilla de patatas) 만들기에 성공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다. 이렇게 딱 맞아떨어지는 레시피가 있다니.




이제, 달달한 남해 시금치를 더욱 맛있게 먹어보자!





재료(직경 25cm 미만 미니 프라이팬 기준)


-달걀 6개

-시금치 한 단

-페타치즈 50g~100g (자기 취향에 맞게)

-버터 적당히

-소금, 후추

-양파 반 알(큰 양파)~한 알(작은 양파)

-베이컨 2줄


-선택: 핫페퍼 플레이크(고춧가루), 파프리카 파우더




조리법.


1) 프라이팬에 버터를 넉넉히 두른다.


오일 대신 버터를 사용해야 고소한 버터의 맛이 시금치향에 덧입혀질 수 있다. 버터에 볶은 시금치는 시금치를 싫어하는 사람도 시금치 애호가가 될 정도로 매력적이다!





2) 버터를 두르고 달군 팬에 시금치를 올려 숨을 죽인다.


이 과정은 영어로는 'wilt'라고 표현하는데, 완전 푹 익혀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시금치 잎이 조금 갈색으로 변하도록(brownize) 하는 것도 색다른 풍미가 있으니 그 중도를 잘 지킬만한 가치가 있다. 남해 시금치는 일반 시금치보다 잎이 두꺼워서 wilt하는 데 시간이 1~2분 더 걸린 것 같다.




3) 파이를 만들 팬에 양파와 베이컨을 넣고 갈색빛이 약간 돌 때까지 볶는다.


베이컨과 양파는 파이에 풍미와 식감을 더하는 역할을 한다. 파이를 만들 후라이팬은 직경이 작을수록 좋다. 나는 지름 25cm 미만의 미니 프라이팬을 사용했는데, 파이(오믈렛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지만)를 한 번 뒤집어서 반대쪽 면을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4) 달걀은 미리 풀어둔다. 소금, 후추로 간을 하고 파프리카 파우더나 핫페퍼 플레이크를 더해도 좋다.



5) 양파와 베이컨이 든 프라이팬에 달걀물을 약간 얹고 숨이 죽은 시금치를 약간 올린 다음, 다시 나머지 달걀물을 풀어준다. 이 과정에서 시금치가 뭉쳐 있는 부분이 있다면 주걱으로 살살 풀어 재료들이 적당히 잘 섞이도록 해준다. 그 위에 페타치즈를 원하는 만큼 올리고 뚜껑을 덮어 익힌다.



6) 아랫면이 적당히 익었다면 프라이팬보다 큰 사이즈의 접시를 이용해 파이(오믈렛) 덩어리를 뒤집어 넣는다.


이 부분에서 약간 기술이 필요하다. 먼저 프라이팬 위에 크고 납작한 접시를 올린 다음, 한 손으로는 프라이팬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접시를 단단하게 받친 후 빠른 속도로 뒤집는다. 그러면 오믈렛이 위의 사진처럼 접시에 안착하는데, 이것을 슬라이드 하듯이 팬에 도로 넣어주면 양면을 골고루 익힐 수 있게 된다.



7) 이제 (아까까지의) 윗면도 팬에서 노릇하게 익힌다.



이제 접시에 예쁘게 올려 담으면 완성!



오랜만에 한밤중이 아닌 대낮에 요리를 해 자연광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페타치즈를 위에 좀더 올려도 좋다.



스페인식 오믈렛과 만드는 방식이 유사했지만, 그 맛은 확연히 다르다. 스페인식 오믈렛은 감자의 부드러움과 양파의 풍미가 강했다면, 시금치 페타 파이는 버터에 숨을 죽인 시금치의 풍미가 고소하고 페타 치즈가 짭쪼롬하고 맛이 더 부드럽다.



시금치는 절대로 싫어하는 친구도 맛있다 맛있다를 연발하며 먹었다.



시금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번 만들어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페타치즈는 사랑이다.


Bon Appet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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