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랑일랑 Mar 19. 2017

그 푸딩은 이 푸딩과 다르다

식사에 곁들여 먹는 짭조름한 콘 푸딩

내가 '푸딩'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다. 그 당시 여학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만화영화 '카드캡터 체리'에서 푸딩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던 것이다. 지금 보아도 애완동물 삼고 싶은 귀여운 케르베로스가 푸딩을 한 숟갈 꿀꺽 삼키는 바로 그 장면이 바로 내가 푸딩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 순간이었다.


푸딩을 정말 좋아하는 케르베로스  -사진출처: 텀블러



저것은 과연 어떤 맛일까? 색깔은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바나나킥 사이 어딘가 정도 되는 색인데 질감은 뭔가 젤리 같고, 달콤한 시럽이 흘러 떨어진다. 시골학교 초등학생은 만화영화에 묘사된 2차원적인 색감과 형태만으로 '푸딩'이라는 음식을 상상하며 입맛을 다질 수밖에 없었다.


푸딩을 처음 먹어본 것은 시간이 한참 지나 중학생이 되고 나서이다. 쁘띠첼 등 기존의 젤리, 유제품 브랜드에서 하나둘 푸딩을 상품으로 내놓기 시작했던 것. 그때 맛본 푸딩은 요즈음의 푸딩(쁘띠첼 커스터드푸딩이나 파리바게트, 스타벅스 등 카페에서 파는 부드러운 푸딩)과 달라서, 인공 바닐라향이 나는 달콤한 젤리, 딱 그 정도에 불과했다. 이것이 케르베로스가 그토록 찬양했던 바로 그 푸딩이던가. 다소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요즘 푸딩은 그 당시의 푸딩보다 발전하여 우유맛이 강하고 질감이 훨씬 부드러워 먹는 재미가 있다. 대학교 신입생 때 처음 먹어본 파리크라상의 푸딩의 맛이 꽤나 훌륭했고, 쁘띠첼 커스터드푸딩도 몇 년 전부터 신상품이 출시되면서 품질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런데,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간식 코너에서 본 푸딩들은 내가 알던 푸딩과는 달랐다. 바닐라 푸딩이니 초콜릿 푸딩이니 하는 것들은 탱글 하기보다는 주르륵 흘러내릴 것 같은 소스 같은 질감의 크리미한 디저트였다.


미국에서 내가 주로 접한 푸딩의 모양새.



그러고 보니 미국인 친구가 '푸딩 머리'라는 표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일이 기억났다. 그 표현을 처음 언급한 사람은 일본인 친구였는데, 자신의 머리가 푸딩 머리가 되어 속상하다고, 빨리 염색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푸딩 머리가 뭐냐 물으니 염색을 다시 할 때가 되어 뿌리 쪽이 검어진 머리가 푸딩 머리란다. 아아~윗면에서 시럽이 뚝뚝 떨어지는 푸딩을 생각하니 바로 연상이 된다. 참 기발하고 적절한 비유라며 감탄을 했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미국인 친구는 그다지 와 닿지 못한 반응이었다.



일본어로 푸딩 헤어(プリンヘア)를 검색하자 나온 사진. -사진 출처: http://ウィッグ通販激安.net



그때야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미국인 친구가 생각하는 푸딩과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의 푸딩은 어딘가 다른 면모가 있었던 것이었다.



한국, 일본의 푸딩-사진출처: 유튜브


푸딩이라 하면 한국인과 일본인은 바닐라향이 감도는 쫀쫀하며 부드러운 커스터드 크림에 설탕으로 만든 달달한 갈색 시럽이 흐르는 모습을 상상하겠지만, 한국인과 일본인이 아는 푸딩은 푸딩의 세계에서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에서의 푸딩은 푸딩의 여러 갈래 중 하나인 '캐러멜 푸딩(Crème caramel, flan, custard pudding 등으로도 불림)'이다. 달걀과 우유를 섞은 커스터드를 응고시켜 카라멜화한 설탕을 곁들여 먹는 것. 프랑스에서는 크렘 캐러멜(Crème caramel)이라는 이름으로, 스페인과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플란(flan)이라는 이름으로 통한다. 


프랑스에서는 유명한 디저트인 '크렘 브륄레'와 자주 비교되는데, 둘 다 커스터드를 이용해서 만들지만 크렘 브륄레는 설탕을 녹였다 굳힌 얇은 막을 부숴서 먹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막강한 라이벌인 크렘 브륄레가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크렘 캐러멜은 뒷전으로 밀리는 감이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라틴계 이민자들을 통해 플란 레시피가 널리 퍼졌기 때문에 크렘 캐러멜보다는 플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편이다.


마드리드에서 먹은 어마어마한 사이즈의 플란(flan) 맛은 한국에서 먹던 푸딩과 비슷했지만 질감이 훨씬 더 쫀쫀해서 거의 떡을 먹는 듯한 느낌이었다.



본디 푸딩이란 짭짤한 식사용 요리와 달콤한 디저트를 포함한 넓은 범위의 요리이다. '푸딩'이라는 용어는 프랑스어인 boudin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보는데, 이 말은 원래 '작은 소시지'를 뜻하는 라틴어 'botellus'에서 기원했다. 어원부터가 우리가 익히 들어 알던 포실포실한 푸딩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영국과 호주, 뉴질랜드 등 영연방 국가의 경우에는 식사용과 디저트용 푸딩이 전부 일상화되어있다. 디저트 푸딩의 경우에는 라이스 푸딩이나 커스터드푸딩처럼 쫀쫀하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의 전분 또는 유제품 베이스의 디저트를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편이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푸딩이나 당밀 스펀지 푸딩(Treacle sponge pudding)처럼 촉촉한 질감의 빵도 푸딩으로 불린다.


건포도와 각종 향신료를 넣어 만드는 영국의 크리스마스 푸딩. -사진 출처: telegraph.co.uk

 

스폰지 케익을 촉촉하게 적신 것 같은 질감의 당밀 스펀지 푸딩 -사진 출처: bbcgoodfood.com


영국의 식사용 푸딩으로는 요크셔푸딩(Yorkshire pudding)과 블랙 푸딩(black pudding), 스테이크와 콩팥 푸딩(steak and kidney pudding), 토드 인더 홀(Toad in the hole)이 유명하다.




영국의 요크셔 푸딩 -bbc.co.uk


요크셔푸딩은 달걀과 밀가루, 밀가루와 물을 섞은 반죽을 기름을 잔뜩 넣은 머핀 틀에 넣어 튀기듯이 익혀서 만드는데, 마치 공갈빵처럼 속이 비어있는 모양새가 재미있다. 겉은 쫄깃하면서도 속은 촉촉하며 맛이 단순해서 어느 메인 요리에나 잘 어울린다. 주로 그레이비를 올린 소고기와 함께 영국식 선데이 로스트 접시에 곁들인다. 한국에서는 서래마을의 '더 페이지'라는 브런치 카페에서 먹어본 기억이 있다.


영국식 선데이 로스트. 요크셔 푸딩이 떡하니 올려져 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영국의 피순대, 블랙 푸딩 -Independent.co.uk

블랙 푸딩(black pudding)은 한마디로 영국식 피순대이다. 돼지고기나 양고기의 지방과 돼지피, 오트밀을 섞어서 만드는데, 특유의 검은색은 아무래도 돼지피의 영향이다. 한국의 순대처럼 비닐로 된 얇은 랩에 싸여 있는데 요리하기 전에 잊지 말고 꼭 벗겨내야 한다고 한다.



스테이크와 콩팥 푸딩. 미트 파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보이는 모양새이다. -사진 출처: dailyexpress.co.uk


스테이크와 콩팥 푸딩은 영국의 대표 요리인 미트파이와 꼭 닮은 모양새이다


토드 인 더 홀.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구멍 속의 두꺼비(Toad in the hole)'이라는 재미난 이름의 이 푸딩은 요크셔푸딩 반죽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소시지를 올려서 구운 것이다. 그레이비와 채소를 곁들여 먹는다.


미국에서의 푸딩은 아무래도 본토인 영국의 푸딩보다 다양성이 떨어진다. 미국의 푸딩은 주로 식사보다는 디저트에 집중되어있다. 주로 무스(mousse) 같은 질감의 우유를 넣은 디저트를 푸딩이라고 부른다. 쫀쫀한 질감을 위해 옥수수 전분이나 젤라틴, 콜라겐 합성물을 첨가하기도 한다. 가공식품의 천국답게 인스턴트 푸딩 제품을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가장 널리 퍼진 것은 JELL-O 브랜드의 초콜릿 푸딩이다. 우리가 아는 푸딩은 의외로 '커스터드푸딩'이라는 영어 이름 대신 '플란(flan)'이라는 스페인어 이름으로 알려지고 있는 추세이다. 뒤집어 놓은 컵 모양의 커스터드푸딩이 무스 형태의 푸딩에 밀려 역대로 미국에서 약세였던 반면, 남미식 커스터드푸딩인 플란이 이민자들의 증가와 함께 널리 퍼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젤리로 유명한 JELL-O사의 초콜릿 푸딩. 무스 같은 질감이다. -사진 출처: americangrocery.co.uk





NYT Cooking
huffingtonpost.com


요즘 한국에서도 꽤 알려진 브레드 푸딩(bread pudding)은 식사용으로도, 디저트용으로도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요리이다. 기본적으로 딱딱하게 굳은 빵과 크림이나 우유로 적신 후 오븐에서 굽는 방식으로 만드는데, 식사용으로 만든다면 소시지나 채소 등을 넣고 디저트용으로 만든다면 설탕이나 꿀, 말린 과일, 견과류, 시나몬과 넛멕 등을 넣는다.


인도의 라이스푸딩 Kneer -사진 출처: saveur.com


스페인이나 중동, 인도 등 쌀문화가 발달한 지역에서는 라이스 푸딩(rice pudding)을 자주 먹는다. 주로 쌀을 우유에 끓이면서 설탕과 시나몬, 건포도 등을 넣어서 만든다. 떡을 제외하면 쌀은 식사용으로만 먹는 한국인이 먹으면 뜨악할 만한 맛과 질감의 음식이다.



스페인의 라이스 푸딩 -사진 출처: Pinterest




오늘 내가 만들 푸딩은 짭짤한 식사용 푸딩이다. 오븐이 생기면 꼭 만들어보고 싶었던 콘 푸딩(corn pudding)을 만들어 보았다. 재료를 한데 섞어 확 갈아내면 되기 때문에 만들기가 정말 간편한 요리이다. Chef John의 말로는 파티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야 할 때 적은 돈으로 많은 양을 순식간에 만들어 갈 수 있는 정말 고마운 레시피라고 한다. 보통 닭고기 구이 같은 메인 요리에 탄수화물 보충용으로 곁들여 먹는다.



<참고한 레시피>

Creamy Corn Pudding Recipe - How to Make Classic Corn Pudding

https://www.youtube.com/watch?v=IRUkJ0e3LQg




재료.


-옥수수 0.5 kg 정도 (Chef John은 냉동 옥수수를 썼는데, 나는 통조림 옥수수 한 캔을 사용했다. 통조림을 사용한다면 소금은 넣지 않아도 되는데, 이미 통조림 옥수수에 간이 충분히 되어있기 때문이다)

-메이플 시럽이나 꿀 2 테이블스푼.

-달걀 3개

-우유 1/4 컵

-카옌페퍼 약간(한 꼬집 정도?)

-소금 3/4 티스푼 (통조림 옥수수를 사용한다면 생략하거나 아주 약간만 넣는다)

-박력분 1/8 컵

-베이킹파우더 1/2 티스푼

-녹인 버터 1/4 컵 (3분의 2는 반죽용, 3분의 1은 팬 코팅용)

-크림 3/4 컵





1) 녹인 버터 1/3을 제외한 모든 재료를 한데 넣고 믹서기로 간다.



갈아진 재료들은 요렇게 생겼다.



2) (1)의 반죽을 녹인 버터로 코팅한 트레이에 담고 180도의 오븐에 1시간 정도 굽는다. 


오븐에 넣기 전 팬을 바닥에 살짝 쳐서 공기가 빠져나가도록 한다. 표면이 노릇하게 잘 익었으면 완성이다.






어이없게도 단 두 단계만에 그럴듯해 보이는 콘 푸딩이 완성되었다.



굽는 동안 온 집안에 고소한 버터향과 옥수수향이 진동을 했다.




맛이야 뭐, 통조림 옥수수와 버터를 넣었는데 맛이 없을 수가 있을까.



버터구이 옥수수와 맛 자체는 비슷한 편이지만, 우유와 크림이 들어가서 훨씬 촉촉하고 부드럽다. 표면이 노릇노릇하게 익어서 고소한 맛도 배가 되었다.




별생각 없이 먹다 보면 어느 순간 두세 조각은 꿀떡 해치웠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희한한 녀석.








이 콘 푸딩은 주로 사이드 디쉬로 먹는다는데, 그렇다면 요 고소한 녀석에게 어울리는 짝꿍을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검색해 보니 닭고기 구이이 콘 푸딩과 잘 어울린다고 한다. 그래서 콘 푸딩을 만든 바로 다음날 아침으로 바로 머스터드 치킨 구이를 만들어 먹었다.



바로 요렇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